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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대한 배려가 창작의 힘이다
대상에 대한 배려가 창작의 힘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02.12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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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1]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 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신병은 <곁> 전문

 

맑은 낯을 한 꽃이 있다. 생명들의 기운이 점차 쇠락해지는 늦가을에 꽃의 얼굴을 본다.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아 아주 고요한 내면으로 꽃은 있다. 자기를 잘 제어하면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넉넉하다고 느끼면서 꽃은 있다.

호수의 수면과도 같은 꽃의 조용하고 잠잠한 내부로 시인이 들어간다.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이 이끌려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끌려 눈길을 주고받고, 내심(內心)을 나눈다는 뜻이다.

홀로 지내느라 누군가를 수용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놀람이 없지 않았겠지만 꽃은 시인에게 곁을 허락한다. 그리고 다시 애초의 평온하고 깨끗하고 수수한 낯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귐이라면 상스럽지 않다.

이 꽃과 같은 영혼의 맑음과는 사귀고 싶다. -문태준(시인)쪼그려 앉아 꽃을 바라보는 나는 지금 꽃과 조용히 교감하고 있다. 꽃도 나도 함께 서로를 배려하는 가운데 함께 맑아지고 있다.

‘배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새롭게 일깨우는 관계기술이다.

배려는 상대에 대한 인간적 친밀과 가능성, 상대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치다.

상대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상대를 생각하는 가장 세련된 삶의 기술이면서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출발이 된다.

배려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하면서 즐겁고 쉽게 마음의 문을 열고 만나게 된다. 배려하는 사람도 상대도 스스로 행복해진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

 

벌레먹은 나뭇잎이 예쁘다는 의미내용은 시에서 밝히고 있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생각을 한번 더 뛰어넘어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는 진술로 나아간다.

이 시는 배려의 마음에서 발견된 관계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창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

요즘 세상은 큰 것보다는 사소한 작은 마음에서 감동을 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 그렇게 자장면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그런 거야” “아직도 그림에 관심이 많니?”하며 사소한 것을 기억해 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소하지만 항상 기억해주는 변함없는 관심이 커다란 마음으로 전달된다.

배려가 곧 감동인 셈이다.

진정한 감동은 배려와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시창작도 배려로부터 시작한다.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 그리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있을 때 관심이 시작된다. 관심이 있을 때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도 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듣게 된다.

관찰은 배려를 익히는 첫걸음인 셈이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출발인 셈이다.

 

나는

나의 시는

나무를 풀을 꽃을 바람을 물을 별을 달을 바다를 하늘을 산을 새벽을 아침을 일출을 소나기를 햇살을 저녁을 빛을 어둠을 사랑을 꿈을 기억을 아픔을 눈물을 웃음을 그리움을 휴일을 그녀를 그대를 어머니를 아버지를 하나님을 밑그림으로 베꼈습니다

나는 나의 손방을 베꼈습니다

나는 나의 무지를 베겼습니다 -신병은 <겉멋 들다>

 

무엇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솜씨가 ‘손방’이다. 무얼 전혀 모르는 게 ‘무지’다. 이 두 어휘는 공히 ‘나의’라는 말에 의해 수식되면서자신이 베낀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손방과 무지를 베낀 꼴이 되었다는 말이다. 겸양의 발언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을 통해 나를 본 셈이다,

대상을 제대로 보려면 자신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통해 남과 대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창작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대상을 통해 결국 나를 안다는 이야기, 즉 꽃, 풀, 나무, 바람, 어둠, 하늘.....을 통해 나를 보는 일이다 .

그 말의 또 다른 화법은 나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는 대상을 통해 바라본 나의 이야기이면서, 또 나를 통해 바라본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시창작을 통해 순간순간 만나는 깨달음은 자신을 새롭게 읽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그 꽃>

 

이 짧은 시를 읽다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폭넓은 성찰이 가능해진다.

정신없이 살지 말고 정신 차려 살아야 한다고, 깨어 있으라고,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을 높이며 성숙시켜라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펴라고 한다.

그래서 공감의 폭이 넓다.

이처럼 창작은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만들고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고와 대상을 재구성 혹은 재해석하고 재발견의 능력이다.

대상을 통해 나를 보고, 나를 통해 대상을 본다.

슈프랑거는 주체의 발견은 사물들이나 사람들로부터 분리된 자신만의 세계의 발견이다. 그러한 발견은 위대한 고독의 경험이라고 했다.

자아발견, 시도 마찬가지다.

발견된 깨달음은 자신의 말로 자신의 이야기로 일반화 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숲을 묘사하려면 먼저 숲에서 나와야 한다. 숲에서 나와 있는 위치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배려도 거리의 문제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심있는 거리,

대상에 안겨있는 의미를 새롭게 읽는 법은 관심과 배려, 그리고 대상을 통해 나를 새롭게 읽는 힘인 셈이다.

그것은 또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사물과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은 풍경을 열심히 의심하는 일이고, 질서화된 풍경을 의심하는 일이고, 별일 없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면서 우리가 미처 못보고 놓친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일상의 풍경, 자연의 풍경이 사람의 풍경이다.

그래서 시는 언어를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하게 한다.

 

그냥 피는 것이 아니었어

그냥 붉은 것이 아니었어

고요를 건너는 한겨울의 침묵으로

곁을 준 햇살의 속마음으로

훅훅 불어댄 입김이

어찌 뜨겁지 않으리

그리움과 그리움의 사이에서

어찌 간절하지 않으리

나 지금 죽어도 좋아

나 지금 떨어져도 행복해 - 신병은 <동백꽃 피다>

 

신병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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