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4.16’
‘대한민국의 4.16’
  • 남해안신문
  • 승인 2015.04.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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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상훈 (여수YMCA사무총장)

달력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날 의미 없는 날이 없다.

이달만 하더라도 제주4.3사건을 시작으로 향토예비군의날, 식목일, 한식, 보건의날, 임시정부수립기념일, 4.19혁명, 곡우, 장애인의날, 과학의날, 정보통신의날, 법의날, 이순신탄신일이 줄줄이 이어진다. 명절과 절기처럼 자연계절에 따라 정해진 날도 있고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있는가하면 사회적 합의를 새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한 날도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삶이란 미리 정해진 날을 반복적으로 맞고 보내다가 떠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예기치 못했든 필연적이든 새로운 사건이 몇 개 더해져 얹히면 그것이 그 시대역사로 정해지는 것이고... 

그 이전까지야 잘 모르겠고 8.15(해방), 6.25(전쟁), 4.19(혁명), 10.26(정변), 5.18, 6.10(항쟁)처럼 그 날짜만으로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품고 있는 날들이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그 날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박근혜대통령은 이와 같은 날을 하나 더 만들어낸 바 있다. 이 참사를 계기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겠노라고, 그래서 대한민국은 세월호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눈물로 다짐했다. 해양경찰청이 해체되고 한 종파의 신적 존재였지만 사고 배의 소유주라는 죄로 변사체가 되었다. 수학여행이 중단됐고 체험학습 한번 나가려면 10여장의 서류를 제출해야한다. 

그렇게 1년이 지나는 지금, 그런데 ‘새로운 대한민국’은 좀 이상하게 만들어져가고 있다. 청소년수련시설이나 공공시설이 어김없이 무너지고 불타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그런데 국민들은 분노조차 하지 않는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떼 같은 목숨 3백 명이 한순간에 죽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웬 호들갑인가 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정부가 지켜 주리라는 기대 따위는 아예 버리고 그저 나와 내 가족만 무탈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분위기다.

무력해진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것일까. 집권세력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원하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종북으로 몰고, 간신히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세금도둑 운운하며 옭아맨다. 보고 있자니 그들에게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이참에 그간 못마땅했던 민주주의를 퇴행시켜 유신독재로 되돌리는 것이 아닌가싶다. 

더 나아가 공고한 안전사회시스템을 자랑하는 일본의 후쿠시마원전이 터져 전 세계가 탈핵을 고민하는 와중임에도 수명이 다한 월성핵발전소며 고리핵발전소의 억지수명을 연장시키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 막장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김없이 돌아온 4.16 1주기는 돌이키기조차도 너무 아프다. 다들 죄인이라고,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결코 잊지 않겠다고 우리 모두 고백하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우리에게 그들은 속삭인다. 이제 그만 잊자고,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고, 어려운 나라살림에 돈 생각도 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래서 더 아프다. 작년 4월보다 더 잔인한 올해 4월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달력에 4.16은 어떻게든 새겨질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의 ( )에는 과연 어떤 성격의 단어가 새겨질까. 추모? 비극? 새 역사? 발목 잡혀 낑낑대고 있는 세월호특위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주느냐, 국민여론이 어떤 힘으로 작용할 것이냐, 내년 국회의원총선과 내후년 대통령선거 결과가 어떤가에 따라 4.16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4.16도 진실은 하나다.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을 꽃 같은 304인의 죽음, 살았으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어느새 잊혀가는 기억이 괴로워 양심에 몸서리치는 선한 국민들. 4.16은 이들을 위한 날이어야 한다. 살아남은 우리가 만들어야할 새로운 대한민국 4.16이다.

탐욕과 이기주의의 민낯을 드러내 그것이 얼마나 흉하고 아픈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떠난 4.16영령이시여! 부디 남은 우리가 저들과 맞서 싸워 이기게 힘을 주소서.

/ 이상훈(여수YMCA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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