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박근혜
우리 안의 박근혜
  • 남해안신문
  • 승인 2016.12.15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훈<여수YMCA사무총장 >

이 글이 실릴 때쯤이면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국회탄핵여부가 결판나 있을 터, 미리 주절거리는 글을 쓰기도, 그렇다고 다른 주제로 쓰자니 헛헛하기만 하고... 이를 어쩐다? 며 뒤적이다 본 인터넷 글 하나가 폐부를 찔러온다.

진주촛불집회에서 어떤 학생이 한 발언이라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박근혜에 대한 심판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시대분위기는 다행스러우나 과연 박근혜만 단죄하면 우리사회는 정상적인 사회, 인간적인 사회로 갈 수 있을까? 그간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박근혜가, 그것도 버젓이 주류세력으로 자리해왔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출세만을 강요하는 어머니, 반 전체보다는 친한 친구의 의견만 듣는 반장과 그 친구들, 두발로 교복으로 시간표로 체벌만 앞세우는 권위적인 선생님들이 그들이다. 어찌어찌해서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과 아르바이트에서는 노동자보다 돈과 상품을 더 우선시하는 사장이 그들이다.

과연 대통령 박근혜만 퇴진하면 우리 가정과 학교는 행복해지고 노동환경문제는 해결될까? 따뜻한 가정 속에서 즐겁게 배우고 사람답게 노동하며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부모, 반장과 그 친구들, 선생님, 회사사장, 그들은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아니 박근혜가 그런 대통령 짓을 할 수 있도록 부추기거나 방치한 또 다른 박근혜다. 우리 역시 이들과 매일 마주하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는 한 이 사회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작 분노하고 몰아내야하는 것은 우리 안의, 내 안의 박근혜 최순실이다. 사람을 돈이나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인 인격으로 대하고, 경쟁상대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글을 대하는 순간 어디로든 숨고만 싶었다. 그 학생이 눈앞에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투명한 유리처럼 여리고 순수했던 젊음에서 멀리 떠나와 탐욕과 허영에 찌들어 살아온 언제부턴가의 내 자화상이 눈앞에 확 펼쳐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광장 수백만의 촛불도 나처럼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고백하듯 모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박근혜를 만들었으며 타협하고 방관해 왔으며 언뜻 스스로 박근혜가 되었음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와 자책, 분노로 촛불을 밝힌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대통령 박근혜 처단을 시작으로 이제라도 우리 안의 박근혜, 내 안의 박근혜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회, 새로운 자아들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촛불은 분명 축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축제는 한바탕 놀이로 끝나선 안 된다. 구악의 원흉들을 처벌하고, 재벌구조를 재편해 서민중심의 경제체제로 바꾸고, 후퇴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억울하게 수장된 원혼들을 달랠 진상을 규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울 법을 빚어내는 일까지 촛불의 힘으로 해내야한다.

혹여나 이제 정치에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새살거리는 입이 있다면 그 입부터 꿰매야한다. 한 달 남짓한 이번 촛불정국에서 우리는 명확히 목도하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김없이 제 민낯을 드러낸 정치권의 탐욕, 또 다른 박근혜를 우리는 보고 말았다. 그 박근혜는 빈자리가 된 박근혜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그 어떤 악마와의 타협도 불사할 것이다.

그런 정치세력들로는 우리 안의 박근혜를 처단할 자격도 가능성도 없다. 이미 타오른 촛불이 나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어야한다. 그나마 양심적 야당세력, 민주화세력, 건강한 시민세력들이 머리와 무릎을 맞대고 5천만 국민들의 요구가 담긴 향후 일정과 로드맵을 만들어내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4.19 5.18 6.10에 이은 2016 항쟁의 성격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진주촛불 학생의 소망,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여 따뜻한 세상을 만든 시민혁명! 이렇게 기록되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