“죽시, 그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에 매력이 끌렸죠”
“죽시, 그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에 매력이 끌렸죠”
  • 강성훈
  • 승인 2018.11.2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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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여수 유일 화살제조 명인 임종명 궁시장
10여년만에 국내 9명 명인중 한명으로 우뚝
늦깍이 출발이었지만, 전통을 되살리는 원칙 지키며 구슬땀
임종명 궁시장.
임종명 궁시장.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말로 올 한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남들은 수십년 전에 시작해 이제 명인의 반열에 올랐을 나이지만, 이제야 그 명인의 길에 도전장을 내민 임종명(55) 궁시장.

뒤늦은 나이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그 도전 속도는 과히 활시위를 떠난 화살마냥 빠르게 성장해 앞선 명인들의 실력은 넘보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살을 만들어내는 명인 9명 가운데 한명이다. 여수에서는 유일하다.

임 궁시장은 죽시를 만들고 있다.

국궁에서 사용하는 화살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되던 화살로 카본과 죽시로 나뉜다. 대나무 화살을 일컫는 죽시를 사용하려면 보통 5년이상, 5단 이상의 숙련자라야 가능하다.

“카본은 아무나 다루기가 쉽지만, 죽시는 일정한 수련 과정이 있어야 본인의 의지대로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어요”

제조과정 역시 일종의 개량화살이라 할 수 있는 카본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는 1~2년 정도의 익히는 과정이면 되지만, 전통화살인 죽시를 제대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10여년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임 궁시장이 화살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년전.

취미생활로 국궁을 즐기던 임 궁시장은 본업이던 유통업을 접고 본격적으로 화살을 제조하는 궁시장의 길에 들어섰다.

“10여년 활을 쏘다 보니 화살이 궁금해지고, 화살을 만들다보니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그 정교한 작업이 성격상 맞더라구요”

그렇게 하여 화살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임 궁시장은 전국의 유명한 궁시 장인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러다 6년여전 화순 무형문화재인 고 김형기 죽시장인을 찾아가 본격적인 죽시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

김형기 선생도 40세를 훌쩍 넘은 나이에 화살을 만들겠다는 임 궁시장을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꼭 하고 싶다”며 모든 것을 접고 자신에게 매달리는 임 궁시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이들이 포기한 길이었다.

“어렴풋이 알았던 죽시를 제조하는 기본적인 개념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카본시와 죽시가 정성의 차이가 정말로 많이 나는 것을 느꼈어요. 배울수록 어려운 과정이었고, 온전한 죽시를 만들어내는 것이 오랜 인내를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렇게 해서 고 김형기 죽시장인의 화살 제조법을 전수받은 임 궁시장은 하루 10시간 이상 공방에 머무르며 빠르게 자신만의 화살 제조에 나섰다.

“제가 생각하고 만들고자 구상하는 것이 화살로 표현되어지고, 화살을 사용하는 명궁들로부터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늦게나마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고 되뇌였다.

오직 화살에만 매달리며 빠르게 손에 익혀갔다. ‘왜 죽시가 카본시같은 거리를 날리지 못하는가’에 대해 질문과 실험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모든 공정 하나하나 연구와 수정을 반복해가며 완성도를 높였고, 드디어 명궁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죽시는 보통 한 선수가 2~30발 주문하는데 그 중 실제 사용가능한 화살은 60%정도에 불과해요. 하지만 저는 95%수준까지 끌어 올렸죠”라는 임 궁시장이다.

최근 단양의 한 명궁으로부터 주문받는 화살을 보냈는데 “‘20년동안 국궁을 했는데 이처럼 카본화살같은 죽시는 처음이다. 이렇게까지 본인 마음에 들게 제작해 준 화살을 처음이다’며 고마워 하더라구요. 내가 제작하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생각했죠”

임 궁시장의 이같은 실력은 원칙을 고수하는데 따른 열매이기도 하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을 통해 한달이면 80여개를 만들어내는데 보통 한번 주문받은 화살의 납품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린다.

“일년정도 시간을 줘야 제가 만족해 하는 죽시를 완성해서 출고할 수 있어요. 일정한 시간과 공정을 단축해서 속성으로 만들면 완성도 높은 화살이 나올 수가 없어요”

재료를 고르는 과정 또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국시 제조 화살은 해장죽. 즉 해풍을 맞고 자란 대나무를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오동도에 있는 시누대를 사용했겠지만, 현재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해안 지역에서 전량 공급받는다”는 임 궁시장이다.

해풍을 맞고 자란 대나무가 생장은 느리지만, 속은 유연하면서 겉은 조밀해 화살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단다.

이렇게 확보한 시누대는 3년의 숙성과정을 거친다. “숙성과정 역시 짧게는 6개월도 가능하지만, 눈으로 같아 보일지 몰라도 실제 그 기능은 크게 떨어져요”

임 궁시장이 원칙을 지키는 이유다.

뒤늦게 시작한 화살 제조 장인의 길이지만, 원칙을 지켜가며 끊임없는 연구와 연마를 통해 명궁들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임종명 궁시장.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

“복원돼 있는 것도 있지만, 아직 그 길을 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전통화살을 복원하는 일이예요. 또 하나, 무형문화재가 돼서 전통을 계승하고 복원하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죠”

늦깍이 수련생으로 시작한 화살 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임 궁시장.

힘든 길이지만, 원칙을 지켜가며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한걸음씩 다가서는 모습에서 ‘소확행’이라는 2018년의 키워드가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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