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력 분산 없이는 국민주권 실현 불가능"
"대통령 권력 분산 없이는 국민주권 실현 불가능"
  • 임현철 기자
  • 승인 2017.05.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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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사회계약과 권력구조에 대한 제언, 전재경의 <왕과 대통령>

"군주가 배라면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당나라 태종이 그의 태자를 가르치면서 했던 말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요? 정권교체, 촛불 승리, 적폐청산을 기치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정권도 국민의 무서움을 알고 국가와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하는 말입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됨에 따라 광장의 촛불 혁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의 '불통'과 '폐쇄'를 넘어 '통합'과 '소통', '경제 살리기'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향후 문재인 정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촛불혁명의 완성 여부 또한 가려지게 될 전망입니다.
 

 <왕과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제를 "고장 난 대통령제"라고 진단합니다. 왜 그럴까?
▲  <왕과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제를 "고장 난 대통령제"라고 진단합니다. 왜 그럴까?
ⓒ 사회자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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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성공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주목되는 것은 '낡은 정치제도 개선' 여부입니다.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헌법 개정을 통한 제7공화국 출범'을 약속했습니다. 특히 '국민발의와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고,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내세우며,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에 부치겠다'는 일정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헌법 개정은 대통령 의지뿐 아니라 국민적 합의도 매우 중요합니다. 개헌은 깊이 있는 논의와 많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우리에게 맞는 정치제도 찾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여, 최선의 정치제도 개선을 위한 밑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5일 발간된 한 권의 책을 권합니다. 다름 아닌 <왕과 대통령>(사회자본연구원, 전재경 지음)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는 "20여 년 간 새 법을 디자인하고 낡은 법을 손질하는 일로 한 생을 보낸 법률재단사"입니다. 그가 책 <왕과 대통령>을 통해 이미 "고장 난 대통령제를 수선하자"며 제시한 "새로운 사회계약과 권력구조에 대한 제언" 속에는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에서부터 '분권형 내각통령제'까지 담아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요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재정 부담 압박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드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제시한 "핵무기 리스" 등의 제언은 귀담아 들을 내용입니다.

왜 한국의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말년이 불행한가?

"나는 자유와 권리에 관한 영미의 법리를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법이 민주주의와 동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중략) 광주에서 군이 민간인들을 살해했을 때에 부끄럽게도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고, 이후 1987년 「헌법」 체제에 적응하고자 애썼다. 군사정부들이 물러가면 군국주의가 후퇴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30년 동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국가의 살림살이보다는 안전보장과 질서유지가 강화되고, 엉뚱한 곳에 국고를 낭비하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6쪽)

전재경, 그가 <왕과 대통령>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힌 서문입니다. "황제보다 강력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고서는 주권재민과 국민주권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론을 정점으로, 권력이 한 사람으로 집중되는 걸 막는 "견제장치 마련"에 몰두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간단한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한국의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말년이 불행한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생각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그가 내놓은 해답은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과 대통령 일가의 파탄은 역사의 단절과 문화의 충돌이 빚은 비극이다.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로 보지 않고 '나라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라님'을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알았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언제부터 막강의 길을 걸었을까?"라는 자문에서 찾은, 말년이 불행한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비극의 씨앗"은 다소 이색적입니다.

"따지고 보면 비극의 씨앗은 미국 「헌법」의 '프레지던트(president)'를 '회장'이라고 옮기지 않고 '대통령'으로 옮겼을 때부터 싹텄다. 모든 영[정령과 군령]을 통합하는 사람[통령] 위에 있는 대(大) 통령(統令)은 현대판 왕중왕[皇帝]이 아닌가. 더욱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왕들은 대부분 절대 권력자였다."(38쪽)

그는 절대 권력의 원인을 "국민들이 왕의 정서로 대통령을 우러러 볼 때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해진다"면서 "권력은 오래될수록 그리고 강력할수록 부패와 가까워진다"고 전제합니다. 이어 "권력자를 더 부패하게 하는 것은 '뇌물 주고 이권을 따는' 기업식 민주주의"이며 "'돈 놓고 표 먹기'가 만연하는 선거에서는 권력 추종자들이 부패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권력을 약화하거나 장기화를 막아야"하는 필요성을 역설하며 퇴임 후 행복한 대통령을 갖는 국민이 되길 희망합니다.

대통령제를 '고장 난 대통령제'로 진단하는 세 가지 이유
 

 <왕과 대통령>의 저자 전재경 박사.
▲  <왕과 대통령>의 저자 전재경 박사.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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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우리나라 대통령제를 "고장 난 대통령제"로 진단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갑질 혹은 금수저들의 부당한 작태에서 찾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이나 기득권층에서 즐겨 사용하는 반칙을 제한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은 한국적 문화 풍토라며, 인터넷 개그 '까마귀에게 뇌물 받은 백로'를 예로 듭니다.

"옛날 목소리가 고운 꾀꼬리와 시끄러운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3일 후 이 노래시합을 하자고 제안했다. 꾀꼬리는 가소로웠지만 응했다. 심판은 백로가 맡았다. 까마귀는 연습도 안하고 논두렁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3일이 지나 꾀꼬리와 까마귀는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꾀꼬리는 정말 노래를 잘 불렀지만 심판은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꾀꼬리는 한참을 지나서야 까마귀가 백로에게 개구리를 잡아다 주고 '뒤를 봐 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알았다."(249쪽)

둘째, 견제 받지 않는 대통령의 권한을 들고 있습니다. "(삼권분립 속에서도) 한국의 대통령은 의회나 사법부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소환에 불응하여도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정부 입법 중 위헌법률을 심사하고, 대법원이 대통령령이나 부령 중 위헌명령을 심사하지만, 이러한 심사 장치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다"면서도 "탄핵심판이 그나마 견제 기능을 수행한다"(300쪽)며 견제 장치의 미비를 안타까워합니다.

셋째, 헌법재판소의 평결을 꼽습니다. 지난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선고에서 보듯 "단 한번 선거로 뽑았다는 이유로, 법적 안정성이라는 명분에 갇혀 주권자인 국민은 주권에서 파생된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5년간 소환하지도 해임하지도 못한다"고 한탄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내각제에서라면 행정권의 수반이 벌써 사임하였거나 국회가 해산되었을 것이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고장 난 대통령제"임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공화제가 고장 난 시계처럼 너무 빈번히 멈춰 선다. 지도자들은 말끝마다 '국민의 뜻'을 팔지만 막상 주권자인 국민이 국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선거나 시위 말고는 전무하다. 권력만 있고 책임은 실종된 헌정은  「헌법」(제1조제2항)이 선언한 국민주권이나 주권재민의 민낯이다."(353쪽)

이 같은 진단에 따라 저자는 "「헌법」(제2조1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만 규정되어 있고 실천 경로가 미흡한 주권재민과 국민주권을 구체화하기 위해 국민주권법을 제정하자"며 헌법 개정을 주장합니다.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을 넘어 '내각 통령제' 필요

그렇다면 <왕과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력 구조는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공약에서 제시한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권력분산 방법으로 "국무총리를 부통령으로 바꾸고 부통령에게 독자적인 권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줄이고 중임을 허용하자"는 것은 "대통령의 임기가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하거나 단임과 중임을 오갈"뿐이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미국식 권력분립을 설명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생각만큼 권한이 크지 않다. 「헌법」에 따라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사이에 수평적인 권력분립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연방 정부와 주정부들에 수직적인 권력분립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301쪽)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식) 부통령제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내각제로 전환해 총리에게 행정권을 부여하자"며 한발 더 나아갑니다. 즉, "다수당의 대표자가 총리를 맡아 정치, 군사, 경제, 사회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국민 직접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외교와 문화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분권형 통치구조"가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또 "분권형 통치구조에서는 대통령의 명칭도 '통령(統領)'으로 낮추어야 한다"면서 "중앙정부의 권한들이 지방으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강변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머슴 정신'은 독재시대의 유산이다. 한국의 역사발전과 경제적 토대 변화는 정부의 한계와 비효율 증가로 말미암아 각 부분에서 자치와 자율의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외교와 국방, 무역과 환경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 걸쳐 비상한 분권화가 달성되어야 한다. (중략) 중앙정부의 역량을 벗어나는 각종 권한이 지방화 되고 지방정부의 역할이 부적절한 각종 사무가 시장과 공동체로 이관되어야 한다."(247쪽)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밝혔던 적폐청산 등을 위한 헌법 개정을 포함한 우리만의 정치 비법 찾기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더불어 촛불 민심이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절실하게 내세웠던 "정의롭고 평등한 나라다운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로 보지 않고 왜 나라님으로 볼까?"에서 시작된 의문에서 출발한 <왕과 대통령>
▲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로 보지 않고 왜 나라님으로 볼까?"에서 시작된 의문에서 출발한 <왕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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