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11.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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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7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창작에는 무엇보다 대상과 현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시는 맑고 아름답고 순결하고 진실한 것을 지향하는 사람의 마음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상의 어떤 측면에 기대어 어떤 삶의 모습을 이야기 할 것인가와 그것을 어떤 화법을 구사할 것인가의 문제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안도현 <스며드는 것>

 

간장게장을 담궈 본 사람이거나 담구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알을 품은 꽃게가 간장을 부을 때 어떻게 했을까를 이 시를 통해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낮게 낮게 웅크리고 바둥거리다가 살 속으로 스며드는 간장을 받아들이면서 알들을 더 꼭 껴안으며 달랬을 거라는 것, 그 때 뭐라고 한마디 들려줬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시를 읽다보면 우리가 시를 쓰야하는 이유도 그렇고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우리가 시를 쓰야 하는 이유가 많을 수밖에 없다.

꽃이 피어서, 비가 와서, 꽃이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지 맘대로 피어서, 지 맘대로 핀 꽃이 괴심해서,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살기 위해서, 옛 애인이 그리워서, 텃밭에 심어놓은 수박을 도둑맞아서, 꽃샘바람에 갓 핀 꽃이 시들어서, 아침에 새소리가 들려서, 헤어진 애인이 더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외로워서, 가슴 아파서, 미안해서....

그래서 우리 삶이 바로 시고 소설이다

그립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립다는 의미의 본질은 또 무엇일까?

요즘 같은 가을에는 해거름이면 나무에 기대어 저녁을 맞곤 하고, 허공을 응시하며 그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 한편을 또 썼다.

 

그것은

해거름의 긴 그림자로 잎 진 겨울나무에 기대서는 일이다

설렘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그대와 나 사이 틈을 열어 서로의 생각 포개 두는 일이다.

그래도 마음 한 켠 허전하다 싶으면 아무 일 없는 듯 바깥을 닫는 일이다.

그러다가 더더욱 그리워지면

그대 안쪽에 슬그머니 바람기 묻은 마음을 기대두고 볼 일이다

- 신병은 <그립다는 것>

 

복효근 시인은 꽃을 보는 법을 꽃이 진 다음 까지가 꽃이라고 했다.

꽃이 지고 나면 그뿐인 시절이 있었다고, 꽃이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무례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라는 발견에 이른다.

본질에 기대어 있는 진정성이 있어 울림으로 왔다.

전화기의 본질은 궁금하고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보세요’는 여기를 보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전화를 만들었습니다.

본질을 헤아리면 시도 카피도 삶도 의외로 잘 풀린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벌레먹은 나뭇잎>

 

벌레 먹은 나뭇잎이 예쁜 것은 상처가 나서가 아니라,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벌레 먹은 흔적은 남을 먹여가며 산 흔적으로 재발견한 셈이다.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시 창작이다.

피카소의 추상화는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고 또 빼서 본질만 남기는 작업이고

추사 김정희는 속기를 빼고 골기만 남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글쓰기는 예쁘게 말하려는 속기를 빼고 진짜 말하려는 골기만 남겨라고 주문한다.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도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김춘수시인의 ‘꽃’에서도 본질규명의 소망을 역설하고 있다.

징과 장구, 북을 만드는 장인은 조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본다. 다 만들고 최종적으로 소리를 보고 둘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한다. 그래서 장인은 악기를 만들려 하지 말고 음을 만들어라고 주문한다. 악기의 본질은 소리, 즉 음이기 때문이다.

본질은 대상과 현상을 보는데 중요한 관점을 마련해준다.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 오세영 < 나를 지우고>

 

살아남은 시의 무기가 본질인 것은 본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산에 살면서 산이 되는 일은 나를 지우는 일, 다시 말해 더불어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셈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고 숲이 숲을 지우고 나를 지우고 너를 지우며 비로소 더불어 살 수 있다고 한다.

하나 같이 모두가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을 향해 잔잔한 외침을 하고 있는 시다.

느낌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

느낌은 본질과 교감하기 때문이다.

알려고 하기 전에 먼저 몸으로 느껴야 한다. 느낌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체험이다.

 

누가 나를 갉아 줬으면 싶다

한 번도 바깥이 되지 못한 생각을 아프게 갉아 줬으면 싶다

그러면, 나도

따스한 핏방울로 배어난 상처의 빛깔로 세상에서 아름다운 풍경으로 발효되리

- 신병은 <낙엽> 전문

 

시창작도 마찬가지다.

쓰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느껴라.

꽃이 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풀이 바람에 흔들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낙엽이 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번 느껴보라.

<대학>에는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했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견문하면 느낄 수가 있다.

견문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느낌 있는 삶은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면, 내가 만나는 풀 한포기, 바람 한 올에도 우주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밤톨 하나 톡 떨어지다

- 머리통을 깨부수어 기억과 생각 죄다 꺼내 청설모 들쥐 까마귀들에게 보시하다-

이제야 밤송이로만 남아 환하게 웃다 - 신병은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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