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제자리 여수 석창성 복원 이뤄지나
20년째 제자리 여수 석창성 복원 이뤄지나
  • 강성훈 기자
  • 승인 2011.07.05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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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둘뿐인 평지 석성.여수 관문 상징성...복원 시급
여수시, 주변정비 나서...국가사적 지정 추진도
▲ 내년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지역 문화자원의 관광자원 활용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여수시가 석창성 복원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평지 석성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남에도 20여년째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석창성 복원사업이 재시동을 건다.

여수시에 따르면 오는 8월 예정인 제2회 추경 예산편성시 1억2천만원을 확보해 관람로 설치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남도 지방기념물 106호로 지정된 석창성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평지 석성으로서 문화재적 높은 가치 평가는 물론 여수 관문에 놓인 상징성으로 복원의 시급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복원을 통한 관광자원으로서 활용과 미관을 고려한 정화사업의 시급성이 대두돼 왔다.

이같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석창성 복원 사업은 더디게만 진행돼 왔다.

복원사업을 시도한지 20여년째이지만 아직까지도 관련 토지를 100% 매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6세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성지는 오랜 방치로 일부분만 남기고 대부분 훼손됐으며 1980년대 후반 기초발굴작업이 끝나면서 1987년 전남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됐다.

이후 1990년 구 여천시가 38억원의 예산을 들여 관아와 성벽을 복원하는 석창성 복원사업계획을 수립했으며 2002년 명지대 발굴팀에 발굴용역을 의뢰해 1억7000여만원을 들여 1차 발굴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사업은 지속되지 못한 채 계획단계에 머무르면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부지매입마저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매입대상지 95필지 가운데 70,634㎡를 매입해 91.2%의 매입률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성내는 매입을 완료한 상태다.

그나마 여수시가 다시금 복원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해 관심을 모은다.

시는 국비 70억원을 포함 111억8천여만원을 들여 2016년까지 성벽 복원 및 주변 정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 5월 4일에는 국가 사적 지정 관련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의 현지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복원사업을 위해 우선 오는 8월중 계획된 추경 예산에 일부 시비를 확보해 오는 12월까지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관람로 설치 등 주변 정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국가 사적 지정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매영문화연구센터장은 “석창성은 지역의 중요 문화자원으로 관광자원으로서 활용가치 또한 높다”며 “박람회와 관련된 개발사업보다 성 복원 사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시급한 석창성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민 권모씨도 “세계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여수의 중요한 문화자원을 자랑해야 할 것인데 이처럼 지역내 중요한 문화자원을 방치한다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며 “계획만 되풀이 할 게 아니라 구체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복원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국가 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있어 결과에 따라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국가 사적 지정 사전정지 작업과 내년 박람회를 대비해 우선 시급한 주변정비 작업을 올 하반기 진행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성종실록’에 의하면 석창성은 16세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세운 석보(石堡)였으나 18세기에 여수(呂水), 삼일포, 소라포로부터 세미(稅米)를 거두어 보관하거나 중앙 정부에 올려 보낸 창고 기능을 담당했다.

적들이 쉽게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물을 채운 해자(垓字)는 성의 북쪽과 남쪽에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으며 건물은 ‘호좌수영지(1871)’에 사창 3칸과 봉상청 2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초발굴 당시 성 주변에서는 조선 후기 백자 조각이 많이 발견됐으며 삼국시대 적갈색 청회색 토기 조각과 13∼14세기께 무문청자 및 상감청자, 15세기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16세기 인화문 분청사기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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