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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 스스로 보전을 선택한 마을
마을주민 스스로 보전을 선택한 마을
  • 한해광
  • 승인 2017.10.24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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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태계자원의 보고를 찾아서 3 - 율촌면 봉전마을]
故 아산 정주영 회장이 탐내던 보석같은 땅
▲ 마을주민들이 황금어장인 마을 앞바다를 가르키고 있다.

봉전은 면소재지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12.2㎞ 떨어진 해안마을로써 여자만과 바로 인접하고 있으며, 마을 진입로를 경계로 광암 부락과 인접하고 있고, 마을 죄측산을 경계로 반월내리 부락과 접해있다. 특히 율촌면 최남단 끝 마을이다.

이 곳은 마을이 생성되기는 지금부터 약 313년 전인 1684년경 진사이며 관직이 사북지정인 강위형이 사화를 피하여 경남 함양에서 광양으로 피신 은거하다 그의 4대손인 강선호씨가 호랑이와 싸우다 죽으니, 그의 부인인 달성서씨가 아들 강정열을 데리고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지금의 후손인 10대손이 살고 있다.

봉전은 장사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다. 마을 동쪽해안 가까이 아주 큰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옛날 한 장사가 봉전부락에서 죽을 한 그릇 얻어먹고 마을 주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던 바위를 들어 옮겨 놓아 주민들의 통행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생활변천으로는 전기가 1975년 3월에 처음 들어와(30호) 지금은50호 전거구가 혜택을 받고 있다. 버스 개통은 1984년, 지붕개량은 1970 년대 완전 마무리됐다. 마을회관을 들어서려 하다 좌측으로 보면 270년 된 배롱나무가 지켜서서 반겨주고 있었다.

이 마을은 여자만의 중간쯤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여수시 율촌면의 갯벌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봉전은 갯벌을 벗 삼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지방도 863호(연광선)인 해룡로를 따라오다 시작된 여수의 시작인 두봉에서 걸어서는 바닷길로, 차로는 상봉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찾은 이곳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봉전마을 갯벌에는 바지락, 참고막, 새고막, 석화 등이 주로 생계를 이어주고 전어, 멸치, 갈치, 문어, 등 어류 등이 풍부하다. 20년 전만해도 광암 봉전 반월 갯벌 일대가 참고막 종패 생산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해양환경변화로 품귀현상이란다. 새고막이 더 많이 생산되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다. 또 참고막이 없어서 산란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마을에 찾아 온 전문가들의 이야기란다.

이곳도 조개 일종인 나배기의 경우 예전엔 상당량을 수확했는데 지금은 아예 갯벌에서 이를 찾아보기도 힘들다고 한다. 바다생물의 보고라는 여자만에서 수년 사이 조개 한 종이 사라져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 몇 마리를 채취하였다고 한다. 해양환경이 변하고 있는 증거인 셈이다.

봉전에서 양식을 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은 작년에 새꼬막의 폐사율이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90%에 육박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상사댐의 역할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순천만 쪽으로 폐사율이 더 많고 달천을 바라보면서 봉전까지는 작황이 좋았다고 하니 해양환경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공론이다.

이는 순천만의 갈대가 순천만 노월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대변해주는 환경이다. 즉 들쭉날쭉하게 유량이 늘어나고 갯벌은 퇴적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봉전마을은 새꼬막 양식을 하는데 최고의 적지다. 배타고 100터만 가면 채묘시설이 있다. 현재는 50호에서 종패는 양식장 시설비 투자로 10억 정도 들었다고 한다. 50호를 3조로 14호정도로 나누어 관리를 한다고 한다.

한편 이 마을 주민들은 여수시에서 육지면으로는 제일 빠진 곳 봉전마을이란다. 70년대 중반 전기, 수도 등, 80년대 버스가 들어와 생활 편의시설이 제일 낙후된 곳이었다. 심지어 시집 장가가기도 힘들었다 한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근2000년대 들어서는 “쥐구멍에 볕 뜬다”고 우리 마을이 제일 좋아요 돌아보면 모두 별장식 집을 짓고 살고 잇다는 것이 증명이다. 故 아산 정주영회장이 헬기로 여수반도를 다 돌아다녀본 후 봉전 바닷가에 1,500평을 매입해서 영빈관을 지을 계획 이었다 고한다. 아쉬운 것은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돌아가셧다는 것이다. 그만큼 좋은 곳이다.

▲ 마을주민들과 답사팀이 마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때문에 봉전사람들은 보전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어패류 산란지역이 광양만, 여자만 , 득량만이었다. 그러나 광양만은 개발로 사라지고 여자만과 득량만만 남은 셈이다. 예전 원자력발전소가 이목에 들어서려다 못한 것도 다 미래를 보고 햇던 것 같다, 여자만을 살리려면 봉전일대에 해안도로 개설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여수시에서 봉전일대 18만평을 개발하기위해 토지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2017년 4월부터 개발을 시작한다고 해서, 부락 회의를 몇 번 거쳐 우리는 이대로 살란다고 결정하고 시에 건의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즉 마을주민 스스로 보전을 선택한 곳이다.

마을주민 이구동성으로 마을 숙원사업을 마을어항이 절실하다고 한다. 이는 마을이 여자만으로 쑤욱 나온 형(곶)으로 바람받이란다. 모든 태풍 등 지나가는 바람을 다 맞고 사는 곳이다. 이 때문에 바람 불면 배를 봉전에서 피해 이목 인근까지 이동을 한다고 한다. 이런 수고를 언제까지 해야 할 것인지 마을 주민들은 한숨만 쉬고 있었다. 배피할 장소를 기다리는 봉전마을 사람들이다.

한편, 지금은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율촌면 봉전? 광암의 경제할동과 어촌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2월 조사에서 봉전마을은 율촌면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안마을이다. 면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12.2㎞떨어져 잇고 여자만과 인접하고 있다. 총 호수는 49호이다.

이중 진주 강씨가 38호로 가장 많고, 타성으로 김? 서? 이? 조씨 등 다양하게 살고 있다. 한편 봉전으로 가는 길목에 광암 마을이 있다. 옥천 조씨가 25호정도 거주하고 있는 이 마을에 진주 강씨도 13호 가량 살고 있다. 광암도 봉전과 마찬가지로 여자만과 인접해 있고, 해안을따라 ”소댕이“로 통하는 도로가 나있다. 마을 앞은 좁은 만이비역을 막아 형성된 간척지가 있다.

봉전어촌계의 구성과 어장운영을 보면 봉전과 광암마을은 봉전 어촌계에 속한 마을이다. 봉전어촌계는 광암 입촌 봉전마을 어민으로 구성되어있고, 계원은 입촌에7호, 광암에 77호, 봉전에 49호다. 어촌계는 3개 마을이 공동으로 결성하였으나, 공동어장 해안지선은 이들 자연마을별로 구역을 나누어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어촌계는 1년에 한번 음력15일 경에 전체회의를 개최하여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이 세 개마을 중 봉전마을 해안지선의 영역은 다음과 같다. 봉전과 방월 경계지역에 공동어장지선을 표시하는 선돌바위가 있다. 선돌바위에서 직선으로 운두리 모래짝지를 바라본다. 두봉어촌게와의 경계는 “두랭이언더리”부근이다. 갈미바우에서 단도 칫등을 직선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광암과 해안경계이다.

특히 광암마을 새고막양식과 공동체적 규제를 보면 여자만에서 세고막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봉전과 광암마을로 알려져 있다. 새고막 양식은 인공으로 종패를 수정, 채묘한 후 (양력8월 10일경) 이를 채취하여 이를 5월경 바다에 뿌려 2~3년간 키워서 채취한다.

봉전에서 바라보이는 소뎅이는 조그만 섬이 솥뚜껑 같이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가까이에 순천만이 있다. 또한 새고막을 채취하는 배들이 앞바다에 가득 띄워져 있어 어촌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새고막 폐사하여 새고막껍질이 늘어나 꼬막산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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