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곧 마음이다
시선이 곧 마음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6.10.1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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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16]

내가 뭘 먹고 있으면 옆에 있는 어린 아이가 쳐다본다는 것은 저도 먹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시선이 결국 마음의 길인 셈이다.

시는 시선이 닿는 대상을 통해 내 마음을 표현한다.

 

조선시대 혜원 신윤복의 <월하여인>를 보면 남자는 여인을 보면서 관심을 보이는데, 진작 여인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본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라면 다른 곳을 본다는 것은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신윤복은 당시 터부시 했던 ‘놀이하는 인간’‘성을 즐기는 인간’에 주목하면서, 솔직한 조선의 속내를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 그것을 통해 양반사회의 이중성을 신란하게 풍자하기도 했다. 신윤복은 인물의 시선을 통해 양반들의 근엄한 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대표작 <미인도>의 여인처럼 조용하면서도 도발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시선을 통해 매력적이면서 에로틱한 조선의 여인상을 연출한 것이다.

 

그림이든 시든 그 속에는 작가의 시선이 있다.

그 시선을 통해 무엇(삶에 대한 이해)을 표현하게 된다.

며칠전 박해미 시인이 아침 출근길에 시간에 쫒겨 자동차 문을 열려는데 세멘트 담 모서리에서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쥐손이풀꽃을 보았다는 톡을 보내왔다. 눈 마주치자 비 맞은 꽃은 웃고 있다고, 그러면서 제자리에서 순응하며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만났다는 꼬리표를 달았다.

박시인의 톡에 담긴 시선을 여는 순간 그동안 늘 고민해왔던 ‘스스로 행복한 사람’에 대한 답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들녘이든 모서리든 보드블럭 사이든 있는 그 자리서 가만히 웃을 수 있는 풀꽃은 스스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있는 그 자리에서 가만이 웃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아침이었다.

 

가만히 풀꽃의 시선 속에 담겨진 비밀을 하나 만난 셈이다. 비밀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햐 할 자기만의 이야기지만 어떤 때는 그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비밀을 가만가만 털어놓는 것이 시다.

그때 그 비밀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끈이 된다. 이 끈이 바라 공유의 힘이다.

 

시선,

우리 앞에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모두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창작의 중요한 질문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보려한 것만 보게 된다.

맹자는 그 강, 그 물줄기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자의 마음, 생각, 심사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유독 눈에 보이는 것과 같다.

 

인상파들은 눈앞에 보이는 인상, 내가 보고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적인 모사가 아닌, 나의 감정과 빛의 움직임에 솔직했다. 여기에 반기를 든 화가 에드가 드가는 보이는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려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보려고 한 마음을 화폭에 담았다.

무엇인가를 깊게 응시하는 눈을 심안心眼이라고 한다. 골똘히 바라본다는 것은 깊게 바라보는 것이다, 호기심을 갖고 깊게 바라보면 알고 있는 그 너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을 유지하는 것 또한 예술의 또 다른 매력이다.

들춰서 다시 봐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 예술가는 포즈, 즉 일상적인 말 등에 안겨 있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수없이 건네받고 건네준 그 말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그 말

살짝만 닿아도 통증이 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괜찮지 않습니다

용감한 척, 착한 척 했습니다

혼자 외롭게 아팠습니다

‘그래, 착한 아이지’

엉덩이 다독여주던 그 말 때문이었습니다

착하게 길들이던 속임수였습니다

나를 꾹꾹 눌러 둔

괜찮다는 그 말이

착하다는 그 말이

나를 위한 마땅한 말이 없을 때나 하는

참 시시한 말이었습니다 -졸시 <착하다는 그 말>

 

맹자는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지식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리얼리티이면서 픽션이고 사실이면서 상상인 이야기가 예술이라면 어떻게 새로운 것을 볼 것인가의 문제다.

어떻게 보면 시를 쓴다는 것은 “난 지금까지 이렇게만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거야?”라는 깨달음처럼, 전혀 다른 세계가 있음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재발견의 즐거움이 바로 시창작의 매력이다.

 

예를 들면

- 그것은 아픔을 견뎌내는 힘이 곧 그리움을 다루는 능력이다.

- 태풍에 가지가 찢긴 큰나무를 보고 스스로를 버려 바람 길을 내는 것, 쓰러지지 않으려는 나무의

지혜다.

- 풀꽃은 오래보고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너도 그렇다

- 씨나락이 발아하는 것을 보며 발끝을 세우고 지나가는 빗소리도 듣고, 일렁이는 파란색 바람도

보고 농부의 발목근처에서 무수히 떴다 가는 별들도 만난다

 

이렇게 작은 깨달음을 갖는 것,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 보는 것은 마음의 언어를 익혀가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말에도 날이 있다는 등의 격언을 보더라도 말은 곧 시선이고 마음이다. 입술로 나오는 언어도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진동과 에너지를 품고 있 마음의 언어는 더 강력하다. 마음 속 생각과 이미지(그림)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언어는 삶의 때가 묻어있는 말이면서 힘 있는 말이다.

시어는 ‘노래하는 정신의 그림이요 그림 그리는 마음의 음악이다’고 했다.

말을 잘 한다는 의미는 진심을 담아 상대를 감동시키는 진폭이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솔직함이다. 진심을 다해 한마디 하는 말은 천지를 감동시킨다고 했다.

 

즉, 입술의 언어보다 마음의 언어다.

시는 이미지고, 이미지는 곧 시선이고 마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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