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은 見의 힘이다
시 창작은 見의 힘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11.20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8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본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기 때문에 잘 보기 위해서는 먼저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의 총량을 스키마라 하는데, 스키마의 양에 의해 보고 듣는 힘이 달라진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제대로 보는 눈은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본다는 것은 아는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로 이는 발상의 전환이다.

세상의 모든 창작은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어떻게 새롭게 읽고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있는 것들을 만나게 하고 소통시키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된다. 이를 컨버전스라한다. 즉 두 기능이 하나가 되어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즐거움, 시간절약을 준다는 개념이다.

이는 현재 상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둘기와 딱따구리를 통섭을 통해 ‘비둘기딱따구리’라는 ‘편지를 전하고 노크할 줄 아는 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리’와 ‘오케이구글’도 폰과 비서의 통섭의 결과일 것이다.

통섭으로 잘 들여다보면서 기존한 것을 재편집한 새로운 관점의 새로운 창제다.

잘 보는 일은 달리 생각해 새롭게 보는 것이다.

초보운전자가 자동차 뒤에 써 붙인 글귀도 보면 상대의 마음 잘 읽은 데서 비롯한 재치다. ‘3시간째 직진입니다. 밥해놓고 나왔습니다. 전 재산입니다’

똑 같은 상황이나 대상으로 보고 다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힘은 보는 힘이다.

안도현 시 ‘스며드는 것’도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도 알고 보면 하나같이 그 상황을 잘 읽은 결과물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벗으며 꽃잎 따스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경험은 새롭게 보는 힘의 시작이다.  

대학에는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之其味)고 했다.

일상을 들여다보라.

일상의 이야기를 시청하지 말고 견문하라

시청은 모두가 보는 것을 보는 것이라면 견문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이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이상국 <쫄딱>

 

이 시도 진심이 안겨 있다.

見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자 생각의 힘이 된다.

우리가 산에 다녀오는 사람에게 ‘뭘 봤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별 볼 것 없었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별 볼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은사시나무는 잎이 몇 개고 색은 어떻고 줄기와 잎은 어떻게 연결되고 햇살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그늘은 또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볼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시를 잘 쓰려면 잘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만 볼 수 있다.

 

무늬가 있는 란을 키워본 사람은

란도 가을이면 단풍이 든다는 것을 안다

다른 나무와는 달리 무늬 란의 단풍은

핏기잃은 혈색처럼 오히려 무늬가 사라진다

푸른 잎에 노랗고 하얀 선색으로 자태를 뽐내다

한순간에 색을 숨기고 톡하고 떨어지는 순간

무늬가 생겼다는 말이면서 무늬가 사라졌다는 말,

무늬지다 라는 말의 그 자리가

모든 것을 비우고 단 하나의 빛으로 남는

화엄의 자리임을 란은 아는 것이다

떨어진 잎이 빛이 되어 무늬 지는 날이었다 - 신병은 <무늬지다> 부분

 

각성의 순간이 견의 힘이 된다.

<생각의 탄생>에서 ‘발견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세상을 바꾼 힘은 다르게 보는 작은 눈이다. 즉 상식을 뛰어넘은 상상의 눈, 변화를 꿰뚫은 통찰의 눈, 통념을 뛰어넘는 혁신의 눈이다. 이런 안목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과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이 시창작이다.

그것은 질서화 된 풍경을 열심히 의심해 보고, 나무와 풀 바람 햇살의 일상을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가 미쳐 못보고 놓친 것이 없는지 살피는 일이다.

작은 단서를 통해 새로운 상황을 유추해내는 일이다.

거실에 있는 화분의 난 잎을 닦으며 새까맣게 묻어나온 먼지를 보면서 우리집에 속검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유추해내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고, ‘함께 더불어’라는 말에서 나를 지운다는 의미를 깨달아내고, 벌레먹은 흔적을 나뭇잎이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으로 보고, 홍어를 먹으면서 나도 한세월 푹푹 썩다보면 맛을 내는 시간이 올 거라고 유추해 내는 일이다.

                                                          

들어본 적 있나요?

바람에도 젖가슴이 있다는 것을

한적한 도로에서 강물을 옆자리에 앉히고

시속 70킬로로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세요

말랑말랑한 바람의 젖가슴이 만져질 거예요

그 바람의 젖을 먹고 풀들이 자라고

침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상처들을 꺼내 말리면서 꽃잎들이 피어나요

흔들리면서 갈대는 생각이 깊어지고

 땅 속에서 감자는 굵어져요

온통 계절을 키우는 것은 바람이예요 -정용화 <바람의 젖가슴>부분

 

고속도로나 시골의 한적한 길을 달릴 때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바람의 젖가슴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그 바람의 젖을 먹고 풀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땅속 감자가 굵어진다는 것을 쉬 이해할 것이다.

일상의 풍경, 자연의 풍경이 사람의 풍경이 된다.

대상에 안겨있는 의미를 잘 보는 법은 시간과 관심을 갖고 잘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있지만 없는 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내 눈이다

대상의 새로운 의미는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있다.

 

조용히 사뿐사뿐 나비의 몸짓으로

나무는 한 잎 두 잎 햇살을 물어와 그늘을 만든다

바람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착하고 고요하게 슬며시 품을 내어놓는다

새소리도 스르르 팔베개를 내어놓는다

그랬구나 그랬어 나무는 내게 고요함을 가르치려 했구나

스스로 몸을 열어 스며들고 져며 들어

고요해지는 몸짓을 보여주려 했구나

몰래 그늘이 되어 서로의 바깥에 대해 이야기 하려 했구나

팔랑대며 날아오르는 나무의 날개죽지,

그늘이 눈부시다 -신병은 <그늘이 눈부시다>

 

‘見’, 이 단어 하나가 우리를 먹여 살린다.

관심으로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으로 매일 행복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힘이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는 삶에서 見의 힘이 자란다.

제대로 잘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삶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