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은 국가폭력과 반공문화의 시작점이다"
"여순사건은 국가폭력과 반공문화의 시작점이다"
  • 박태환 기자
  • 승인 2017.08.29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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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순사건 바로 알기 특강하는 주철희 박사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동 14연대에서 시작된 여순사건이 내년이면 사건 발생 70주년이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순사건에 대한 특별법 제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더구나 여수시 차원의 조례 제정도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여전히 갈등만 보인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순사건 전문가인 주철희 박사가 ‘여순사건 바로알기 특강’을 연다. ‘불량국민들’을 통해 여순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찾았던 주 박사는 올해는 여순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책을 10월 초에 발간할 예정이다. ‘여순사건 특강’을 준비하고 있는 주 박사를 만났다.

▲ 주철희 박사

- 여순사건 특강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내년이면 여순사건이 발발한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정부는 여순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제주 4.3은 국정과제에도 포함해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5.18의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순사건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순사건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정치적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항쟁이다. 지역민이 여순사건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어야 정부에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특강도 그런 의미다. 이번 특강을 통해 지역민들이 여순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소모임을 만들어 지속적인 연구 등의 활동을 했으면 한다.

- 여순사건의 지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 지역 사회의 공동체가 파괴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크다. 지역 갈등의 뿌리는 모두 여순사건에서 시작된다. 이는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정권까지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를 지역민들이 그대로 수용하면서 발생한 문제이다.

우리지역은 개인적인 연좌제로 인한 고통도 있었지만, 지역적 연좌제로 인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다. 여수, 순천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기회의 불평등이 작용한 것이다. 지역의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여순사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 여순사건의 현대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 제헌의회가 제헌헌법을 1948년 7월 17일 제정했다. 이후 8월 15일 정부가 만들어 졌다. 여순사건은 그 이후인 1948년 10월 19일 일어났다.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을 진압하라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일어난 항쟁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몰았고 ‘빨갱이’라는 단어가 스스럼없이 사용됐다. 즉, 빨갱이의 탄생이다. 모든 국가폭력의 시발점이며 반공문화의 시작점이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비국민, 빨갱이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회를 만들었다.

예컨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빨갱이’라고 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희생된 노동자의 진실을 밝혀 줄 것을 요구해도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이러한 잘못된 반공문화 즉, 빨갱이 문화의 기저에는 여순사건이 있다. 여순사건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시발점이다.

- 정부는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 광주 5.18 정신의 헌법전문 포함 등 국가폭력에 대한 해결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순사건은 정부의 어떤 계획에도 없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여순사건 관련 특별법에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란’이란 국가를 전복하려는 행위인데 정부가 그런 사건을 특별법으로 조명할 수 있겠나.

여순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여순사건은 제주도민을 사살하라는 국가의 잘못된 명령에 군인들이 거부한 사건이다.

더구나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반공 프레임을 덧씌워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폭력 사건이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정인화 의원이 발의한 여순사건 특별법에서 다행히 ‘반란’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부분은 희망적이라고 본다.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가 여순사건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이다. 성격 규명을 위해서는 지역민의 인식이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또 만약 ‘반란’이라고 가정해도 정부가 시민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1950년 미군의 폭격으로 충북 영동군 노근리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이와 관련해 사건 발발 50여년 만인 지난 2001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노근리 학살사건과 관련해 사과했다. 군의 최종 책임은 군 통수권자에게 있다.

여순사건이 그동안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14연대 군인의 반란이라면 당시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다. 지역민들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 그럼 앞으로 지역에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 가장 중요한 점이 여순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는 거다. 먼저 여순사건이 국가폭력사건인지 아니면 반란인지 성격 규명이 있어야 한다. 이 성격 규정을 바탕으로 여순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순사건을 해결하려는 시민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몇몇 정치인에게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올해 5월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을 때 문재인 후보가 선거 첫날 방문한 곳이 제주도였다. 제주4.3 유족들을 만나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우린 어떤 목소리도 없고, 요구도 없기에 여순사건에 대해서 유력 정치인들도 무관심하다. 그 결과가 과거사정리에 제주4.3과 광주5.18은 거론되지만 여순사건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언론에 부탁한다면, 제주4.3이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약속을 이끌어 낸 계기는 지역언론인 제민일보가 제주4.3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

지역내 언론도 여순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지역민들의 바로 알기가 이어진다면 여순사건에 대한 정부의 특별법 제정 등 결실이 맺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개인적인 계획은 있는가.

= 내년이면 여순사건이 일어난지 70년이 된다. 내년을 국가폭력의 해로 정해 전국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해 매월 순회 토론회를 제안한다.

제주 4.3, 광주 5.18, 민청학련사건 등 국가폭력으로 희생당한 날에 국가폭력의 문제를 알리는 그런 토론회 개최를 위해 이미 몇 몇 단체들과 논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폐해를 정확하게 알리고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순사건은 국가폭력이라고 일컫는 모든 유형의 첫 시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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