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다양한 방법들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다양한 방법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03.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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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21

모든 창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관심은 그동안 볼 수 없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생각도구이며, 그리고 생각을 다시 생각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전환시켜주는 주요 도구이기도 하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그의 저서 <생각의 탄생>에서 천재들이 활용한 창조적 사고의 13가지 도구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관찰, 형상,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나보코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이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해 두고 있다. 

이 책에서 피카소는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했다.
마르셀뒤샹은 그의 작품 ‘샘’을 통해 ‘일상의 재발견’을 강조한다. 

관심과 관찰을 통해 깨닫는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형상화는 세계를 재창조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물리학을 상상한 아인슈타인, 추상화는 중대하고 놀라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라 했다. 

그리고 패턴인식에서 시를 발견하고, 생각하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하는 거라며 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고 역설한다. 

또한 감정이입의 본질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며,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내 안에서 그것이 자라나게 하라고 말한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라고도 한다.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같이 발상전환을 위한 장치들이다.
필자는 평소 문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창조는 세계 속의 세계를, 일상 속의 일상을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상력은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장다리 꽃밭에 서서 재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고, 자갈밭에 앉아서 강 건너 빈 배를 바라보는 일’이다.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고,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새롭게 읽어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이 사람이 어디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뼘 두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었다
빗발은 한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 김춘수 <降雨> -
 
한평생 옆을 지키던 아내의 죽음이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 놓고 어디갔나’하고 아내를 찾는 모습은 일상의 모습 그대로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웃대는 모습에서 시인은 아내의 죽음 앞에 자신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 않고.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드러낼 뿐이다. 

죽음도 삶의 일부로 여기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과 공명을 주게 된다. 
  
봄똥, 생각하면 전라도에 눌러앉아 살고 싶어진다 
봄이 당도하기 전에 봄똥, 봄똥 발음하다가 보면 
입술도 동그랗게 만들어주는 
봄똥, 텃밭에 나가 잔설 헤치고 
마른 비늘 같은 겨울을 툭툭 털어내고 
솎아 먹는 
봄똥, 찬물에 흔들어 씻어서는 된장에 쌈 싸서먹는 
봄똥, 입안에 달싸하게 푸른 물이 고이는 
봄똥, 봄똥으로 점심밥 푸지게 먹고 나서는 
텃밭가에 쭈그리고 앉아 
정말로 거시기를 덜렁덜렁거리며 
한 무더기 똥을 누고 싶어진다               -안도현 <봄똥>전문


지천에 봄이다. 마른 비늘 같은 겨울을 툭툭 털어내고 솎아 먹는 ‘봄똥’은 ‘봄동’의 사투리로 겨울에 노지에서 재배된 배추다. 

겨울의 추운 날씨 때문에 잎이 옆으로 퍼져있다 봄이 되면 화르르 깨어나 생기를 추스르는 봄의 대표적인 채소다. 

요즘 한창 입맛을 돋우는 ‘봄동’을 통해 늘 접하는 일상의 서정과 정감을 담아내었다. 
시는 일상의 재창조다.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관심과 관찰이다. 가만히 주의깊게 바라보는 통찰이다. 
그러면 대상의 본질을 볼 수 있고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루귀 같기도 한 것이
스무 두 살의 그리움 같기도 한 것이
봄의 속력으로 
천천히 
천천히
귀를 쫑긋 세웠다

봄의 속력으로 새가 날아오르고 
하늘 저편으로 가던 맨발의 바람이 
먼저 들러 안부를 묻기도 한다
한나절을 더 기다린 반가부좌상의 진달래는 
반공일 같은 오후의 눈길로 길을 묻는다 

견디고 견디다
봄의 속력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누군가를 기다리다 
반갑고 기쁘게  꽃이 된다                      -신병은 <자내리의 봄>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세밀하게 관찰하되 너무 세세하게 할 말을 다해서는 안 된다. 
시는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를 전하는 언어경제원칙이 적용되는 장르다. 

그림도 좀 덜 그린 듯한 그림이 더 편하게 다가오는 이유와 같다고 본다. 
화가가 남겨둔 여백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상력으로 완성토록 하는 배려인 셈이다. 

시 창작 또한 독자가 완성할 수 있는 여백을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침묵으로, 몸으로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몸만큼 솔직한 언어도 없다. 추우면 춥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향기나면 향기롭다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나무와 풀, 꽃들은 몸으로 말하기 때문에 거짓 없이 진실한 것이다. 

몸으로 말하는 방법은 언어외적인 보여주는 표현법이다. 
몸의 움직임이 곧 생각이기 때문이고,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라는 말도 이와 같은 의미다.

어쨌든 창작은 관심이다.
관심은 늘 접하는 일상을 되돌아보고, 일상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생각도구이자 비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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