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베를린 장벽’으로 통일염원하던 작가, 여수를 찾다
‘사라진 베를린 장벽’으로 통일염원하던 작가, 여수를 찾다
  • 이상율 기자
  • 승인 2018.05.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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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설치 미술가 이은숙
예울마루에선 소통의 의자(chair of understanding) 전시
'사라진 베를린 장벽'이라는 설치 미술로 세계적 호평을 받은 이은숙 작가가 여수를 찾았다.
'사라진 베를린 장벽'이라는 설치 미술로 세계적 호평을 받은 이은숙 작가가 여수를 찾았다.

 

GS칼텍스 예울마루의 7층 대 전시실 <빨주노초파남보 展>에 유독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설치 미술가 이은숙 작가 소통의 의자(chair of understanding)다.

투명한 폴리에스테르 필름에 형형색색의 형광 실을 눌러 붙여 그림과 글자를 색인하고 내부에 자외선 발광체를 삽입한 550개의 블록을 쌓고 바닥에는 네모진 형광의자가 즐비하게 놓여있다.

투명한 의자의 내부에는 관계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문구들이 삽입돼 있다.

작품에 사용된 주요 구성요소인 실은 서로 단절된 관계를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고 조그만 소형 의자는 마주 보고 앉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의미로 소통을 위한 대화의 장소를 의미하고 있다.

가정과 식구 간의 분열, 사람과 사람간의 분열, 이웃과 이웃의 분열, 국가와 국가 간의 분열을 대화로 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실이 서로의 관계를 연결해 주고, 떨어져 있는 서로의 관계도 묶어주는 의미를 상기시켜준다.

이은숙 작가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욱 인기가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11월,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대형 조명 설치작업 ‘사라진 베를린 장벽’을 선보여 독일과 유럽 일대에 시선을 끌었다.

장벽이 무너진 현장에서 높이 4.5m, 길이 25m로 설치된 이 작품은 조국 분단으로 생이별의 아픔을 겪은 한국의 이산가족 5000명의 사진과 이름을 담은 장벽을 설치하고 동·서독 장벽이 무너진 날, 벽을 뚫고 나오는 통일 퍼포먼스를 펼쳐 독일 및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의 통일 이슈를 무너진 베를린 장벽 현장에서 세계에 알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1면을 장식했고 BBC, 로이터, CNN에도 보도됐으며 베를린의 한 방송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2015년 8월 15일에는 광복 70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 남한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을 실로 연결하는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담은 ‘Korea. Bound to One’ 이란 퍼포먼스를 펼쳤다.

남한 대사관에서 주황색과 형광색의 실타래 두 개를 매고 3.8km를 행진해 북한 대사관 앞에 연결했다. 3.8km는 3.8선을 상징한다.

실풀이는 ‘망인(亡人)의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면서 이승에 맺힌 것이 없도록 하는 굿’을 의미한다. 시루 구멍에 망인의 수저에다 실타래를 맨 것을 꿰어 빼내는 것으로 한을 풀었다.

이런 우리 전통 굿의 일종인 살풀이를 실 풀이로 재현해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마음을 담은 메세지를 남겼다.

2013년 2월에는 파주 민통선 자유의 다리 철책에서 ‘정전(停戰) 60년…그리운 북쪽 가족을 부른다.’라는 조명설치 작업으로 겨레의 통일 염원을 기원했다. 투명 폴리에스터 필름에 다양한 빛깔의 형광 실을 일일이 손으로 눌러 붙인 뒤, 자외선 발광체를 삽입했다.

발광체가 빛을 발하면 북녘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의 이름과 사연, 6.25 피난민의 사진이 형광 실과 함께 조명 속에 흩날렸다. 이산가족의 이름에서 따온 한글 자모 모양의 구조물 안에는 자외선 발광체가 있다.

작가의 최초의 작품은 정치적 의미가 짙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의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의 해결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최근 소소한 일상과 더불어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를 눈여겨보고 서로 연결과 융합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작가는 2006년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역사적 현장인 체칠리엔호프 궁전 앞 호수위에서 “뉴 포츠담 회담”이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호수위에 소형보트를 띄우고 폴리에스테르 필림에 실과 헝겊을 엮는 기법으로 지붕이 둥근 건축 형 구조물을 만들었다.

1945년 7월 17일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회담으로 한국의 분단이 결정됐던 과거를 상기하고 장래의 만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최근 작품에서는 소통과 결합에 빙점을 찍고 있다. 지난 2016년 3월 불루에 미술관에서 열린 “실과 빛-관계의 시작”에서도 가족과 남북 관계다. 가족은 거리로 보자면 가장 가까운 것이고 국가는 삶의 단위로 보자면 추상적이라 할 만큼 먼 관계다. 그러나 그는 이 모두가 같은 거리에 있고 같은 크기로 포용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은숙 작가가 분단, 이산, 통일 등에 몰입했던 것은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6.25사변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함흥에서 살았던 아버지가 북에 가족을 두고 남쪽으로 내려와 새롭게 가족을 꾸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남으로 내려오기 전 이미 결혼해 자식이 넷이나 있었다. 갖은 방법으로 북의 가족에 대한 소식이라도 들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슬퍼하던 모습을 보았다. 전쟁과 분단, 이산가족의 아픔을 듣고 이를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국내 보다 외국에서 유명하다. 이화여대 섬유 예술과, 홍익대 공예과를 졸업하고 비닐과 형광 실을 이용한 작품을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유치하다"는 혹평만 받았다.

오히려 그의 작품을 눈여겨봐 준 건 독일의 큐레이터였다.

1999년 독일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은 뒤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대형 조명 설치작업 ‘사라진 베를린 장벽’을 계기로 유명작가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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