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의 날’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학도병의 날’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 강성훈
  • 승인 2018.07.16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일, 여수서 전남 최초 학도병 출전 기념식 열어
전국 최초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식이 13일 진남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전국 최초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식이 13일 진남문예회관에서 열렸다.

 

6·25전쟁 발발 초기인 1950년 7월 13일 여수 등 전국 첫 자원 입대한 학도병의 충혼을 선양하기 위한 ‘학도병의 날’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는 ‘혈서를 쓰고 전국 최초 자원입대한 전남지역 학도병 6·25출전 68주년 기념식’을 13일 진남문에회관에서 참전학도병, 국가유공자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생존학도병 등 기념식 참석자들은 전국 첫 학도병 183명이 전쟁발발 10여일 만에 자발적으로 입대해 대부분 장렬히 산화했는데도 전투 현장의 유해발굴 의지가 부족한 데다 ‘학도병의 날’ 제정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전남지부가 주관하고 전남도와 육군 제7391부대가 후원하는 이 날 기념식은 학도병들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혈서를 학교장에게 제출하고 자원입대했던 그 날과 10여 일 후인 7월 25일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인근 야산에서 벌어진 첫 전투를 되돌아봤다. 

입대할 의무가 없던 여수와 순천 등 전남지역 17개 중학교 학생 183명이 ‘조국수호“의 혈서를 쓰고, 1950년 7월 13일, 순천에 임시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자원입대, 6개소대의 독립 학도중대로 편성되어 9일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후 무기도 없이 이미 전주탈환작전에 투입됐다.

북한군은 아군이 낙동강 최후방어선 전열구축을 미처 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선의 측면으로써 방어병력이 전혀 없고 무방비 상태이던 경남 진주를 7월 25일 중으로 점령하고 이어 마산을 거쳐 임시수도 부산으로 침공해 전쟁을 속전속결 끝내려 계획했다.

학도병들은, 1950년 7월 25일 새벽, 전남 구례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경남 하동 화개장터 앞을 은밀히 지나가던 소련제전차 및 대공화기 등으로 중무장한 인민군 최정예 6사단 선봉대대를 소총만으로 매복 공격함으로써 적의 진공을 15시간 지연시키는 혈투를 벌였다.

이 ‘화개전투’에서 학도중대는 70명이 전사 및 실종되는 희생을 치렀으나, 그 희생으로 진주함락을 7일이나 ‘지연’시켜 낙동강 최후방어선 전열구축에 필요한 절대 절명의 골든타임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같은 사실들은 월남전참전자회 여수시지회가 2014년 7월 처음으로 기념식을 개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6.25참전학도병동지회 정효명 회장(84세)은 답사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했던 소년들의 충성심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는데, 월남전참전 후배들을 비롯한 민관군이 힘을 합쳐 매년 성대한 기념식을 치뤄 이제야 한이 풀리는 것 같다” 라고 말했다.

6.25참전학도병충혼선양회 고효주 회장은 “전남지역 학도병들의 화개전투 등 활약상이 6.25전쟁사에 정확히 기록되고, 학도병 가족찿기 및 추가 유해발굴, 충분한 자료수집 및 백서발간, 다큐멘터리 및 극영화 제작 추진 등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계획을 말했다.

또, “6.25전쟁발발 후 전남지역 학도병들이 가장 먼저 조국수호를 혈서로 다짐하면서 출전한 7월 13일을 ‘학도병의 날’을 정부기념일로 지정해서 수많은 6.25참전 학도병들의 충혼을 계속 선양하고 후대들에게 기억시켜 줄 것을 국가에 청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