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은 감각을 통한 인간 읽기다
시 창작은 감각을 통한 인간 읽기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04.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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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23

시 창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인간성, 인간의 아름다움, 삶에 대한 성찰, 문화를 창출하는 인간의 속성을 탐색한다.

인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이 물음에 부단히 답하려 애쓰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자 인생에 대한 학문이다. 사람을 논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논한다. 
그러고 보면 시창작은 인문학의 가치개념에 속해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관심과 성찰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문학은 책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삶의 경륜에 연결하여 체화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인문학적 사고의 참맛이 생각지 못했던 사람의 가치,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란 점에서도 그렇다.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다양한 현상에 깊은 이해와 안목이 없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통찰 없이 질 좋은 시적 상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세상 낮은 곳에 살아도 납작 엎드리지 않는다
나긋나긋 몸짓으로 바람맞고
낭창낭창 마음으로 빗물 안아주는 나는 잡초다
내 이름 모르는 당신한테 잡초일 뿐이다
바람 불면 바람만큼 몸 흔들며 
비 오면 빗발만큼 툭툭 어깨 털며 이 땅을 움켜쥐는 배경이다  
이 땅의 모든 걸 돋워주는 여백이다                          -정진용 <잡초>

잡초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세상에 잡초는 없다. 나름의 이름이 다 있다. 그래서 내 이름을 모르는 당신한테 잡초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낮은 곳에 살면서도 납작 엎드리지 않고, 비오면 빗물 안아주고, 바람 불면 바람만큼 흔드리는 이 땅을 움켜쥐는 배경이라 항변하면서 이 땅의 모든 걸 돋워주는 여백이라 자신을 내 세운다.
온몸으로 발견해낸 잡초에 대한 통찰의 결과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  
통찰의 방법에 따라 생각이 변하고 화법 또한 달라진다. 
전문적인 용어를 빌리면 이를 ‘체화된 인지’라 한다.   
자세, 행동, 포즈에 따른 관계성을 파악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좋은 경험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경험이다. 다양한 포즈에 대한 관심, 즉 그 속에 어떤 삶의 이야기가 보이는가에 대한 관심이다.
오감과 육감에 의한 통찰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한다. 
소리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읽고 소리에 담긴 사물, 현상의 표정도 읽는다.

사실 우리는 평소에 다양한 감각을 언어적으로 잘 응용하고 있다.
‘매운 것, 뜨거운 것’도 ‘시원하다’고 표현하고, 봄나물의 맛을 ‘화사하다’고 표현한다. 
감각에 의존하는 말이 육감이다.

나 손 씻었다.
그 사람 참 따뜻해.
나 그 사람과 가까운 사이야.
더러운 손 치워. 
감칠맛이 난다. 

이러한 언어유희적 표현이 육감에 해당한다.
그래서 시창작은 있는 그대로의 오감을 표현하고, 오감을 느낀 대로 솔직하게 쓰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미지고 형상화다.

내가 교직에 있을 오래전에 문제적 부적응 학생이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욕설에 주먹질에 크고 작은 말썽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학년말에 학교생활기록부에 성적평가와 함께 학생의 행동발달사항을 평가하고 종합의견을 기록했다. 있는 그대로 적자니 학생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렇다고 거짓된 의견을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학교생활에 건강미가 철철 넘침“이라 기록한 기억이 있다.
그 학생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는 그런 평가가 긍정적인 화법으로 다가갈 것이고, 나와 그 학생에겐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질에 다툼을 했다는 진의가 전해지는 중의적인 화법이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은 곧 화법으로 드러난다.
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대장간’에 대한 시를 쓰려 하면 먼저 대장간과 관계있는 관련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때 고정관념 너머의 것을 생각하고,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에 의해 아무도 보지 못한 다른 모습을 보려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재구성해 내려는 고민이 따라야 한다.

대장간 - 두들겨 맞아야만 뭐가 되고
         벼리고 담금질 할수록 제 값을 드러내고
         상처 깊은 외마다 비명이 쌓여야만 뭐가 되는 이상한 법칙이 존재하는 곳
         아플수록 더 청춘이란 말이 실감나는 곳
         참 모질기도 한 곳
         
이처럼 모든 감각을 동원한 관련의미의 탐색을 통해 사소함 속에 숨겨진 삶의 비경과 진실을 발견해 내게 된다. 이 발견이 곧 시다.

나뭇가지가 알을 낳았다. 수백의 알이다. 햇살은 알에서 토도독 튀어오른다
사람의 눈길도 모여들어 알을 어루만진다
한눈 판 사이에 일제히 부화해 재재거리는 하얀 새떼
오는 봄 다 불러 모아 일일이 머리에 깃털을 달아주고 있다
나무가 날아오른다                                          -백우선 <목련>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후다닥 무언가 뛰쳐나간다. 
무꽃이다. 까만 봉지 속이 환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무 한 개 꽃자루를 달고 있다. 
봄이 말라붙은 무 꼬랑지를 쥐고 흔들어댄 모양이다.
창을 넘어와 봉다리를 풀고 무를 부추킨 모양이다.
눈을 뜨다 만 무꽃. 여기가 어디라고 덜컥, 꽃이 되었던가. 
어미 살을 파먹고 꽃이 된 무꽃. 쪼그라진 젖을 물고 있는 무꽃.       -마경덕 <무꽃 피다>

육감에 의한 언어유희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다. 
목련꽃을 보며 나무의 알, 사람의 눈길이 알을 어루만지고, 한눈 판 사이에 일제히 부화하고, 하얀 새떼, 나무가 날아오른다 등의 관련 의미를 탐색한 결과물이다.  
비닐봉지 속 무의 노란 꽃대, 후다닥 뛰쳐나간다, 봄이 말라붙은 무 꼬랑지를 쥐고 흔들다, 창을 넘어와 봉다리를 풀고, 덜컥, 꽃이 되었던가 등의 봄날의 작은 풍경을 이처럼 감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싶다. 
이 두 편의 시를 보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옮겨놓을 수 있을까에 대해, 어떻게 마음의 수혈은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알게 된다.

시도 그렇지만 모든 창작은 한마디로 말해 ‘이쪽을 통해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고, ‘감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눈, 내면의 귀, 내면의 코, 내면의 촉각과 몸의 감각에 의한 형상화를 통해 세계를 재창조하는 작업이다. 피카소도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아 그리고,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본 것들을 그렸다고 했다. 

여서동 한재 로터리에는 성질 급한 벚나무 한그루 있는데요. 
해마다 이맘때면 사람도 나무도 저렇게 성질 급한 놈이 있다고 
오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을 하는 데요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는데요
오늘 아침 그 나무 곁을 지나는데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귀띔을 하는 데요
한발 앞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행복인지를 되묻는 데요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에 저 나무가 관통한 겨울나기를 생각하는 데요
한발 앞서 여린 햇살을 끌어 오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을 보는 데요
땅 속 깊숙한 체온을 다독이던 젖 먹던 힘까지 보는 데요
한발 앞서 혼자 깊어 간 뒤태를 생각하는 데요
한발 앞서 세상의 문을 연 저 나무의 꽃자리를 생각하는 데요
부끄럽게도 나는 그 나무의 앞선 한발을 다시 눈여겨보는 데요

- 신병은 <성급한 벚나무>

시창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통로를 지나온 경험들과 일상의 서사가 스며들 때 비로소 시는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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