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한편을 쓰고 나면 오래도록 행복하다”
“좋은 시 한편을 쓰고 나면 오래도록 행복하다”
  • 강성훈 기자
  • 승인 2016.05.16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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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생애 첫 시집 펴내 ‘임호상 시인’을 만나다
▲ 임호상 시인

여수에서 문화예술기획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호상 시인이 첫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를 펴내고 독자들과 만났다.

수십년간을 지역에서 문화예술기획자로서 역량을 다져온 터라 ‘시인’이란 타이틀은 ‘낯설음’이었다.

하지만, ‘임호상 시인’은 어느날 뚝딱 만들어진 타이틀이 아닌 “시는 내 가족이다”라고 읊을 정도로 수십년을 임 시인과 함께 해 온 존재였다.

임 시인은 1986년 갈무리문학동인을 시작으로 향림문학회, 여수문인협회, 전남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해오면서 30년의 흔적을 묶어 한권의 시집으로 펴냈다.

신병은 시인은 임 시인의 첫 시집에 대해 “그의 시 쓰기는 시를 위한 발상이 아니고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발효된 시상이기에 그가 체득한 발성법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평한다.

임 시인은 작가이기 이전에 문화예술기획자로서 (주)소리기획을 23년간 운영해오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2012년에는 한국이벤트대상을 수상, 지난해에는 (사)한국이벤트프로모션협회 중앙회 부회장으로 선임되는 등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문화예술기획 전문 경영인이다.

문화예술전문기획자에 묻혀 있던 시인으로서의 임호상을 만나 30여년 작품세계를 들어본다.

- 시쓰기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6년 고3 이었던 시기에 교회 친구인 최향란 시인의 소개로 문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갈무리문학회의 초창기 멤버들인 최향란, 박해미, 박혜연과 강영경, 김미순 등과 만나 품평회를 통해 완성된 작품을 복사해서 만든 문예지, 남들이 다방에서 전시를 하던 시기에 진남관 아래서 야외 시화전을 하며 시민들과 교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소년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엔 문예지를 만들고 시화전을 도와주는 일을 했지만 친구들의 권유로 어설픈 시 쓰기를 시작했었다. 자연스럽게 운명처럼 찾아 온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대학에서 문학동아리인 향림문학회를 활동하며 본격적인 길을 가게 되었다.

-. 작가로서 첫 시집을 펴낸 것이 조금 늦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첫 시집이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설픈 시들을 모아 여러 권의 시집을 내는 것 보다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한권의 시집이 중요하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멋지게 시인의 삶을 살다간 우리 지역 김종안 시인의 경우도 늦은 나이에 평생 한권의 시집을 내고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늘 내 책꽂이에서 떠나지 않는 시집 중에 한 권이다. 요즘은 시집을 내기 참 쉬운 세상이지만 한 권의 책을 만들 때마다 독자들을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나의 첫 시집도 독자들에게는 부끄럽지만 여수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보니 문인들과의 교류에서 주고 받는 명함처럼 필요했다 아울러 그 동안 써온 작품을 갈무리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 임 작가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가?

지역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 하고 있지만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여러모로 참 바쁜 것 같다. 그래서 매일 밤늦게 들어간다.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변함없이 날 기다린다. 잠들어있기도 하고 반갑게 맞이하기도 하고 가끔 늦는다고 삐지기도 하고 하지만 늘 변함없이 기다리는 변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다. 나에게는 시도 가족이다 사업에 정신이 없다가도 틈틈이 시를 생각한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처럼 늘 생각하다가 결국엔 시가 된다. 좋은 시 한편을 쓰고 나면 오래도록 행복하다.

-. 대표 작품 ‘조금새끼로 운다’는 어떤 의미인가?

슬픈 노래, 바닷가에서 태어나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시를 읽으면 마치 내 삶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것은 아니다. 선술집 이모님이 들려준 유년의 삶을 막걸리 안주처럼 듣다가 “조금새끼로 운다”시를 운명처럼 쓴 것 같다. 시집의 제목이 된 것처럼 이 시는 내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 첫 시집에 '여수'가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시인에게 ‘여수’는 어떤 의미인가?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여수엘 왔다. 그리고는 여수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대학도 순천으로 통학버스를 타고 다녔기에 여수는 줄곧 지켜온 내 삶의 중심이다. 중간에 좋은 환경을 제시하는 분들의 많은 유혹도 있었지만 여수를 지키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여수에서 살고 여수에 묻힐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여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수를 얼마나 자랑하는지... 나는 그냥 여수다. 그래서 인지 문인수 시인이 호를 여산(麗山)으로 지어 주셨고 명리학의 대가인 김태규 선생도 내 집의 당호를 여산수청헌(麗山水淸軒)으로 지어주셨다.

-. 앞으로 어떤 작품들 그리고 싶은지...

지금처럼 어렵지 않은 단어로 시를 쓰고 싶다. 말장난이 아닌 진심이 담긴 언어로 감동을 주고 싶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멋진 명대사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마음의 이야기 같은 시 한편, 읽을수록 눈물이 나고 오래도록 그리운 언어가 되는 작품을 쓰고 싶다.

-. 여전히 작가로서의 입지보다 기획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전업 작가가 아니다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23년간 많은 사람들을 행사장에서 만났으니 더욱 그러 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획자의 길에서도 시인의 생각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과 더 깊은 고민을 기획의 과정에서 담아 내려고 노력했다. 행사 하나 하나가 멋진 시 한 편처럼 오랜 고민 속에서 완성되다보니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새로 입사한 직원에게는 매일 시 한편 읽기를 권하고 있다. 그래도 최근 시집을 낸 이후에 임대표 보다 임시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 향후 활동 계획은?

거창한 계획은 없다. 그냥 열심히 살고 싶다.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고 좋은 사람 열심히 만나다 보면 좋은 시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몇 가지 생각 할 일은 노후를 생각해서 지금부터 좋은 나무 몇 그루 심고 싶다. 길을 가다 이름 모를 꽃이나 이름 모를 풀들을 만나면 예전보다 무척 궁금해지고 싶은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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