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풀, 꽃의 세상 .... 그리고 시詩
나무와 풀, 꽃의 세상 .... 그리고 시詩
  • 남해안신문
  • 승인 2016.07.2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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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14

숲에 비가 옵니다

숲 너머로 숲의 세상이 보입니다

정겹게 소곤소곤 하나, 둘, 셋, 넷

나무와 나무, 풀과 풀이 서로를 건너고 있습니다

세상의 창을 열고 .... 비껴가지 않는 삶에 닿고 싶어 ..... 참을 수 없는 그리움, 이팝나무 하얀 마음 보듬고 싶어 ....서로에게 내려서는 법을 귀뜸하며 ..... 눈 가고 마음 가고 .... 나무가 나무를, 풀이 풀을 건너고 있습니다

- 신병은 <숲에 비가 옵니다>

뭐든 잘 줍기 위해서는 잘 보아야 하고, 잘 보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

잘 읽는다는 것은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의미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를 하려면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자연 또한 그런 마음으로 대할 때 비로소 마음을 열어보인다.

새와 나무와 풀보다 우리 인간이 더 나은 점이 뭐가 있을까.

동물도 나무도 꽃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기억력도 또렷하다 .... 인간보다 더 기억력이 많은 나무들, 꽃...... 때가 되면 잊지 않고 꽃피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날을 잊지 않고 총총하게 기억한다.

뿐만 아니라, 거북은 400년 이상을 장수하고, 1,000년을 사는 나무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요국립공원에 주목나무는 그 나이가 4,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없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풀 한포기 바람 한 점에도 다 존재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존재도 작은 풀꽃의 존재도 그 값에는 차이가 없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정희성 <민지의 꽃>

나는 평소에 마음에 향기를 품고 살면 사람도 꽃이 된다고 믿는다.

민지의 ‘꽃이야’라는 한마디에 풀들은 꽃이 되고 신명이 된다. ‘잡초’란 말과 ‘꽃’이란 말의 차이는 관심과 배려가 아니면 헤아려낼 수 없는 삶의 이야기다.

모든 치료와 처방은 사랑과 관심이다.

지금도 화분들이 시들하거나 죽어 가면 내게 보내온다.

뿐만 아니라, 산을 가든 들녘을 걷다 나무와 풀, 꽃 이름을 모르면 카톡으로 내게 물어온다.

나는 무엇보다 나무와 꽃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이름을 많이 알고 있다.

특히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년시절 산과 들로 다니며 익혀들었던 이름들이 지금은 나를 식물박사로 불리게 하고, 시를 쓰는데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즉 관심의 결과다.

남들은 참 의아해 한다.

하지만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스스로 자라는 것이다. 식물이고 꽃이고 나무고 제대로 터를 잡아 주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간다.

질서와 법을 잘 지키면서 가물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비가 많이 올 때는 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나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내게 삶의 지혜를 알려준다.

나무와 꽃에게서 처음에는 ‘너 왜 그렇게 사냐’ 또는 ‘ 너 그렇게 살지 마라’는 등 참으로 많은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나무, 풀, 꽃, 소, 새가 나를 가르쳤다.

그들이 내게 보내는 무언의 가르침을 통해 나는 시 공부를 했과 삶을 배웠다.

소를 먹이러 다니면서 영화 ‘원앙’을 나는 이미 어릴 때 체험을 했고, 배려와 순종의 의미를 배웠다.

우리 인간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자연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알고 보면 우리가 아는 지혜, 우리가 아는 삶의 원리도 그렇지만 의, 식, 주 등 모두가 자연에서 얻는 온 것들이다. 자연은 우리 삶의 절친이자 큰 스승이다.

 

아침에 야단을 떠는 참새들 소리에 잠이 깬다.

나이 많아 아침잠이 줄어든 나보다 더 부지런한 놈들의 뾰죡대는 부리가 맑은 아침 햇살을

허리 밑까지 밀어넣는다.

나뭇잎 까르르 간지러워 웃는,

저 분명한 소리가 참 할 말이 많은 세상의 긴 말, 혀 짧은 말,

신소리까지 헹궈낸다

나뭇잎 출구에 기대어 쭈루룩 쭈루룩 물관을 열고 엊저녁 술자리에 남겼던 아린 말

상처가 된 말들을 골라내며 향기 밴 아침을 맞는 나도,

나뭇잎 되어 웃는다 -신병은<나뭇잎 출구>

나는 가끔 시공부를 하는 후배들에게 묻습니다. 나무와 대화를 나눠 본적이 있느냐고, 풀이 하는 이야기, 꽃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냐고, 나팔꽃 지주목을 감고 올라가는 소리 들어 보았냐고, 씨감자 눈뜨는 소리 들어 보았느냐고, 아궁이에 불씨 사위어 가는 소리 들어 보셨냐고 묻는다.

관심이 있으면 보이고 들린다. 시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날이 밝자 아버지가 모내기를 하고 있다

아침부터 먹왕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다

비온 뒤 들녘 끝에 두 분 다 부지런하시다 -정호승 <들녘>

돌, 풀, 바람, 꽃, 나무, 나비 등의 대상과 현상 앞에 쪼그려 앉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어긋나는 일 많은 세상에 이토록 간명하고 올곧은 깨우침이 있는 것, 자연의 참모습이다.

자연의 참 모습으로 우리 삶을 다독이는 시 한 편 만나는 일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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