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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은 경험의 발효다
신병은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29
2017년 11월 14일 (화) 09:14:56 남해안신문 nhanews@nhanews.com

창작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것이지만, 없는 것을 탐색해 내는 일이 아니라 있는 것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은 곧 세계와의 대화다.

경험 중의 하나인 독서도 마찬가지로 저자와의 대화이며, 세계와의 대화이며, 결국 나와의 대화가 된다. 나와의 대화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발효의 대화다.

대화에는 막힘이 없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읽고 만지고 들어야한다.

독서야말로 생각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힘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워진다.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렸고,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 ‘보봐리 부인’을 쓴 프로베르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3일 동안 방바닥에서 골머리를 앓았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18년 걸려 완성했다.

프랑스 추리소설의 대가 조르쥬 심농은 영감을 얻기 위해 1만여 명의 여성을 사궜고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는 단 하루를 쓰는데 8년이 걸렸다.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집필을 위한 자료수집을 20년이나 걸려 했다고 한다.

모든 상상력은 경험의 발효에서 발아한다.

천가지 경험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문학은 언어로 인생을 모방하는 예술이라 하지 않았던가. 사건을 모방하면 소설이 되고 감정을 모방하면 시가 된다. 그래서 모방의 다른 말은 재현과 반영, 발견과 적용일 것이다.

시 창작은 끊임없는 타자와의 대화이자 소통의 방식인 셈이다.

꽃의 뒤태 - 한 잎 한 잎 떨어진 뒤에 남는 시간의 결입니다.

비오는 날 은행나무 이파리는 무슨 냄새가 날까 - 물비린내가 납니다

소통의 시작은 질문이고, 좋은 시는 언제나 질 좋은 질문의 결과물이다.

질문은 자신의 음성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있는 응시기 때문이다.

이건 도데체 뭐지? 뭐 때문에 이렇게 말했지?

이런 질문이 새로운 것을 보는 큰 힘을 갖는다.

힘차고 울림이 있는 시는 그 대상의 본질에 알맞은 의미발견이고, 삶의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의미다.

문정희 시인은 ‘새로운 것이 아닌 이미 길들여져 있는 낯익은 것은 말짱 무효다’라고 한 말도 이와 같다. 시의 의미는 낯익은 상황에서 발견한 낯선 삶의 이야기여야 한다.

나뭇잎 - 바람의 지느러미

벼랑에 선 소나무 - 귀미테를 붙여주고 싶다

풀꽃 - 저 여기 있어요

씨앗 - 작지만 들어있을 건 다 들어있는 하나의 세계다

시 창작은 뭐 이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이 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평소에 읽어내기 어려운 삶의 기호가 내장되어 있다. 내장되어 있는 이야기를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이 시 창작이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입으로 발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전해지는 것이다. 잔잔한 깨달음이 있어 공감과 울림으로 다가가게 된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정호승 <꽃을 보려면>

우리 여수의 동백꽃 화가인 강종열 작가는 동백과 소통하기 위해서 전국의 동백을 찾아 동백이 갖는 원형적 호흡을 보려했다. 결국 그 소통의 결과물이 지금의 작품이다. 원시적 호흡력, 숨이 턱 막히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 울림에 파묻혀 동백꽃 향기를 만날 수 있다.

그의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면 독자들이 자신만의 비밀의 화원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며 스스로 작품을 속 정원을 행복하게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 속에 스스로 행복한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여 담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꽃 피우는 건 - 뒤곁에 고여 있던 그늘과 햇살의 기억이다

저물다 - 어둠에서만 피어나는 꽃, 저무는 이름들은 저마다 풍경으로 자리한다

새의 주소 - 지붕이 없는 새의 주소, 편백나무 길 5번지

고수레 고수레 - 허공에 새긴 할머니의 착한 어법

선암사 고매 - 600년 고요의 깊이, 오랜 해탈의 깊이도 한순간에 피었다 지는 꽃잎의 무게

겨울봄비 - 허공의 겨울나기, 허공에 매달린 초록의 꿈

군무 - 새대가리란 비유는 얼마나 죄스런 일인가

물들다 - 내 것과 네 것을 받아주고 내어준, 서로를 물들인 시간의 깊이

입춘 - 서로 따뜻해져야죠

선인장과 과꽃 - 곁이 된다는 것이 더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썩는다는 것에 대한 명상 ? 썩어 꽃이 되고, 노란 봄꽃이 되는 겨울 우화

길 위의 경전 -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

해탈 - 텅 빈 충만

어느 날 문득 - 생의 한순간이 허공에 걸린다, 말문이 막혀버린 아침을 만나다

그립다는 것 - 그대와 나 사이의 틈을 열어 서로의 생각을 포개어 두는 일

그대 안쪽에 슬그머니 바람기 묻은 마음을 기대두는 일,

해빙기 - 모르긴 해도 너와 나의 관계가 선명하게 풀리는 일

숲에 비가 오면 - 나무가 나무를 풀이 풀을 서로를 건너고 있다

바람과 함께 풀잎이 -서로의 이마를 짚고 안부를 묻는

야생화 만나기 - 낮은 자리의 세상에는 낮은 자리의 아침이 열린다

따뜻한 소리 - 쩡쩡 얼음이 녹는 소리, 얼어붙은 아침을 깨우는 소리,

손때 묻은 것들이 정겹듯이 시, 시의 언어도 그렇다.

문예창작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능란해야 한다. 그 솜씨는 늘 사용하던 말을 적재적소에 옮기고 연결하는 일이다.

상상은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을 다르게 상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새로움은 이미 있는 것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나고 부딪힘으로써 나온 결과다.

대상 말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대상의 의미도 말의 의미도 새롭게 거듭난다. 이것이 곧 시창작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시든 그 속에 따뜻한 인간과의 만남, 삶과의 만남이 담겨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늘을 벗은 그 마음 맑다

무상이다

목탑이다

해탈이다 -신병은 <고사목>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논어』의 사무사思無邪는 시를 대할 때 정직하라, 솔직하라고 한다.

창작자나 독자, 편집자 모두 이러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공자의 문학관이다.

그래서 시를 통해 사랑을 온전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 사람들이 서로 잘 통했으면 하는 마음, 잃어버린 자신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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