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때 가출했잖아, 짜장면집 간다고"
"중2 때 가출했잖아, 짜장면집 간다고"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16.08.03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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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만난 친구,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요즘 반갑고 즐거운 일이 계속됩니다. 그동안 세상과 단절되었을까? 아님, 딴 세계에 살았을까? 아무튼 잊고 살았던 과거와 소통이라 더 흥미롭습니다. 50이 넘으니 차츰 주위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자연의 이치와 삶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유이지 싶네요. 한꺼번에 터진, 세월을 거스른 만남이 반가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내 어릴 적 친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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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월요일 전교생 아침 조회 사진입니다. 이런 때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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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이다. 잘 사냐?"
"엉. 반갑다. 너도 별 일 없지?"
"한 번 보자."
"언제 볼까?"
"지금 보자. 너 집이 소호동이라 했지.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래? 그러자."
 

초등학교 깨복쟁이 친구는 연락하자마자 볼 것을 청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용기 내 연락했답니다. 그리웠다나 어쨌다나. 고마울 일입니다. 그는 40여 년 전 초등시절, 앳된 얼굴에 장난기가 철철 넘쳤습니다. 그가 호프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마주 앉았습니다.

뉘라서 세월의 흐름을 막을쏘냐. 20년 만에 본 그는 변해 있었습니다. 팔뚝엔 근육이 넘쳤습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습니다. 얼굴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내 어릴 적 친구였습니다. 그가 핸드폰을 뒤적였습니다. 원하는 걸 찾았을까. 폰을 내밀었습니다. 빛바랜 사진이 많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어디서 다 모아놨대."
"한 번씩 보려고 앨범 등에서 찾았어. 이게 삶의 활력이더라고."

40여 년 전 사진은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선사했습니다. 짧지만 유쾌한 여행이었습니다. 순박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스스로를 꺼냈습니다.

"넌 모를 거야, 나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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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반 친구들과 전체 졸업사진입니다. 꿈이 참 많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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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모를 거야. 나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했잖아. 그것도 안성으로.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이 한창 유행할 때였어. 김홍신 소설에 나온 짜장면 집 간다고 나와 15일 간이나 짜장면 배달했어."

헐. 가출이라니…. 중2. 아니 정중하게 중학교 2학년이라 해야겠네요. 중학교 2학년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방지축, 기고만장이나 봅니다. 하여튼, 가출이라곤 꿈도 못 꿨는데, 간이 부은 놈입니다. 근데, 김홍신 소설이 친구 입에서 뛰어나올 줄이야! 하기야, 당시 인간시장 영웅담 대단했지요.

"가출하고 13일째 되던 날. 잘 있다고, 걱정 말라고, 편지 써서 주소 없이 집에 보냈어. 그런데 작은 누나가 편지를 들고 안성으로 찾아온 거라. 우체국 소인이 잘못 찍혀 'ㅇ'하고 'ㅅ'만 보였는데, 그것만으로도 귀신같이 알아서 찾아왔더라고. 그 길로 잡혀 집에 내려왔지."

피붙이는 피붙이인가 봅니다. 우체국 소인 'ㅇ'과 'ㅅ'만 보고, 어찌 '안성'을 찍었을까? 대단한 수사기법입니다. 그만큼 동생 찾으려는 마음이 강했나 봅니다. 그는 묻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스스로 이야기 사이사이를 넘나들었습니다.

왜 500원 훔쳤냐고? 영화 두 편에 500원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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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앨범 위에 붙은 급훈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공정신 투철한 어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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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망쳤냐면. 그때 큰형이 사업할 때라. 가게 보다가 500원을 꼼쳤어. 큰 형이 그걸 어찌 알았는지, 알고는 째깐한 놈이 간댕이가 부었다고 몸에서 먼지가 풀풀 나도록 죽도록 패더라고. 그 길로 안성으로 튀었지."

한 때 추억이지만 보통 훔친 이야기 잘 안합니다. 근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이야기를 재미지게 풀어 헤쳤습니다.

"왜 500원을 훔쳤냐고? 그때 한참 인기였던 성룡 영화 2편 볼라고. 고게 두 편에 500원이었거든. 영화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500원을 삥땅쳤겠어. 한참 맞는데 옆에서 미용실 하던 작은 누나가 말렸어. 그때 우연히 누나 지갑을 봤는데 돈이 수북하더라고. 맞은 게 억울해서 그 길로 누나 지갑에서 3만 원 들고 튀었지."

김홍신 소설 '인간시장'은 뒷전. 범생이였던 제겐 이야기 속 친구가 영웅이었습니다. 한 번쯤 튀어볼 생각은 있었으나 용기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아쉬움. 답답한 현실에서 속 시원한 영웅담이 필요하시다면 김홍신 님의 '인간시장' 외에 고(故) 변재환 님의 장편 의협소설 '비상도'를 추천합니다. 

암튼, 얼굴만 남은 사진 속 친구들은 다들 멋있었습니다. 친구는 한바탕 무용담 후 술이 취한다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절제된 행동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보고 싶었던 친구, 얼굴 보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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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회 때 마스게임입니다. 연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벌도 많이 받았지요. 이런 걸 왜 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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