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거북선 축제 발상의 전환을 - 축제 50년 진화를 위해 -
여수 거북선 축제 발상의 전환을 - 축제 50년 진화를 위해 -
  • 이상율 기자
  • 승인 2016.05.13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열린 제50회 여수 거북선축제가 성황리에 끝났다. 「삼도 수군의 함성, 지천명의 귀향! 을 주제로 5월 6일부터 8일까지 중앙동 이순신광장과 종포 해양공원 등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50회 축제는 여수시와 (사)여수 진남 거북선 축제보존회가 그동안 진남제와 여수 거북선 대축제 등으로 혼용해왔던 축제 명칭을 여수 거북선축제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개최시기도 매년 5월 첫째 주 금∼일요일에 3일간 개최하기로 변화를 가져왔다.

축제는 대성황이었다. 기간 동안 방문한 관광객은 33만 5천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열린 범선축제엔 10만 6천여 명을 포함하면 세 배 가깝게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 관광객들의 만족도도 100만 점에 82.84 점을, 응답자 중 95.4%는 재방문 의사를 보여 축제의 장래가 희망적이란 평가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백화점 매출액, 문화시설 입장객 등이 급증한 것처럼 전국적으로 나들이객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수 거북선 축제는 진남제(鎭南祭)라는 명칭으로 출발했다. 1967년 5월 5일 개최된 제1회 제전부터 제8회 제전까지는 여수시 주최, 여수문화원 주관, 여수체육회와 예총 여수지부가 지원하였다. 체육과 문예를 종합한 축제였다. 1975년 5월 5일 제9회부터 진남제가 시 전체의 행사로 거행되어 그 규모와 내용이 커짐에 따라 민간에 이양되어 진남위원회가 발족하었고 제전 행사가 전국 규모의 향토민속 대제전으로 발전되어 1979년 3월 30일 문화공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사단법인 진남제전보존회가 설립됐고 제전의 주최 단체로 축제를 관리해왔다.

제전 50돌을 맞아 여수 거북선 축제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늦은 감은 없지만 시의적절한 조치였다. 내년은 거북선 축제를 새롭게 변모시키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출범 당시 제전의 명칭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그러나 후보에 오른 명칭 가운데 진남제라는 명칭이 채택되었다. 조선 시대에 지은 현존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 건물인 진남관이 있는 고장이라는 연상에서 비롯했다. 진남관(鎭南館)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됐다. 진남관을 임진왜란 때는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사용된 조선 수군의 중심 기지였다고 소개되고 있으나 사실은 객사(客舍)다. 고려와 이조 때의 객사는 객관이라고도 했는데,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다. 조선왕조시대에는 이곳에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였다. 결국, 객사의 이름을 제전의 명칭으로 선택한 것은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진남관이라는 편액을 놓고도 엇갈린 해석이 충돌한다. 선조가 전후에 내린 진남관이라는 편액에 한자의 진(鎭)이 풀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누를鎭, 진압할 鎭, 어루만질 鎭으로 사용이 다양하다. 진압이나 누를 진으로 표기하면 남해 일원의 왜구를 비롯한 외적을 철저히 방비하라는 뜻이지만 어루만질 진이면 전후 어려운 백성을 잘 선무(宣撫)하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선조가 전후 여수와 남해지역에 전후 백성을 위로하기 구휼미를 보내준 것을 근거로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여수 거북선 축제는 최초로 거북선을 만든 곳이 여수이기 때문에 역사성에서 빈틈이 없는 작명이다. 거북선은 창의를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 창의성(創意性)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거나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조합해 내는 것과 연관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다.

거북선은 창의력의 소산이며 거북선이 있었기에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鶴翼陣)과 일자진(一字陳)을 완성해 대승을 거두고 누란의 조국을 구한 충신으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거북선 축제라는 명칭이 장군의 명예훼손 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위대한 업적에 대한 명확한 사실을 반추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물 위주의 축제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이충무공이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정신의 상징성이 있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거북선을 최초의 철갑선이라 하는 것은 곧 창의성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 조선소 건립 일화로 정주영 회장이 영국의 은행에서 우리나라 지폐 500원권을 내놓고 이 지폐에 그려진 것은 거북선이라는 배며 철로 만든 함선이다. 영국의 조선역사는 1800년대인데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소.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 있소 라는 말한 일화는 오늘날 한국이 조선 대국으로 성장하는데 씨앗이 됐다. 오늘날 유조선 등 대형 선박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다. 창의력으로 넘쳐난다. 거북선의 당시의 최첨단 전투 함선이었으며 그 의미는 현재의 최첨단 선박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다.

거북선 축제는 이런 창의력을 바탕으로 축제의 큰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여 접목할 수 있을 때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축제로 성장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