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과 새경
머슴과 새경
  • 이상율 기자
  • 승인 2011.10.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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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과 새경

『3년째 농사를 망친 여 진사는 근심이 태산이다. 빗방울이라도 쏟아져야 할 때면 땡볕이, 햇빛이 쨍쨍했으면 하는데 온종일 비와 바람이 몰아쳐 논밭의 곡식이 온통 쭉정이뿐이다. 머슴들에게 줄 새경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머슴 중에 가장 농땡이를 잘 부리기로 이름난 돌쇠가 찾아와 “나리 올해는 머슴들의 새경을 올려 주어야겠습니다.”라면서 채근하는 것이 아닌가. 올 농사까지도 흉년으로 기가 막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새경을 올려 달라는 머슴들의 모습에 여 진사는 그만 울화통이 터지고 말았다. “ 못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새경은 못 올려”라고 하면서 돌아앉고 말았다.

새경은 농가에서 1년 동안 일해 준 대가로 머슴에게 주는 곡물이나 돈이다. 선거 때 뽑은 시의원들이 자칭 머슴이라고 하니 이들에게 우리 돈으로 새경을 주어야 한다. 즉 의정비이다. 그런데 이들이 농가의 흉년처럼 경제사정이 매우 좋지 않은데 주인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경을 올려 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으니 가관이다.

의정비 인상 추진이다. 의원에게는 의정자료 수집과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의정활동비, 직무활동을 위한 월정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시의 행정을 제대로 감시 감독하고 시민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지역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주는 것이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의원 한 명에게 연간 3천만 원이 넘는 돈을 준다. 서른 명쯤 되는 도시라면 연간 10억 원쯤 각종 수당까지 합치면 족히 십 수억 원이 넘는다. 이 돈은 모두 해당 시군의 예산으로 충당한다. 즉 시민이 내는 돈이다.

여수시 의회도 내년도 공무원 급여 인상 방침과 타지자체에 비해 낮은 의정비 등을 이유로 인상안을 제출했다. 의정 비 기준 액을 변경하려면 의정비심의위원회를 구성한 뒤 공청회와 주민의견 수렴 등을 거쳐 10월 말까지 인상 폭을 결정하고 12월까지 조례를 개정해야 다음해 의정 비를 올릴 수 있다. 의정비심의위원회 수당과 여론조사 비용 등에는 500만∼1200만원의 예산이 들어야 한다. 머슴은 맘에 안 들면 해고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번 뽑은 시의원은 맘에 들지 않아도 바꿀 수 없다. 의정비만 챙기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달리 채근할 방법이 없다. 그런 시의원에게 피 같은 세금을 내주고 싶은 시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여수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도시다. 모든 시민이 엑스포 성공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할 일 많은 여수의 재정자립도는 30% 안팎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골목골목 가꾸고 고쳐야 할 곳이 많아 돈 쓸데가 부지기수인데 의정 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의회의 몰염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여수시의회는 현재 7명의 현직의원이 뇌물수수혐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의원들이 제 직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판결에 따라 새로운 의원을 뽑아야 할런지도 모르는데 새경을 올려달라는 모습이 짜증스럽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의회의 양식이다. 지자체 재정은 빈사 상태인데 사정을 외면한 의정 비 인상 추진은 아무래도 시기 선택을 잘 못한 것 같다.

지방의원 유급 제는 의회 전문성 강화 명분으로 2006년 도입됐다. 지방자치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유급 제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여간 아깝지 않다. 지방 곳간이 무사한지 잘 챙기는 데는 관심 없고 이권과 인사 등에 개입하는 의원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는 의정 비 인상에 연연하기보다는 의회 무용론이 왜 나오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일 잘하는 머슴에게는 새경도 더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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