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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러 비행기타고 다니는 놈은 너 뿐일 거여”
“풀베러 비행기타고 다니는 놈은 너 뿐일 거여”
  • 강성훈
  • 승인 2018.06.26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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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여수갯가길 올해 첫 풀베기 현장을 가다]
예초작업에 녹초가 된 갯가사람들, “그냥 좋아서”
“갯가길 문화와 생태, 사람들을 담아내는 과제도”

 

여수갯가 회원들이 23일 올해 첫 예초작업에 나섰다. 김경호 이사장과 신미경 원장이 예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수갯가 회원들이 23일 올해 첫 예초작업에 나섰다. 김경호 이사장과 신미경 원장이 예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어제 늦게 도착했는데 친구가 그러더라, ‘니는 풀 베러 비행기타고 다니냐? 대단하다’”

갯가길 예초작업을 위해 모이기로 한 이른 아침. 차에 올라타자마자 전날 제주에서 날아 온 김경호 (사)여수갯가 이사장이 던지는 인사말이다. 이내 함박웃음이 번졌다.

수시로 길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올해 본격적인 갯가길 예초작업을 진행키로 약속한 날이다.

5개 코스 가운데 갯가꾼이 가장 많이 집중되는 5코스 ‘화태갯가길’을 먼저 진행키로 했다.

해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부터 5차례 정도의 작업을 진행해야 ‘갯가길’의 일년 예초작업 일정이 끝난다. 코스마다 15㎞남짓 되는 구간을 5차례에 걸쳐 예초작업을 해야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자연의 길을 되살린다’는 취지였던 터라 인공의 구조물들이 덧씌워지지 않은 갯가길의 풀 자라는 속도는 다른 길보다 배이상 빠르다.

“해마다 작업하는 속도는 느려지는데 풀 자라는 속도는 빨라지니 따라갈 수가 있냐”

갯가길 예초작업은 현장 베테랑이 다 된 김 교수에게도 벅찬일이다.

가까운 시장에 들러 장갑이며, 낫이며 장비를 챙겨 내달리길 30여분. 월전 갯가길 초입에 도착했다.

월전항에 모인 갯가사람들이 예초작업에 쓸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월전항에 모인 갯가사람들이 예초작업에 쓸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수일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경호 이사장이 SNS를 통해 예초작업을 예고하고 동참을 호소한 터라 이를 보고 기꺼이 수고를 마다않고 달려온 이들이 환한 얼굴로 반긴다.

여수갯가의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이회형 상임이사를 비롯해 기문종 이사가 생업을 뒤로 한 채 달려왔고, 노인요양시설 ‘진달래마을’ 신미경 원장이 예초기 2대를 짊어지고 지원에 나섰다.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는 강만오 후배도 함께했다.

“인원이 이것밖에 안 돼요?” “조금 이따 엄청 올 거야”

의심은 갔지만 믿을 수 밖에.... 그래도 이번 작업에 동원된 예초기만 4대로 장비 측면에서는 이전 작업에 비해 엄청나게(?) 보강됐다. 간단한 작업코스 확인과 함께 2인 1조로 각자 흩어졌다.

오늘 예초를 진행할 화태갯가길은 여수갯가길 5코스로 여수시 남면 화태리 치끝에서 출발해 마족, 월전, 독정항, 묘두, 꽃머리산, 뻘금을 거쳐 화태대교를 건너 돌산 예교에서 끝나는 총 5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코스다.

전체 길이는 13.7km 정도로, 완주 하는데 4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한반도 형상을 닮았다는 화태도는 돌산도, 횡간도, 나발도, 두라도, 월호도, 개도, 송도 등 9개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바다호수 안의 섬을 연상케 한다.

섬에서 가장 높은 꽃머리산에 오르면 돌산, 남면, 화정면, 화양면 등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으며, 발 아래로 화태대교가 손에 잡힐 듯 자리한다.

화태대교 개통이후 마땅한 컨텐츠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마을 주민들의 요청으로 시작돼 2016년 10월부터 준비작업을 거쳐 6개월여만에 개통했다.

지난 1년여동안 수천명의 갯가꾼들이 다녀가며 여수를 대표하는 걷기길 컨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갯가길의 예초작업은 1년이면 5차례이상 진행된다. 예초작업에 여념이 없는 기문종 이사.
갯가길의 예초작업은 1년이면 5차례이상 진행된다. 예초작업에 여념이 없는 기문종 이사.

 

오늘 하루 우리가 맡은 구간은 월전에서 독정에 이르는 약 2㎞ 가량이다.

예초기는 제대로 다뤄본 적 없던 터라 그래도 자칭 전문가라는 기문종 이사 차지다. 낫을 들고 뒤를 따른다. 초입부터 길게 자란 잡풀들이 기계음과 함께 여지없이 꺾여 나간다. 뒤따르며 풀들을 길섶으로 치우고, 길쪽으로 뻗은 잔가지를 치며 나간다.

이내 숲길로 접어들며 손쉬운 작업이 이어지는 듯 하다. 하지만, 예초기가 수차례 꺼지를 반복한다. 어느새 시동을 켜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오늘따라 30도 넘는 무더위에 굵은 땀방울이 연신 등을 적신다.

단순노동은 요령이라고 하는데, “언제 해 봤어야지” 괜한 투덜거림이 이어지더니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터진 듯 장갑 속으로 끈적임과 약간의 고통이 뒤따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잡풀구간이 끝나고 시원스레 뻗어나간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왼편으로는 널따란 호수가 펼지고, 수척의 낚시배들 난간에 매달린 강태공들은 세월을 낚느라 여념이 없다.

20여분 남짓 지났을까... 눈과 마음이 호강한 호젓한 소나무 숲길도 끝이다. 눈앞에 까마득한 풀숲이 펼쳐진다.

가슴께까지 차오른 풀숲은 여기저기 촘촘히 뻗어내린 칡넝쿨과 어울러져 정글 아닌 정글을 만들어 버렸다.

긴 호흡과 함께 예초기를 작동시키며 앞으로 나가 보지만, 30여분 남짓 굵은 땀방울과 함께 해치운 풀숲은 10여미터에 불과하다. 30여분 더 풀숲과 씨름하고 있던 차에 전화벨이 울린다. 이장님이 한턱(?) 쏜다는...

장비를 길 옆에 내려놓고 발걸음은 옮겨본다. 1시간여 남짓 잡풀을 제거한 것 같지만, 뒤 돌아본 길은 30여미터만 시원한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다. “허벌나게 한 것 같은디 겨우...”

긴 한숨과 오후 일정에 대한 우려를 뒤로 하고 풀숲을 헤치며 이장님 댁으로 향한다.

섬마을 해산물들로 차려진 맛깔스런 갯가 밥상.
섬마을 해산물들로 차려진 맛깔스런 갯가 밥상.

 

군소며, 생선구이, 방풍나물 무침까지 섬마을의 소박한 상차림이 기다린다.

갯가길이 개통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자 이성남(64세) 마을 이장님이 직접 문을 연 ‘화태식당’이다.

올해 갯가길 예초작업에 투입된 일꾼들이 비로소 한 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오전 작업에 대한 품평(?)을 쏟아낸다.

김 이사장은 “여수관광의 비교우위 자원은 365개에 이르는 섬이다”며 “섬마다 간직한 문화와 자연에 긴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이 지속가능한 여수관광을 만들어 낼 것이다”고 말한다.

“갯가길 역시, 그 지속가능한 여수관광을 이어가기 위한 여수사람들의 수고로움이다”며 “갯가길에 섬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잊혀져가는 섬의 문화, 생태 등을 새겨넣는 보완 작업을 통해 여수사람들과 여수를 찾는 관광객들이 힐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고 덧붙인다.

혼자서 다섯사람 몫의 작업량을 해 치운 이회형 이사는 “내 손끝에서 지역의 관광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하는 갯가꾼들이 건네는 인사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웃어보인다.

이성남 이장은 “화태도가 다리 개통 이후 낚시꾼들만 오가면서 지역에는 도움이 안되고 쓰레기 처리하기만 바빴는데, 갯가길 개통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면서 많는 긍정적 변화를 겪고 있다”며 섬마을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오후 작업을 위해 아쉬운 점심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오전내 애를 먹었던 장비도 교체키로 했다. 오전에 쓰인 예초기 칼날이 ‘잔디깎이용’이었다는...

풀베기용으로 바꾼 칼날은 거침이 없다. 배이상 빨라진 속도로 풀숲을 헤쳐 나간다.

이날 전주에서 왔다는 갯가꾼들이 예초작업을 하는 일행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지나친다.
이날 전주에서 왔다는 갯가꾼들이 예초작업을 하는 일행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지나친다.

 

오전에 뜸하던 갯가꾼들의 발길도 쉼없이 이어진다. 전주에서 왔다는 갯가꾼들은 “풀숲 때문에 힘들었는데, 예초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넨다.

오후 작업 시작 4시간여. 독정항을 가리키는 갯가길 표지판이 반긴다. 팔끝의 감각도 무뎌진 걸 보니 끝나긴 했나 보다.

먼저 작업을 마친 이회형 이사팀과 조우한다. “현장 노동자들도 오늘같이 일 시키면 내일부터 안 나온다고 할 걸. 그래도 올해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헉! 대답할 기력도 없이 거친 숨만 내뱉는다.

이렇듯 여수갯가 사람들의 손길 끝에 갯가길이 만들어졌고, 가꾸어져 가고 있다. 고단했던 하루였지만, 420㎞해안선을 이어가는 수고로움은 멈추지 않을 거란다.

“수고 많으십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힐링하고 갑니다. 내년 봄에 다시 한번 다녀가렵니다”

앞서가는 갯가꾼들이 던지는 인사말에 장갑속에 묻힌 물집상처는 벌써 아문 듯 감각이 없다.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화태도는 지난해 갯가길 5코스가 개장돼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화태도는 지난해 갯가길 5코스가 개장돼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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