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 현상과 포즈와 공간에 대한 재발견
대상과 현상과 포즈와 공간에 대한 재발견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12.08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병은 시인의 시 먹는 법, 시 줍는 법 30

시 창작의 키워드는 대상과 현상을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와 그것을 어떤 말, 문장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요약된다.

가령 일반 수국과는 달리 산수국의 생태를 보면 아주 작은 참꽃 가장자리로 큰 헛꽃이 핀다. 여기에서  참과 거짓의 삶의 현상을 유추해 낼 수 있고, 눈앞에 검은 무언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을 비문증이라 하는데 이는 눈과 눈 사이를 날아다니는 허상이다.

이를 나비로 보는 순간 나는 장다리꽃에 앉고 싶은 나비가 되고 그래서 나도 한때는 꽃이었다는 진술이 가능해진다. 또는 우리가 늘 받는 건강검진을 몸을 뒤지는 수사의 하나로 볼 때 가문의 병력까지 뒤지고 자필서명까지 요구하는 의사는 명수사관이 되는 등 참 많은 진술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인 명함을 건네는 행위를 성명, 전화번호, 직업, 신분을 건네는 것으로, 즉 살아온 이력을 건네는 것으로 유추된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세월에도 잔주름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많은 문을 여닫았는지를 생각해본다, 
수많은 문을 들락거렷다. 열고 닫고 잠궜다. 머릴 찢기도 하고 잠들기도 하고 문 앞에서 좌절하고 이내 돌아 나오기도 하고, 오직 나만 여닫을 수 있는 기억의 문도 있고, 수십 번 열고 닫는 마음의 문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문은 누군가에게는 열릴 듯 열리지 않은 장벽이고 누구에게는 앞에 서기만 해도 들어설 수 있는 문일 수있다. 몸이 닫히면 영원히 문을 닫는다는 생각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시인은 대상과 현상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의미체험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문장과 언어수단을 선택한다. 그냥 쓰는 게 아니라, 그 대상 그 상황에 맞는 말을 찾는 것이다. 창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쓰는 말, 우리 곁에 놓인 말 중에서 지금 내가 표현하려는 것에 딱 맞는 말을 찾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늘 촉을 세우고 뭔가를 찾는 사람이다.

누가 
한 번도 바깥이 되지 못한 생각을 아프게 갉아 줬으면 싶다 
그러면, 나도 
따스한 핏방울 배어난 상처의 빛깔로 세상에서 아름다운 풍경으로 발효되리

-신병은 <낙엽>

말은 공감을 목적으로 건넨다. 
공감은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으로 발화자와 수신자가 함께 만나는 감정의 일치점이다. 그러고 보면 독자도 작가의 작업에 관여하고 작가 또한 독자의 체험에 다분히 의존하게 된다. 독자도 작품의 재생산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허구지만 현실 이상의 진실성을 가졌을 때 허구 또한 그 가치가 갖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너도 한 송이 꽃이야
하나의 우주야

꽃이 되는 일은
세상 속으로 나를 꺼내 놓은 일이야
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일이야

햇살에 마음 내려놓는 
뒤태 환한 꽃들의 어록, 

나를 기억해 줄 누군가가 없어도
사랑을 증언해 줄 누군가가 없어도
한번 꽃을 피운 생은 지더라도 영원히 꽃이야         -신병은 <꽃들의 어록>

꽃은 하나의 우주다.
사람도 나름 하나의 우주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꽃들은 ‘한번이라도 꽃을 피운 생은 지더라도 영원히 꽃이 될 수 있는’ 삶의 표상이 된다. 그래서 꽃이 되는 일, 나를 세상에 세우는 일이라는 진술이 가능해진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 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 접기로 한다 / 박영희

우리 모두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이 접고 접으면서 살아왔다. 얼마나 많은 서움함과 원망스러움이 있었던가. 그때마다 접고 접어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 ‘접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의 재발견이다. 접는다는 것은 눈감아주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수도 있고, 접어야 날릴 있는 종이비행기가 되고 접어야 간직하기도 편하다. 접어야 너도 나도 편하다.    

말끔히 쓸어낸 마당 넓은 아침이면 좋겠다 
햇살 닿은 산마루에 모여 앉은 키 작은 바람소리면 좋겠다 
엊저녁의 눈물 자국 피어난 웃음이면 좋겠다 
맑은 눈빛으로 그대 바라보는 여유면 좋겠다 
그대 아침을 위한 나의 기지개면 좋겠다 
가만히 다가와 귓볼에 풀어놓은 입김이면 좋겠다 
몸살 끝에 밀려온 살가운 그리움이면 좋겠다 
제 혼자 키를 세우는 사랑이면 좋겠다 
그대 기슭에 숨어 그대 생각 엿보는 겨울잠이면 더 좋겠다 

-신병은 <겨울아침 생각>

문득 겨울아침에 일어나 적은 단상이다. 세상이 닫혀있고 늘 답답함이 반복되고 인간의 이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런 삶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긁적여 본 시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고 너가 맑아 나도 맑은 사회, 무엇보다 서로의 생각 엿보는 삶이면 참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상상력은, 창의력은 의외로 평범한 일상, 낯익은 일상에서 나온다.
늘 강조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다르게 볼 것인가의 문제고, 다르게 본다는 것은 개념을 다르게 읽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개념, 의미는 시적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이상국 <쫄딱> 

내가 사는 동네에 새로 이삿짐을 푸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이사왔을까?, 뭐하는 사람일까?“하며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그 때 어린 계집아이가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왔다‘는 한마디가 골목의 적막과 쓸쓸함을 한순간에 날려버린다.

화자는 이를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고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면서 쫄딱 망한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참으로 가슴 따뜻한 ‘쫄딱 망했다’는 의미의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시창작은 대상, 현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다.
새롭게 풀어내는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