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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이제는 항쟁으로 불러야"
주철희 박사 여순사건 바로알기 특강 마쳐
2017년 10월 10일 (화) 09:01:36 박태환 기자 seano71@nhanews.com
   
▲ 주철희 박사가 여순사건을 항쟁으로 이름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여순사건 자료 사진.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여순사건을 이제는 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순사건 바로알기 특강을 이어온 주철희 박사는 특강 마지막날이었던 지난달 28일 여순사건을 항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박사는 성격을 유보한 애매한 '여순10.19사건'이란 명칭을 이제는 폐기하고 '여순항쟁'으로 성격규정을 정확히 해서 이름 부르자고 제안했다.

주 박사는 지난달 28일 열린 마지막 강좌에서 "역사를 말하는데서 그 사건에 대한 올바른 성격 규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박사는 그 이유로 동포의 학살을 거부 하고 제주도 출병을 봉기한 14연대의 병사들은 군인의 사명을 정확하게 인지하면서, 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군인들을 동조하고 지지했던 전남 동부지역 민중은 정치, 사회, 경제 등 위기상황에서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항쟁으로 발전했다"고 덧붙였다.

또 당시 여수순천 시민들은 생활고가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세계 패권 장악에만 어두웠던 당시 미군정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민중의 삶을 등한시 했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가 지역민들을 항쟁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도록 작용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여순사건의 성격은 항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각 지역별로 만들어졌던 인민위원회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주 박사에 따르면 해방정국의 인민위원회는 일제강점기에 지역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대다수 포진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농민, 대중을 위해 추진했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섯 가지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첫째, 친일파를 비롯한 모리 상간 배들을 비롯한 이승만 도당들이 단선단정을 추진하는데 앞장섰던 이들을 반동 단체로 규정하고 그들 중 악질적인 간부 들은 징치 하되 반드시 보안서의 엄정한 조사를 거쳐 사형, 징역, 취체, 석방의 네 등급으로 구분해 처리했다.

이들은 부득이한 경우를 고려하면서 사형 이라는 극형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했다.

둘째, 친일파 모리 상간배들이 인민의 고혈을 빨아 모은 은행예금을 동결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셋째, 적산가옥과 아무 연고도 없는 자가 관권을 이용해 억지로 빼앗은 집들을 재조사해 정당한 연고자에게 돌려 줄 것도 약속하고 나섰다.

넷째, 매판 자본가들이 세운 사업장의 운영권을 종업원들에게 넘겨 줄 것.

다섯 째 식량영단의 문을 열어 굶주리는 인민 대중에게 쌀을 배급해 줄 것.

여섯 째 금융기관의 문을 열어 무산대중에게 은행돈을 빌려 줄 것을 활동의 지침으로 내세웠다.

인민위원회의 활동은 당시 지주들과, 적산 자본가, 미군정, 이승만 정권의 등살에 짓눌려 살고 있던 농민, 도시노동자, 빈민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더 이해하고 있고, 그들의 요구가 뭔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봤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즉 시대의 요구가 뭔지를 가장 잘 파악 하고 있었던 대중 활동가들이라 할 수 있는 인민위원회는 제14연대 봉기군들과 자연스럽게 동질감을 형성하고 항쟁의 횃불을 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은 14연대 봉기군의 선언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들은 조선 인민의 아들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복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 인민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해 우리를 출동 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동포를 학살 하는 것을 거부 하고 조선 인민의 복지를 위해 총궐기 했다"

주 박사는 “이들의 항쟁의 명분은 시대 과제였다. 풀어내야 만 숙제를 해결코자 일어난 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폭압적으로 악랄하게 진압했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그리고 그 그늘아래서 안락을 취하고자 했던 민족 반역자들은 강자의 논리로 역사를 왜곡하고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멋대로 행사해 오면서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라도 여·순 항쟁을 정치적 탐욕과 이분법적 잣대로 역사를 왜곡 조작해 온 것에 대해 국가의 반성이 필요하고 그 반성의지를 담아 전남 동부지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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