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시계가 빨라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위대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허술한 벽을 넘어 국정농단을 심판했다. 당시 "이게 나라냐"라고 분노한 우리 국민은 이제 "이게 나라다"라는 것을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남겨줘야 한다. 이것은 국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헌이다.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미증유의 총체적 난국은 근원적으로는 과도한 중앙집권과 이를 효율적으로 견제 감시하는 체계 부재에서 비롯됐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시민주권이 강화되고, 지방분권이 강화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주권시대를 열려면 기본권을 강화해야 하고 주민자치시대를 열려면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의 위기상황 때마다 지방정부가 모범을 보이거나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대통령 탄핵정국 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위기대처를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지방정부의 위상과 역할은 지방자치 부활 22년 성과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방분권 염원, 이미 전국적인 운동 확산
지방분권형 개헌을 원하는 지역민의 여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방분권이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전국의 광역·기초 자치단체가 참여한 전국지방분권협의회가 지난 2월 7일 출범했다.
시·도지사협의회를 비롯한 지방 4대 협의체 외에도 전국 민·관·학계가 참여한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 광역·기초단체로 구성된 지방분권협의회 등이 속속 출범하는 등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한 전국적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에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분위기도 지방분권형 개헌을 지지하거나 중앙과 지방과의 차별을 없애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방 4대 협의체가 지난 2월 21일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지방분권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협의체는 이날 채택한 공동성명서에서 “개헌을 통해 헌법전문과 총강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 국가임을 천명하고 기본권으로서 주민자치권을 명시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했다.
지방분권단체 분권형 개헌 주장의 이유
전국의 지방분권 관련단체들이 지방분권 개헌에 합일된 의사를 표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도 2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방은 찬밥신세다. 지방자치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재정과 조직권이 모두 중앙정부에 쏠려 있어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허락이 없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인 현실을 빗대 ‘2할 자치’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절박한 현실을 웅변하는 지방민의 하소연이기도 하다. 지방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진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응력, 시대흐름에 뒤떨어져
국가와 지방의 세입 비율은 8:2인 반면 세출 비율은 4:6이다. 이는 지방이 하는 일은 중앙보다 많지만 돈은 중앙의 눈치를 보며 얻어 써야하는 비효율, 불합리한 현실을 보여준다. 주민의 삶에 직결된 공공서비스의 내용과 그 재원조달은 주로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그저 집행의무만 갖는 구조인 것이다. 지자체의 자율적 판단이 무시되고, 지역 특성과 주민 요구 반영이 어렵다.
더욱이 중앙정부는 지난해 지방재정 형평성 강화를 명분으로 지방재정제도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하고, 국가가 결정한 복지정책의 비용 상당부분을 지방정부로 전가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50%이하인 지방자치단체가 95%에 달한다.
지방분권, 최우선 논의해야
다행히 대선후보는 물론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이 논의 중에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이 많고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소외시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분산하는 수평적 분권, 지방자치 입법, 조직, 재정권을 보장하는 수직적 분권 즉 지방분권이 최우선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지역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중앙 중심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지방은 물론 국가의 미래도 없다.
지역 균형 발전을 통해 지역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국가 전체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만큼 대선주자들부터 지방분권형 개헌 공약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이를 적극 실천해야 한다.
분권형 개헌 공약으로 명시해야
분권 개헌에 대한 지역민의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널리 확산돼 있다. 그동안 지방분권단체와 지자체가 분권운동을 꾸준하게 전개해 온 덕분이다. 이제 분권운동의 결실을 맺어야 할 시점이다.
대선주자들은 개헌에 대해 로드맵을 포함한 명확한 소신과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 공약명시는 기본이다. 동시에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그래야 구속력을 지니게 된다. 또한 공약의 구체성도 필요하다. 최소한 분권의 큰 틀을 규정하는 내용 정도는 헌법에 적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 주기를 기대한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우리는 지방자치의 문을 열기 위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생명을 건 단식투쟁과 고(故) 김영삼 대통령께서 내린 '풀뿌리 지방자치 전면 부활'의 결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는 지난 22년 동안 지방자치를 꽃피우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다. 이제 분권운동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연대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