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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과 어린왕자 어록
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25
2017년 06월 07일 (수) 09:29:49 남해안신문 nhanews@nhanews.com

어린 왕자는 허영심 많은 장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별을 떠나 여행을 한다. 몇몇 별을 순례한 후에 지구에 당도하고, 외로움에 사무치는 왕자에게 한 마리 여우가 나타나서,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다른 존재를 길들여 인연을 맺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왕자는 이 세계 속에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장미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자기별로 되돌아간다.

어린왕자이야기다.

우리는 어렸을 때 간직했던 순수한 마음은 어른이 되면서 때가 묻어 어떤 것이 나에게 소중한 것인지를 모른 채 늘 피상적인 것들만 쫓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 버린다.

진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들어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어린왕자는 우리에게 사물을 바라볼 때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바라보는 눈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부여하지 않는 것의 차이,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깨우져 준다.

어린왕자가 전해주는 이러한 시사점은 시창작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겉모습보다는 본질을 바라보는 통찰과 대상과 대상의 의미있는 관계 맺기가 시창작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그렇다고 믿어버리는 고정적인 관념을 의심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상상력으로 안내하는 눈이 필요하다.

눈은 시선이다.

시선은 곧 생각이고 호기심과 궁금증이다.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발견된 의미체험이라야 독자의 호기심도 자극할 것이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나아감은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시선의 문제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네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네가 길들인 것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난 너에게 수많은 기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길들면 발소리,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길들기 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것들이 길들임으로써 비로소 나와의 구체적인 관계가 시작된다.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로 바뀌게 된다. 사랑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길들이고 길들이는 일이다. 

스스로 길들고 길들이는 관계가 사람 사는 일이다. 그것은 서로 책임을 진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사랑도, 우정도, 공부도 그렇고 ‘잘 한다’는 개념이 곧 ‘길들이기’ 나름이다.

 

어떠한 것을 볼 때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야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사막은 조금 외롭구나.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그러나 그것은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다른 사람에게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다

어른이 되는 건 문제되지 않아, 어린 시절을 잊는 게 문제지

한 구절 한 구절이 우리로 하여금 머리를 치게 한다.

어린왕자의 어록을 보면 어떻게 세상을 봐야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하는 질문에 앞서 어린왕자의 어록을 보면 시를 어떻게 쓰야 하는지, 어떻게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지를 눈치 챌 수 있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때 어린왕자를 펼치면 따뜻하고 흐뭇한 위로가 되어주 듯, 좋은 시 한편을 만나면 하루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시를 쓰고 읽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즉 인문 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삶의 안을 채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의 의미, 가치, 아름다움, 목적 같은 무형의 자산이다. 시 한편을 외우는 것 또한 삶을 살찌우는 무형의 인문학적 자본이 된다.

인문학적 관심이 사람답게 살려는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중심에 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을 훔쳐보라.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삶의 지혜가 안겨있다.

들여다 본다는 것은 시선이고 시선은 만남이다.

그래서 창작의 건강한 출발을 위해서는 강열한 호기심의 한마디가 필요하다.

이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봐야 한다.

‘물들다’ 라는 말이 뭘까, 도둑놈꽃 개불알꽃의 다른 재미있는 뜻은 없을까, 접두사 ‘개’의 신개념을 뒤져보고, 긴장하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를 다시 되새겨보는 것이다.

이처럼 뻔한 것들에 대해서 의미 관계성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 시창작이다.

뭔가 그 속에 안겨있는 삶의 의미를 훔쳐보는 일이다. 새로운 정보는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이미 있는 정보와 정보가 서로 편집되고 재구성된 결과라 했다.

 

꽃에도 배꼽이 있는가.

흔적 없이 죽음을 수납하는 꽃들에게는

배꼽이 자란다.

열매 꼭대기에 오똑하니 올라앉아서

방금 떨어진 제 배꼽이

향기로운 전생이었다는 것을

태를 태워 묻은 아득히 먼 고향이었다는 것을

터질 듯한 온 몸으로 보여준다.

상처 아문 자리에 봄이 돋고

은빛 금빛 장신구에

보랏빛 티셔츠를 입은

제비꽃들이 일제히 만개한 배꼽들을 열고

깔깔거리는 동안

지상엔 웃음소리들이 수북히 쌓인다.

봄이 쌓인다.                              - 노향림 <배꼽> 

배꼽에 관한 의미의 재생이면서 관점을 달리한 시선을 확보함으로써 발견된 배꼽의 새로운 의미생산이다. ‘꽃에도 배꼽이 있다면’ 하는 가정에서 출발된 시다. 뻔한 것에 대해 한번 의심을 해보는 발칙한 질문법이 한편의 시를 탄생시킨다. 

시를 통해 어떻게 삶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질문법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어린왕자의 말처럼 표피적인 이해가 아닌,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이해를 통해 그 내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내가 외국여행을 떠난 후 퇴근길이 늦춰집니다

집에 가도 딱히 맞이해줄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내게 누군가 기다리는 집이 있지 않느냐고,

가만히 귀띔을 합니다

그 말을 새겨듣고 현관문을 열면

불을 켜지 않아도 집은 금세 환해집니다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에도,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에도

종일 적막의 힘으로 견뎌온 집이 한순간에 환해집니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환해집니다

이럴 때는 집도 본능으로 눈을 뜨는가봅니다

나는 적막 위로 가만가만 마음을 올려놓습니다

집도 가만히 나에게로 번져옵니다

나도 가만히 집에게 스며듭니다

내 작은 포즈에도 번지고 스며든 흔적 분명한

나의 집이 있었습니다                             -신병은 <집의 본능>

나에게 집은 뭘까.

집과 나의는 도데체 어떤 관계일까.

참 하찮은 질문에서 시작하여 집도 나도 하나의 주체적 존재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내고 하나의 생명있는 관계로 부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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