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언어와 세계에 대한 영원한 뚜쟁이다.
시인은 언어와 세계에 대한 영원한 뚜쟁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05.11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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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2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는 살아 있는 생물(生物)이다.

살아 꿈틀대는 생물이 되게 하는 힘은 언어에 있다. 그리고 어떻게 말과 말을 연결할 것인지 하는 기술에 달려있다. 새로운 의미, 낯설게 하기는 말과 말의 연결, 혹은 대상과 말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다.

시인은 언어와 세계에 대한 영원한 뚜쟁인 셈이다.

살아 있지 않고 생동감이 없다면 그 시는 기록에 불과한 언어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도 땅에 심지 않으면 씨앗의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시도 생각만으로 구성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씨앗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자생력을 가져야 씨앗의 구실을 다하는 것이 된다.

대상과 말, 말과 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어떻게 정서적 논리에 닿아 따뜻하게 사람의 가슴에 안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과제로 남는다.

대상이 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인식,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력이 뒷받침 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후에야

어머니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렇게 창창하던 분이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이

일용할 양식이 떨어졌는가 봅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게지요.

어머니는 지금 남아있는 몇 개 목소리로 견디는가 봅니다

가끔 드리는 전화 한통으로 사나흘을 견디곤 하지만

목소리도 유효기간이 있어

전화로 하는 목소리, 얼굴로 하는 목소리,

장남이 전하는 목소리, 동생이 전하는 목소리의

약발이 각기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유효기간이 제일 긴 것은

오래전에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빛깔로 기억 속에 남아

함께 저물어 가고 있는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단번에 눈빛이 초롱해지며

‘그럼, 니 아버지는 그랬제.’

소녀처럼 해맑은 웃음도 띠웁니다.

오늘 아침 한통의 전화에

어머니의 하루가 탱탱해지면 좋겠습니다 - 신병은 <어머니의 양식>

 

먼저, 이 시를 읽으면서 나와 어머니의 사이에 설정된 관계의 화법을 느낄 수 있다. 시골에 홀로 계신 노모에게 멀리 사는 아들이 주는 전화 한통이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내력도 함께 읽으며 아침 저녁 가까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배어난다.

생각의 거울은 깨달음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유언을 쓰듯 시를 써야 삶의 진솔한 고백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시는 자기 고백이다. 내 몸 속의 언어가 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이유는 깨달음을 주기 위한 거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생물로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어의 씨앗을 내 몸에 심어 말의 씨를 꽃피워야 한다.

참 좋은 시의 화법은 어떤 대상이 어떤 상황과 절묘하게 만남으로써 태어난다.

평범한 일상의 말들이 서로 만나서 리듬을 만들고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 내는 것이 시어가 갖는 매력이다.

 

홍어 / 정일근

먹고사는 일이 힘들 때 홍어를 먹자. 한세월을 푹푹 썩어 가다보면 맛을 내는 시간이 온다

공양 / 안도현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발, 몰래 숨어 퍼드리는 칡꽃향기 육십평, 산벌의 날개짓 일곱근 .....

빈집 / 정일근

사람없이 비어있는 집이 아니다. 집에 사람이 혼자일 때 빈집이 된다

어둠 / 이상국

나무를 베어내면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

골다공증 / 신병은

하늘 나라 먼길을 가볍게 날기 위해 어머니는 지금 몸을 비우시는 중이다

 

언어는 대상과의 만남을 통한 의미 재생산이 가능해진다.

스위스 작가 페터픽셀의 세상 다르게 보기는 사물의 명칭을 바꿔 대입해 보라 권한다.

의도적 언어 비틀기다.

가령, 침대→그림, 책상→양탄자, 의자→자명종, 신문→침대, 거울→의자, 자명종→사진첩, 장롱→신문, 양탄자→장롱, 그림→책상 .....이렇게 명칭을 바꿔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낯선 진술이 가능해 진다.

‘아침에 그 늙은 발은 오랫동안 그림 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홉시에 사진첩이 세워졌다. 그 발은 벌떡 시려워서는, 아침이 쳐다보지 않도록 그가 깔아 놓은 장롱 위에서 뒤적여졌다.’

꼭 이래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시쓰기의 낯설게 하기와 관련하여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시를 사랑하는 일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침구를 마음에 두듯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사는 일과 같다.

자연과 사물을 읽는 법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새로워 질 수 없다.

자연과 사물 새롭게 읽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시를 잘 쓰는 비결이다.

살아있는 말과 죽은 말을 구별할 줄 알고, 상투적인 말의 재발견도 필요하다. 일상적인 언어의 의미를 재탐색하는 일이 곧, 대상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관찰력과 상상력이 뛰어나면서 문장도 탄탄해야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보다 ‘다른 것’을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것은 하나지만, 다른 것은 여럿이다. 새로운 것의 시야는 좁고, 다른 것의 시계는 넓다. 다른 시가 더 새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읽다보면 그 시를 읽는 과정에서 그 시의 대상이 갖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언어 감각, 상상력의 생동감, 상투성과의 싸움 등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다르게 볼려는 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기 체험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그것을 섬세한 언어의 풍경으로 바꿔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시적 독창성이 영구적인 것은 되지 못하더라도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천진한 눈으로 훑고 발랄하게 뒤집으며 심미적 이성으로 제 구성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관념을 그대로 읽는 것은 상투성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다르게 읽는 것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오성(悟性)과 무관하게 사물의 핵심을 찌른다. 이게 직관의 힘이다.

상투성에 기대는 것은 게으른 탓이다.

납득할 수 없는 불가해성, 결론의 유보를 용납하지도 않는다.

시는 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존재’의 느낌으로 이루어진다.

‘존재’의 심오성에 가 닿으려면 깊은 교감, 작용이 있기 전까지는 대상을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문장에 대한 어법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연인과 나는 골목어귀에서 오랫동안 입맞춤을 했다’

‘연인과 나는 서로의 주머니에서 하루치의 골목을 꺼내 오랫동안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요’

문장도 그렇다

새로운 어법이란 다른 화법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가끔 외국인의 화법처럼 어눌하면서 낯선 어법이다

화법이 다르면 문장이 달라지고 문장이 달라지면 의미도 달라진다

무늬 지다, 무늬가 생기다, 무늬가 지워지다 .......

시에 담긴 내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생각)이어야 하며, 그러면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한 적 없는 말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새로운 시가 될 것이며, 또한 시인과 독자가 잘 통하는 시가 될 것이다.

 

니 뭐하노

햇빛 멱살 잡고 놀고 있다

와 머라카더나

아이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시비 한번 걸고 싶었다

봄이다 아이가 -신병은 < 봄, 피다>

 

신병은(시인,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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