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장에 ‘여수떡볶이’ 선보일 거예요”
“박람회장에 ‘여수떡볶이’ 선보일 거예요”
  • 강성훈 기자
  • 승인 2011.11.22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여년 떡볶이 외길, ‘연등식품’의 새로운 도전
자연에 어머니 정성 더한 ‘맘다해’로 세계인의 입맛에 도전장
▲ 여수지역 유일의 면류 품제조회사 '연등식품'이 최근 해썹 인증을 획득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여수에서 난 여수 농산물로 만들어 내는 여수대표 먹거리를 지켜 갈 거예요”

대를 이어 여수지역 유일의 면류 식품제조회사를 이끌어 오고 있는 연등식품 정상태 사장.
정사장의 말처럼 4번의 강산이 변하면서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했던 떡볶이 제조 회사의 역사도 크게 바뀌었다.

떡볶이는 말 그대로 영원한 서민들의 별미이자 아이들에게 최고의 간식이었다.

연탄불 위에 커다란 무쇠 냄비를 얹혀 고추장에 풀어 놓은 떡볶이는 바라만 봐도 군침이 돌았다.

4~5개에 1백원하던 시절이라 몇 개 집어먹고서 아쉬움에 입만 다셔야 했다.

요즘처럼 떡볶이에 라면사리며 오뎅, 달걀이 들어가지 않아도 붉디붉은 고추장에 버무려진 떡볶이만으로 입이 즐거웠던 시절이다.

이런 떡볶이도 변신과 진화를 거듭하며 최근에는 식품 대기업들이 앞다퉈 전문 체인점을 오픈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주요한 외식메뉴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에서 붉은 고추장을 묻혀가며 포즈를 취하는 등 대표적 서민음식이다.

1956년 서울 신당동에서 시작되었다는 떡볶이의 역사.

1970년대초 연등떡방앗간에서 시작된 여수떡볶이
여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여수 떡볶이의 산증인으로 자리매김한 ‘연등식품’이 어렴풋이나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초 연등동에서 문을 연 ‘연등떡방앗간’이 시발점이었다.
1978년 떡방앗간에서 시작된 ‘연등식품’은 10여년 후 공장시스템을 갖춘 떡제조공장으로 전환했다. 이때가 중년이 된 여수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할 마름모꼴 모양으로 쌓아 올려진 떡볶이 떡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생산하는 종류도 다양해졌다. 냉면, 쫄면 등으로 모든 면 종류를 생산했다.

여수지역의 떡복이를 생산하던 업체는 80년대만 해도 4개에 이를 정도로 호황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먹을거리가 쏟아지고, 외식문화가 바뀌어 가면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잘 나가던 때는 쌀가마니에 돈을 구겨 넣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던 연등식품도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고 위축되어 갔다.

▲ 연등식품은 새로운 브랜드 '맘다해'를 선보이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잘 나갈때는 쌀가마니가 돈자루”
이런 영화도 뒤로 한 채 IMF를 겪으면서 실제 2차례나 어려운 고비를 맞기도 했다.
정씨의 아버지, 작은아버지가 함께 운영하던 회사도 2005년부터 정씨가 단독으로 인수해 직접 운영키로 했다.

“80년대처럼 가족끼리 가내수공업 형태로 운영했다가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었죠”

그때까지도 식품제조 회사라면 사업확장을 위해 필수조건이던 해썹(HACCP)인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이미 90년대 중반 식품인증 제도가 도입되면서 학교나 대기업 식당 등에 납품하기 위해 필수조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등식품’은 대규모 유통길이 막히면서 어려움은 계속됐다.

“과거의 영화에 안주하다 시대 흐름을 놓쳐 버린 거죠. 또 워낙 힘들었던 터라 도망다니기를 수차례. 문을 닫을까도 했어요”

그 위기상황에 돌파구가 있었다. “주변 상인들이 만류했어요. 제품 좋고 브랜드 인지도도 여수에서 최고인데 왜 그만 두려느냐구요”

7월, 해썹인증으로 새로운 돌파구
다시 시작했다. 2009년에는 광무동 파출소 뒤편 현재의 공장으로 이전했다.
지난 7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식품의 위생 안전성을 인정받는 해썹(HACCP) 인증도 받았다.

제품 맛과 다양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계의 현대화로 대량 생산체계를 갖췄지만 처음 생면을 뽑아낼 때의 맛을 유지하려고 다양한 방식의 실험과 연구를 반복중이다.

경상계열을 전공했던 정 사장에게 식품연구는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혼자서 수차례 외국박람회와 일본 공장을 견학하면서 직접 기술을 전수받고 터득한 덕분에 새로운 제품에 대한 기획아이디어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벌써 3개의 제품을 특허청에 특허발원 신청중이다.
조만간 무인 생산시스템도 갖추게 되면 사업에 새로운 동력을 추가하게 될 것이라는 정 사장. 80~90년대 최고의 간식거리였던 밀가루 떡볶이도 이제 추억거리로 남게 됐다.

“밀가루 떡볶이는 올해말까지 생산하게 됩니다. 쌀떡볶이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었고, 기술도 밀가루떡이 지닌 찰기 등 장점 보완이 이뤄졌어요”

이처럼 최근 몇 년사이 일구고 있는 탈바꿈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정 사장은 이제 과거에 겪었던 어려움을 뒤로 한 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하루 30만 유동인구, 박람회장에 여수떡볶이 등장
내년 여수에서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장과 2013년 순천에서 열리는 정원박람회장에서 여수의 떡볶이를 선보이는 것.

물론 연탄불과 철판을 연상하는 떡볶이가 아닌 즉석에서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즉석떡볶이’다.

“하룻동안 30여만명이 박람회장을 찾을 텐데 이들을 모두 식당에서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죠. 이들을 위해 우리의 먹거리를 자신있게 내놓겠다는 거예요”

즉석떡볶이는 국내에서 2~3개 식품관련 대기업에서만 생산판매중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유일하다.

“좋은 식품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중이에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정씨.

손수 위생복을 입고 공장에서 떡을 뽑아내고 직접 차량을 몰고 주문배달에 나서는 정씨에게서 해썹이나 즉석떡볶이를 고민하지 않아도 한해 수억원의 매출은 손쉽게 벌어들이던 시절은 잊었다.

“‘맘다해’라는 새로운 브랜드처럼 40여년을 지켜온 어머니의 정성을 담은 여수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가야죠”라는 정사장의 얼굴에는 70년대 시민들의 간식거리였던 고추장 떡볶이의 아련한 추억과 세계박람회장을 누빌 컵떡볶이의 내일이 교차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