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의 시대
전화위복의 시대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03.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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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여수YMCA사무총장

얼마 전 일본 후쿠시마에 다녀왔다. 그렇다, 2011년 지진과 쓰나미로 원전이 폭발해 죽음의 도시가 된 그곳이다. 4천명 사망, 건물 10만 채 파손, 6조원 손실이 보고되었다. 하지만 이는 반경30km내의 계량적인 피해수치일 뿐 실제 피해는 그보다 훨씬 크다.

이를테면 인구 200만, 면적 13,782평방미터로 일본에서 세 번째 큰 현인 후쿠시마 전체가 입은 피해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당장 17만 지역민이 고향을 떠나 지금까지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귀향과 복구를 위해 앞으로 얼마의 시간과 재원이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더욱 절박한 것은 한번 구겨진 도시이미지를 어떻게 회복해야할 것인가이다. 복도(福島)라는 지명에 걸맞게 애초 후쿠시마는 복 받은 땅이었다. 우리로 치면 면적은 강원도만큼 넓고 기후와 토양, 해양이 전남만큼 청정하고 기름져 농수산식품의 천국이라 불렸다. 그랬던 후쿠시마에 2011년 쓰나미와 원전폭발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쓰나미 뿐이었더라면 집과 밭이 황폐화되었을지라도 동정과 지원 속에 금방 일어설 수 있었으련만, 원전사고지역이라는 낙인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황폐화를 가져왔다. 마치 한센병자를 피하듯 동족 일본사람들 사이에서도 후쿠시마는 천형의 지옥취급을 당했다.

오염을 면한 땅과 바다에서 생산된 농수산식품일지라도 후쿠시마 산이라는 이유로 팔리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일지라도 후쿠시마에서 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했다.

파괴된 원전이 내뿜는 방사선과의 싸움보다도 이런 인식과 시선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좌절과 절망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3~4년을 웅크리고만 있던 후쿠시마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도 상황을 바꿔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자구의 길을 찾아 일어서기 시작했다.

지표면을 걷어내는 제염작업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안 팔리더라도 정상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수확을 했다. 민관산학이 공조해 방사능환경을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개선추이를 데이터화해 생산물의 안전성과 정상임을 입증하는데 사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소외되고 위축되어가는 지역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새천년 들어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운동을 전개하던 그 때 여수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이 후쿠시마사람들에게서 읽혔다.

그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물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상황이지만 나고 자란 지역을 사랑하고 지킨다는 것은 이렇게도 절박하고 간절하구나하는 공감만은 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도시재생과 부활의 발버둥현장을 소개받으며 시찰하던 중, 귀에 익은 노구치 히데요(野口 英世) 기념관에 이르렀다. 1876년 후쿠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다다미방 가운데 설치된 화로에 떨어져 왼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당시 그의 가정환경으로는 꼼짝 없이 농사일이나 하면서 커야할 판인데 불구가 된 그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열다섯 되던 해 왼손을 수술해 물건잡기가 가능해지자 그는 의술에 크게 매료되어 본격적인 의학공부를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매독균, 황열병균을 발견해 인류의 전염병예방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결과 노벨상후보에까지 오른다. 연구에 몰두하다 아프리카에서 황열병에 걸려 죽은 그의 삶과 업적은 일본국민들의 자긍심이 되어 오늘날 천엥 지폐 초상화가 되었다.

그가 오늘날 후쿠시마에 살고 있다면 원전방사능으로 인해 고통 받는 그의 고향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을까하는 상상을 잠깐 했다. 이어진 생각은 전화위복이라는 단어로 맺혔다.

화상이라는 불행을 딛고 일개 농사꾼이 아닌 인류를 구한 위대한 의학자가 되었듯, 원전사고를 당한 후쿠시마가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 지구에서 퇴출시켜 신인류문명의 발원지로 우뚝 서는 전화위복을 이룰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박정희로도 모자라 그의 딸로 이어진 망령과 우매의 우리 현대사를 후세는 어떻게 기록할까. 초유의 대통령탄핵이 우리 미래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또렷이 드러난 그 적폐의 실체를 뒤늦게나마 직시하고 청산한 전화위복의 시대였다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원전도 이 때 사라졌노라고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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