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화법은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과의 공감화법이다.
시의 화법은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과의 공감화법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07.20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5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선생님, 시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나요’

엊그제 시를 쓰는 문우가 대뜸 물었다. 순간 시 창작 강의를 오래 해 온 나로서도 뭐라고 딱히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도 아직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마련해 두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써’

‘그냥 막 써’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내가 궁색하게 내 놓은 답이었다.

문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시를 잘 쓰려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쓰면 돼,’

시 창작론은 시인에 따라 참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딱히 이렇게 써야 한다는 명확한 공식은 처음부터 없다. 시간과 장소, 그 때 그 상황에서 시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때 마다 대상과 현상을 지나치지 않고 잠시 생각을 공유하는 일이다.

그 대상과 현상 속에 안겨있는 풍경 속 풍경을 보는 일이다.

우리가 보는 시선은 극히 제한적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시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아, 저 달팽이가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어’

‘아, 저 거미가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어’

‘아, 저 떨어진 동백꽃이 떠난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애’

그리고 갓 피어난 목련을 해코지 한 꽃샘바람에게 ‘너 그렇게 살지 마라’고 한마디를 해주는 일이다.

대상에게 전해주는 시인의 진심이 담긴 일상적이고 사소한 한마디다.

언어적인 꾸밈이 아니라 마음이 깃든 풍경이어야 한다. 문학적인 수사는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그 상황 그 대상에 알맞은 말을 찾는 것이다.

일상적인 말 가운데서 필요한 말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풀의 이야기, 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씨감자 눈뜨는 소리는 듣는 일이다.

곁과 배려의 의미를, 푹 삶다의 푹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발견된 풍경을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일이다.

 

온통 울리고가는 대신

풍경 그 청동의 표면에 살짝 입만 맞추고 가는 바람처럼

아는가, 네가

아주, 잠깐, 설핏, 준 눈길에

안으로 안으로 동그랗게 밀물지는 설렘의 잔물결

고요히 한생을 두고 일렁이는 -복효근 <안으로 우는 풍경>

 

바람에 흔들리는 작지만 맑고 고요한 풍경소리를 들으며 ... 청동의 표면에 살짝 입맞추는 바람,,, 안으로 안으로 동그랗게 밀물지는 설렘의 잔물결을 읽어내는 시인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나아가 아주 잠깐 설핏 준 눈길에 한생을 두고 고요히 일렁이는....삶의 풍경을 읽어낸다

풍경소리에서 이처럼 깊고 넒은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 또한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시를 잘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관심이다.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상과 일들 ....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어두워지고, 꽃이 피고, 새잎이 나고, 낙엽이 지고 ..... 개미와 벌, 달팽이며 무당벌레며 모기며 거미며 ....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는 일이다.

모든 일이 관심이다.

창조는 새로운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리뷰Review, 즉 다시보기며 재음미다.

그래서 창조는 에디톨로지라 했다.

이미 있는 것을 재구성하고, 편집하는 일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관점이 있을 뿐이다.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고 편집하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성은 천재성이 아니라, 옛것에서 새것으로 나온 入庫創出이다

그래서 시 잘 쓰는 또 하나의 문제는 관점이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럴려면 자세를 낯추어 주의깊게 대화하면서 사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받아 쓸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마음의 소리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의 어떤 대상과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귀를 기울이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헤겔도 마음이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고 했다

시의 말은 주위에서 들은 말, 나무와 풀과 바람과 꽃이 들려주는 말이다.

함께 나누는 공감, 즉 무늬가 있고 결이 있는 마음 나누기다

그 마음이 곧 내 마음인 것이다.

 

적막하다고

혼자말로 운을 떼었을 뿐인데

고요의

한발 깊이로 디밀었던

당신

그날

온통 꽃이셨지요 -신병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

 

‘어머, 어머 왠일이세요~~’하며 살갑게 받는 전화는 분명 애인에게서 온 전화이고, ‘왜~ 뭔데~’하고 퉁명스럽게 받으면 분명 엄마에게서 온 전화임을 알 수 있다.

시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꽃과 나눈 이야기는 꽃의 말이 담겨있고, 바람과 나눈 이야기는 바람의 말이 담겨있다.

가끔 시골 노모에게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하고 물으면 ‘그냥 한번 해봤다’라고 한다.

지나고 보니 내가 참 무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냥’이란 말의 넓이와 깊이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제사 알게 된다.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늘 하는 말 ‘그냥 한번 걸어봤다’

그런데 ‘그냥’이라는 이 말의 무게는 무겁고 온도는 따뜻하다.

그 말 속에는 ‘안 본 지 오래다, 주말에 한번 들리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이런 말이 오롯이 녹아 있는 말이다. 그냥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의미지만, 이유를 대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말이기고 하다.

 

귓불을 스친 그 바람이 수상하다

모둠발로 엿보던 그 눈길이 수상하다

허리춤 휘감아오던 그 손길이 수상하다

고 생각하는 순간,

와락 디밀고 들어온 그대 아니던가요

그때 그대도 물길로 열렸을까요

함께 출렁였을까요

아릿한 현기증이 수상하다

식물성 풀벌레소리가 수상하다

상큼 발랄한 미각의 유혹이 수상하다

고 생각하는 순간,

마구 연초록 샘물로 솟던 풍경 아니던가요

그때 그대도 침묵의 길이로 열렸을까요

함께 고요의 어법이었을까요 -신병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

 

아이슈타인은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열렬한 호기심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보여주지 않아도 헤아려 보고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 들어주는 호기심의 화법이면서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과의 공감화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