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는 일은 사물의 표정을 읽는 일이다
시가 되는 일은 사물의 표정을 읽는 일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05.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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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24

김정운의 <에디톨로지>에서 참 의미있는 말을 만났다.

창조는 편집이다. 
나만의 관점 나만의 해석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관점이 있을 뿐이다.남이 만들어주는 의미는 전혀 의미가 없고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 낼 때 의미가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고 편집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재해석을 방해하는 요인은 완벽한 정보다. 대강 알고 나머지를 내 머리로 채원 넣으면 내 것이 된다. 처음부터 남의 것을 다 배워버리면 그게 바로 짝퉁이다.
자신의 생각을 풍요롭게 편집하려면 무엇보다도 언어가 자유로워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평소 시 창작 강의에서 즐겨 말한 키워드가 다 정리되어있어 반가웠다. 
나는 늘 상상은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나의 선험과 관계된 나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가 시의 내용이 될 자격이 있다고 했다.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와도 상통하는 의미다.
사소함 속에 숨겨둔 삶의 비경과 진실, 고정관념 너머의 것, 그리고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에 의해 아무도 보지 못한 다른 모습을 보는 것, 재구성해 낸 것이 시라고도 했다.

일상과 자연을 삶과 접목하는데 매듭이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 하나가 될 때 시가 태어난다. 다양한 삶의 통로를 지나온 경험들과 일상의 서사가 스며들 때 시는 빛을 낸다.

이십여 년 전 
나른한 봄 오후 교무실
한 사내가 신제품이라며 대걸레를 팔러왔다
대걸레를 사서 퇴근 버스에 올랐다
여기저기 서 있는 사람이 많았다
가운데 좌석 앞에 서 있는데
중년남자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아이들에게 시달려
망설일 겨를도 없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왜 자리를 내주었을까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둥근 페이퍼 걸레 뭉치가 만져졌다
아하, 거꾸로 세워놓은 대걸레가 영락없는 목발이었다
자는 척했다
슬쩍 눈을 뜨니 그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정수리가 근질근질하였다
등에서 땀이 났다
드디어 버스가 집 앞에 도착했다
거꾸로 세운 대걸레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절뚝절뚝 걸어 나왔다

-「오해」전문

대걸레를 목발처럼 짚고 나오는 모습은 뻔뻔함이 아닌 상대편에 대한 배려다. 
아름다운 위선이고 아름다운 오해다. 
일상의 풍경 속에 안겨있는 의미체험이 낯익고도 낯설다. 이 또한 편집의 힘이다. 대상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 의미를 재발견하는 시적해석의 매력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일상과 시의 거를 잘 보여준다. 
경험적 실감으로 쓰여진 시는 구체적인 소통방식을 앞세워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생각은 언젠가 내가 경험한 것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라면 창조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도서관에서 호주머니 속 동전이 우르르 쏟아졌다
동전들은 숨겨운 천둥소리를 마구 내 질렀다
쏟아지는 무수한 눈들을 감당해야 하는 나의 초조는 아랑곳없이
동전들은 숨겨운 길을 마구 끌고 다녔다

속도와 방향 예측할 수도 없이 
몸속의 피들도 밀었다가 당겨놓는 저 맨몸뚱이들이 
선 안과 밖 가로지르며 씨팔! 씨팔! 챙강거린다 
언제 배추포기처럼 절여져 있었더냐는 듯, 
길들여진 눈을 증오하는 푸른 눈이  내 속에 있었다        

- 손진은 <푸른 눈들>

시창작은 統合的(통합적) 理解(이해)의 영역이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야한다. 세계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해의 영역이다. 이 시는 도서관의 정적을 깨고 굴러가는 동전의 표정을 잘 읽어 내고 있다. 동전이 굴러가는 표정에서 ‘숨겨둔 천둥소리를 마구 내질렀다, 숨겨온 길을 마구 끌고 다녔다’는 의미체험을 잘 읽어낸 결과물이다.
감각적인 인상과 느낌, 지식과 기억이 다양하게 통합되어 있다.

사과 속을 헤아려보자. 푸른색, 붉은색, 햇살, 바람, 이슬, 어둠 등의 참으로 많은 의미와 현상, 표정들이 안겨있다. 또 어떤 맛이 들어있을까.  햇살의 맛, 이슬의 맛, 푸른 맛, 붉은 맛, 촉촉한 맛, 서늘한 맛, 어둔 맛이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 되어 맛을 낸다. 그래서 세상의 맛은 서로 만나 어울리고 화해하는 것이라는 시적의미로 거듭나게 된다.
그래서 ‘사과의 맛은 따뜻하다. 사과의 맛은 푸르다, 사과의 맛은 붉다, 사과의 맛은 어둡다, 사과의 맛은  서늘하다’는 진술이 가능해 지고, 이 모든 맛들이 ‘견디고 만나고 어울리고 화해해야 사과는 제 맛을 낸다’는 진술도 가능해 진다.
식물학적, 화학적, 물리학적, 철학적, 미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골고루 이해한 후에야 거기에 맞은 공통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툭 던진 평범한 말속에 미세한 떨림이 있는 시 역시 표정을 읽은 후 언어적 소통이 제대로 된 시다. 이런 경우 대상과 현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 바라보고 듣는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고 치밀한 분석과 상상력이 맞닿아 새로운 문을 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그에 딱 맞는 언어가 새로운 발성이 된다.
그래서 시창작은 사물의 표정을 읽는 것에서 출발한다.

뒤집힐 때 흙도 놀란다 
쟁기 삽 괭이 호미 쇠스랑 포클레인… 누가 제일 먼저 괭잇날에 묻은 비명을 보았을까 
낯빛이 창백한, 눈이 휘둥그런

겨냥한 곳은 흙의 정수리거나 잠든 미간이거나,
흙의 표정을 발견한 누군가의 첫 생각, 그때 국어사전에 놀란흙이라는 명사가 버젓이 올라갔다

흙의 살붙이, 지렁이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
그것들이 가랑이를 헤집어 집을 짓고 길을 내도 놀라지 않는다
나무뿌리, 바위뿌리에도 덤덤한 흙이 
사람만 보면 왜 그리 놀라는지, 

흙의 나라 
태초에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닮은 흙의 심장은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공사장 주변, 포클레인이 파헤친 땅
매장된 산업폐기물을 껴안고 까맣게 죽어있었다
싱싱하던 흙빛은 흑빛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버지는 흙집으로 들어가
더는 놀라지 않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자주 놀란다        

-마경덕 <놀란 흙>

봄에 파종을 위해 흙을 팔 때 뒤집히는 흙을 ‘놀란 흙’이라 한다. 즉 ‘한번 파서 건드린 흙’이다. 이때 흙도 분명 놀랄 것 같다. 
‘괭잇날에 묻은 비명, 낯빛이 창백한 흙, 눈이 휘둥그런 흙, 흙빛은 흑빛’ 등의 흙의 표정을 놓치지 않은 시인의 눈이 정겹고도 날카롭다.    
순박해서 곁이란 곁은 다 받아 주는 흙이, 나무뿌리, 바위뿌리에도 덤덤한 흙이, 지렁이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가 가랑이를 헤집어 집을 짓고 길을 내도 놀라지 않는 흙이 유독 사람만 보면 왜 그리 놀라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까맣게 죽어있는 흑빛의 흙의 표정, 
굳이 문명 비평적이니 인간의 자연훼손이니 하는 식상한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흙의 표정으로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체험을 정겹게 만날 수 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은 지식도 상상도 될 수 없다. 
이미 만나고 접했던 표정과 표정들이 서로 만나고 통하고, 융합하고, 크로스오버 하여 바로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나아감을 알 수 있다.   
 
표정이 곧 의미다.
포즈가 곧 생각이다.
포즈를 잘 읽은 이야기가 재미도 있고 삶의 의미도 분명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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