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시인의 “아내를 향한 가슴 절절한 노래” 화제
진보시인의 “아내를 향한 가슴 절절한 노래” 화제
  • 서선택 기자
  • 승인 2018.08.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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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 시인, 8년만에 다섯 번째 시집 펴내

중견 시인 오봉옥이 8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섯!’(천년의 시작)을 펴냈다.

오봉옥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필화를 겪고 투옥된 진보적 시인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헌영은 후배 오봉옥을 시집 표사를 통해 이렇게 격려했다.

“광주항쟁을 겪은 오봉옥 시인은 서사시집 ‘붉은산 검은피’(1989)로 엄혹한 고초를 다시 겪었다. 그 시절 그는 브레히트와 네루다의 후계였다. 그로부터 30년. 오 시인은 사랑, 죽음, 민주주의, 꽃, 나비 그리고 인간, 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등대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인이 됐다.”

그런 그가 이번엔 아내를 향한 절절한 시집을 펴내 화제다.

이 시집에서 아내는 “구멍 난 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여자/ 늘어진 뱃살을 애써 감추며 배시시 웃는 여자”이다.

시인은 그 아내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살갗 좀 늘어진들 어떠랴. 엄니 가슴팍처럼 쪼그라들고 늘어진 거기에 꽃무늬 벽지 같은 문신 하나 새기고 싶다.”

8년만에 다섯번째 시집을 펴낸 오봉옥 시인.
8년만에 다섯번째 시집을 펴낸 오봉옥 시인.

 

이번 시집에는 아내를 향한 시들이 많다. 「사소하거나 거룩한」 「내 사랑이 그렇다」 「아내」 「나를 거두는 동안」 「그 꽃」 「우는 여자」 등. 시들이 하나 같이 눈물겹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지극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중 득의得意의 시편으로 꼽을만한 시는 「아내」.

 

우리 집 처마 끝에 매달려

집을 지키는 물고기

바다를 품어본 적이 없고

바다로 나아갈 생각도 없는

가엾은 저 양철 물고기

문지기 수행자로 살기 위해

얼마나 허공을 쳐댔던 것일까

가만히 다가가 보니

비늘이 없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의 어깨에 달라붙은

그렁그렁한 비늘

나 죽은 뒤에도

관 속까지 따라와

가슴에 곱다시 쌓일 것 같다

-<아내> 전문

아내는 오직 가족을 위해 살아온 존재이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바다로 나아갈 생각도 않는’ 존재, 자신의 ‘비늘’이 다 벗겨지도록 아이를 위해 헌신한 존재, 죽은 뒤에도 관 속까지 따라와 위로를 해줄 것 같은 존재이다.

그런 아내가 어찌 시인의 아내 한 사람일 뿐인가. 이 시는 ‘아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봉옥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섯' 표지.
오봉옥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섯' 표지.

 

오봉옥 시집 『섯!』의 표지에는 인상 깊은 시 한 편이 실려 있다. 촌철살인으로 쓴 한 줄짜리 시 「그 꽃」.

 

시인은 죽어서 나비가 된다 하니 난 죽어서도 그 꽃을 찾아가련다.

-<그 꽃> 전문

죽어서도 다시 찾고 싶은 아내.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임우기는 이 시를 “아내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직관으로까지 이어져 한 문장의 시편이 탄생한 것”이라 평한다.

시인이 세 번의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썼다는 「나를 거두는 동안」에서는 “다음 세상에서도/ 그녀가 사는 정원의 작은 바위로나 앉아/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살아야 할 것 같은/ 설운 오늘”이라고 노래하여 우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지난 2010년 『노랑』 이후 8년 만에 출간한 다섯 번째 시집 『섯!』에는 아내를 향한 시편들 이외에도 이순을 앞두고 도달한 내면의 평화를 노래한 시 66편이 실렸다.

특히 현대인들이 잊어버리기 쉬운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아 주목된다.

광주광역시 출생인 오봉옥 시인은 1985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지리산 갈대꽃』 『붉은산 검은피』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등이 있고, 시선집으로 『나를 던지는 동안』 『달팽이가 사는 법』 등이 있다.

비평집으로 『시와 시조의 공과 색』 『김수영 다시 읽기』, 동화집으로 『서울에 온 어린왕자』 등이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을 거쳐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계간 『문학의 오늘』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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