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정치, 그리고 감동과 울림
시와 정치, 그리고 감동과 울림
  • 남해안신문
  • 승인 2017.02.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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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먹는 법, 시 줍는 법 20]

얼마 전에 시인 정세훈의 <몸의 중심>을 인용한 손석희 앵커의 뉴스 진행을 보며, 가슴이 울컥한 적이 있었다. 한 시대의 아픈 단면과 닿아있는 시의 울림이 그랬고 앵커의 진심어린 우국이 어우러져 전해온 한편 드라마 같은 진행이었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시 한 구절을 인용한 후 “우리 사회의 아픈 곳, 세상이 보듬어야 하고 또한 살펴야 할 사람들 대신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이들은 지금도 자신이 제일 아프다면서 소리를 지르는 중”이라고... “AI며, 구제역이며 장보기 두려운 먹거리의 가격과, 실업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안 될 상처 난 몸의 중심. 세상이 어느새 뒷전으로 밀쳐내버린 가슴 저릿한 몸의 중심‘이라고...

시의 한 구절로 전할 수 있는 뉴스를 접하면서, 감동과 울림이 있는 뉴스를 접하면서 담당 앵커의 가슴 따뜻한 화법이 그처럼 신선하게 보일 수 없었다.

시의 힘이 돋보이는 풍경이었다.

얼마 전에 대권후보와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지역의 현안사업과 함께 정치발전을 위한 소통의 자리였는데, 나는 우리 정치의 비전을 제안하는 차원에서 “시가 있는 정치, 시 읽는 정치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시의 효용이 감동과 울림이라고 .... 시가 있는 정치는 감동과 울림을 주는 정치가 될 것이라고 .... 시 읽는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 우리 조국이 처한 암담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

어찌보면 엉뚱한 이야기지만 간곡한 부탁을 했다.

요 근래 어느 정치인도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정치의 중심에는 국민, 국민의 아픔이 있어야 한다.

정치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문학의 중심에 시가 있다. 인간에서 출발하고 인간을 향해 열려있는 정치를 위한 ‘시가 있는 정치’를 구현할 수 없는지를 생각하는 요즘이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흙 밑으로부터 /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 중심의 힘’인 꽃대가 흔들린다. ‘꽃 피어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중심을 지키고 서 있다는 것은 괴롭고 그래서 때때로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흔들림이 있어 꽃은 피어 사방으로 퍼져간다. 중심과 탈중심이 버텨 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돌아가는 보면서 새삼 중심의 괴로움이 다가온다.

우리는 느낌이 중요한 EQ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맹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을 말하고 새로운 문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말하고 함께 만드는 건강한 세상, 아름다운 인문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세상이 무엇인가를 알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했다.

맹자가 말한 대장부大丈夫도 ‘인간다운 인간’ 세상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상식과 행동을 만드는 사람, 즉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라 했다. 천하의 대장부는 여민동락에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 사회적 삶을 산 사람, 민중적 삶을 산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치와 시의 공통점이면서 시창작의 중심 내용이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지도자의 자세는 어떠해야하는가? 일이 꼬일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하는 맹자의 ‘살아간다’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 온다’.

정치도 시도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면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공감은 내가 웃는 곳에서 그가 웃고, 내가 울었던 곳에서 그도 우는 것이다. 내가 느낀 곳에서 함께 느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의 상응성이 공감이고 인간됨일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보살핌을 받고,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 존경받는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정치도 시도 결국은 살맛나는 세상을 꿈꾼다.

모든 풍경은 표절이다.

바다는 모성을 표절하고 장미는 봄비를 표절하고 빗방울은 음표를 표절하고 나는 아버지를 표절하고 예순은 서른을 표절하고 어둠은 달빛을 표절하고 저녁은 새벽을 표절하고 너의 프라이버시를 표절하고 중심은 구석진 곳을 표절하고 새소리는 바람소리를 표절하고 바깥은 창을 표절하고 슬픔은 눈물을 표절하고 겉은 속을 표절하고 잠자리는 하늘을 표절하고 사랑은 개화와 낙화를 표절하고 매미는 시간을 표절하고 기억을 표절한다

표절이란 말,

말없이 가만히 너를 받아들이고 너를 읽고 나를 건너 너에게로 가는 일이다

너가 되는 일이다

산다는 것의 시뮬라크르simulacre

실체도 없이 참 아무것도 아닌 세상의 아름다운 표절을 위해 건배,

-신병은 <표절하는 세상>

사람이 그리울 때 시를 읽자.

세상을 표절하자.

백석의 <모닥불>도 좋고,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도 좋고,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도 좋고, 김수영의 <풀>도 좋고, 나희덕의 <어두워진다는 것>도 좋고, 안도현의 <스며든다는 것>도 좋고, 마경덕의 <빈집>도 ....

한 편의 시가 감동을 넘어 나의 길을, 우리의 나아갈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감성휴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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