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여수공동체의 기억
함께하는 여수공동체의 기억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08.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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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우분투] 주종섭 (사회학박사/여수일과복지연대 소장/본지 논설위원)
▲ 주종섭 박사

불평등과 억압에 저항했던 위대한 자유영혼, 평화와 화해를 외쳤고 실천했던 고결한 정신을 소유했던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오랜 기억은 ‘우분투(Ubuntu)’였다.

인류 공동체 정신의 하나로 뽑고 있는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 전통의 방식이 담긴 사회공동체의 문화적 결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지역공동체는 단순히 지리적 공간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만을 의미하지 않고 훨씬 넓은 개념을 갖고 있다. 일정한 지역안에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로 사회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인류가 가진 보편적 진리인 협동과 배려, 나눔 정신과 함께 전통적으로 계, 두레, 품앗이, 향약 등 사회구성원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 여수지역에도 공동체 사회의 발전을 위한 노력의 결실들이 남아 있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또 다른 노력은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해 가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뜻 있는 청년들이 서로 돕자며 ‘맞돕회’를 만들어 수탈당하는 지역민중을 돕기 위해 활동했다. 이들은 생활개선운동, 신분해방을 위한 노비문서 소각, 문맹퇴치 운동을 진행했었다.

엄혹한 일제의 탄압속에서 주권 잃은 국민의 비탄을 벗어나기 위한 활동의 기초는 바로 여수지역사회공동체였다.

이 곳 여수에서 살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고 지켜온 ‘지역사회공동체의 삶’의 흔적 여러 형태로 남아있다.

천연 그물이라고 일컫는 ‘독살’을 함께 만들고 그 곳에서 잡힌 고기를 나누었다. 공동으로 그물을 놓고 함께 물고기를 잡는 ‘개메기’, 어촌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어민자율공동체’ 등은 어업중심의 공동체였다. 그리고 화태도 주민들이 바다를 막고 간척해 논들을 만들었던 간척 공동체도 있었다.

지난해 인류역사상 그 유래를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의 명예로운 촛불혁명의 불꽃이 타올랐때 여수는 기초단위의 도시로서는 최초로 시민들의 민주적 행동이 시작되었던 곳이다.

우리 시민들이 외쳤던 것은 민주주의사회였다. 민주주의사회의 가장 큰 기초는 구성원들 즉 국민으로 부터 권력이 나오고 그 권력에 대한 행사를 국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런 민주주의를 위한 거대한 분노와 저항에 여수시민들이 함께하는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었고 마침내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지역공동체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고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다. 여수는 역사적 사건에 따라 국난을 극복했던 위대한 승리의 주역일 때도 있었다. 또는 비극과 슬픔을 맞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수는 여수인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질긴 맛의 정신이 있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는 여수 우분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여수 우분투는 여수지역사회 공동체의 역사와 경험을 소개하면서 우리 한국사회와 지역사회가 처한 사회적 현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정책적 함의를 찾고자 하는 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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