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설의 빛, 교육공동체
형설의 빛, 교육공동체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10.12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수우분투 칼럼> 주종섭 본지 논설위원

인간들이 집단을 만들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을 사회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살고 있다. 사회성원들의 계층이동을 사회이동이라고 한다.

사회이동이 활발한 사회일수록 불평등이 적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은 사회이동의 가장 중요한 수단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교육에서도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래서 헬 조선이나 N포세대 등 절망적인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최소한 교육을 통한 사회진출의 기회에서 불평등은 사라져야 한다.

어렵고 힘들 때 우리 여수지역에서는 함께하는 공동체적 교육의 마당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 사례 중 하나였던 골목유치원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방과후 무료공부방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처럼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적령기의 아동들의 무료교육을 담당했던 골목유치원이 있었다.

골목유치원은 경제적 형편으로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던 유아교육의 산실이었다. 가난을 이유로 방치돼 있던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가르치고 보호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 유치원에 다니기 곤란했던 유아들 교육지원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년간 종화, 광무, 미평, 오천 골목유치원이 운영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치원 적령 아동 중에 열 중 아홉은 다닐 형편이 못돼 골목에 방치돼 있었다. 실제 3% 정도만 유치원에 다녔다고 한다.

여수지역 골목유치원 설립과 운영은 여수중부교회 임명흠 목사님의 역할이 컸었다. 목사님의 제안에 여수청년회의(JC)에서 골목유치원 운영재정을 마련해 지원했다.

해년마다 각 유치원당 40명씩 원아를 모집해 총 160명의 원생을 지원해 4년간 총 640명을 졸업시켰다. 원생들에게 회비 없이 가방, 모자, 학용품 등을 지원하고 유치원마다 두 명의 선생님을 배치하여 그 경비를 책임지고 지원했다.

소상인들이거나 막노동하면서 근근이 살았던 사람들의 유아들에게는 골목유치원이 희망의 공간이었다. 수산물 가공공장 등에 일 나가는 엄마를 따라갈 수 없었던 아이들도 골목유치원을 찾았다.

‘가난은 국가도 해결 못 한다’고 하는데 목사님과 JC 회원들의 골목유치원 활동은 큰 의의가 있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들의 여유로운 걸음새에 골목이 달라졌다. 가난을 이유로 방치돼 있었던 아이들에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골목유치원이었다.

골목유치원의 사례처럼 가난한 이웃들과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여수YMCA 상록배움터, 일제시대 돌산지역의 청년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운영되었던 죽포노동야학 등 많은 교육공동체가 있었다.

지역사회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많은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한다. 교육은 사회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형설의 불빛을 함께 만들고 지켰던 경험을 살려, 지역사회 공동체의 미래를 밝히는 여수교육공동체로 나가야 한다.

주종섭(사회학박사/여수일과복지연대소장/본지논설위원)

 

*.*. 여수 우분투는 여수지역사회 공동체의 역사와 경험을 소개하면서 우리 한국사회와 지역사회가 처한 사회적 현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정책적 함의를 찾고자 하는 칼럼 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