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고2 아들과 폼 나는 게릴라 데이트
중복, 고2 아들과 폼 나는 게릴라 데이트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16.07.29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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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관한 한 까탈스런 아들, 닭갈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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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뭐 먹으러 가자."

"오늘 중복이야. 뭐 먹고 싶은데?

"아빠 먹고 싶은 걸로 먹자."

"닭갈비 먹을까, 삼겹살 먹을까?"

"닭갈비."

 

입맛에 관한 한 까탈스런 아들, 닭갈비 찍고

 

대부분 "아무거나 먹자"던 고등학교 2학년 아들. 밥 먹고 독서실 간다며 서두르길 재촉합니다. 그러면서 콕 찍어 닭갈비를 주문합니다. 머릿속에 두 집이 떠오릅니다. 통닭처럼 굽는 황토 숯불구이, 닭갈비 숯불구이 집. 입맛에 관한 한 까탈스런(?) 아들. 이번에는 닭갈비 숯불구이를 콕 찍었습니다.

 

"아빠 여긴 또 언제 개발했대?"

 

닭갈비 숯불구이 '대청마루'는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곳입니다. 특히 올 초 부산에 사는 지인이 너무 맛있다고 자랑하며 데려갔던 광양의 토종닭 닭갈비 숯불구이 집처럼, 토종닭을 숯불로 자글자글 구워내는 맛이 일품인 곳입니다. 여수엔 왜 광양처럼 이런 집이 없을까, 했는데 여수에도 생겼더라고요. 체인점은 아니데요. 암튼, 반가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삼계탕 좀 사드리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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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꽤 큰 30 테이블 규모의 홀엔 손님들이 벌써부터 닭갈비를 치치칙 굽고 있었습니다. 20대 전후의 젊은 남자들의 서빙. 역동적이라 좋았습니다. 어떤 맛을 시킬까? 저희 부자, 매운 맛을 선호합니다. 이번에는 매운 맛과 안 매운 맛 반반을 주문했습니다. 둘 다 먹어보고 다음번에 확실히 선택할 요량이었습니다.

 

밑반찬이 나왔습니다. 묵, 배추 물김치, 방풍 장아찌, 마늘장아찌, 된장, 야채샐러드, 양파장아찌, 무김치, 국까지. 숯불이 왔습니다. 그렇잖아도 푹푹 찌는 더위가 더 기승입니다. 이어 닭갈비가 나왔습니다. 서빙 하는 젊은 친구가 불판에 닭을 차근차근 얹습니다. 야근하는 아내, 학원서 그림 그리는 고3 딸에게 신고했습니다.

 

나 : "아들과 닭갈비로 중복 날리는 중..."

딸 : "음 부럽다... 으으으으으응아아아!!!"

각시 : "이왕 먹는 김에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삼계탕 좀 사드리지 ㅠㅠ"

 

그냥 아들과 예정에 없던, 깜짝 게릴라 데이트 한다고 여겼는데, 아내는 한 수 위입니다. 아내는 언제 봐도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부모님 모실 걸,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이래서 요즘은 "딸이 최고다"며 "아들은 놔 봐야 소용없다"는 걸까. 부모님과 이모님 부부, 말복 때 모셔야겠습니다. 서빙 친구가 닭까지 잘라 줍니다.

 

"여긴, 외국인도 오네."

"닭은 세계 공통 요리잖아. 맛있어?"

"엉, 맛있어."

 

'이왕 하려면 반장이나 할 거시지 웬 부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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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데 정신 팔려 너무 썰렁했을까. 아들, 말하기 양념을 넣습니다. 남자들끼리 있으면 대개 '침묵이 금'인 줄 압니다.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 아들이 더 고맙습니다. 닭갈비, 익은 건 타지 않게 아들 쪽으로 놓습니다. 아들, "아빠 드세요"라면서도 웃습니다. 고맙다는 게죠. 녀석, 제게도 닭갈비 몇 조각을 놔 줍니다.

 

"아빠. 나, 내일 우리 반 부반장 선거에 나간다."

"웬 선거. 부반장이 하고 싶어?"

"응. 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말했어?"

"어. 하래. 찍어준다고."

"그럼 됐네. 하고 싶으면 해."

 

아빠는 아빠인가 봅니다. 속으로 '이왕 하려면 반장이나 할 거시지 웬 부반장?' 했습니다. 그러나 꾹 참았습니다. 다 생각이 있겠죠.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후 달라졌습니다.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상도 탑니다. 특히 재밌는 건, '창의력 독후감 쓰기'에서 장려상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초등 때부터 책이라곤 담 쌓았던 녀석이기에 항상 "책 좀 읽어라" 타박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세상이 놀랄 기적이 생긴 겁니다.

 

후다닥, 닭갈비 반 마리가 사라졌습니다. 숯불 위에 또 반 마리를 올렸습니다. 어느 새, 자리가 꽉 찼습니다. 어떤 테이블은 손님이 바뀌었습니다. 마늘 좋아하는 아들, 마늘 먹방입니다. 밥 하나를 시켰습니다. 배부르니 나눠 먹자며. 근데, 아들이 다 먹습니다. 커 가는 자식,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흐뭇하고 배부릅니다.

 

제, 부모님도 그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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