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특산품 갈대꽃 빗자루를 아시나요?
광양의 특산품 갈대꽃 빗자루를 아시나요?
  • 광양뉴스
  • 승인 2011.03.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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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 광양군지에 실린 박용규 옹의 젊은모습. 갈대꽃 빗자루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진공청소기와 나일론 빗자루가 나오고 중국산이 밀려들면서부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 갈대꽃 빗자루.  수작업으로만 완성되는 갈대꽃 빗자루는 소비가 많았던  90년대 초까지 꾸준한 호황을 누렸다.  

80년대 광양군 홍보책자를 살펴보면 광양의 대표 특산품으로 장도, 궁시와 함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우리 지역의 대표 산물이었다. 이제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갈대꽃 빗자루. 한때는 광양 궁시, 장도와 함께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빗자루같이 질기게 배운 기술
옛날부터 진상면 청암리 삼정마을 앞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으로 우거진 갈대밭이 형성되었다. 특별한 소득원이 없던 시절 마을주민들은 자연히 갈대꽃을 뽑아 하동 장으로 내다파는 것이 주 소득원이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갈꽃을 뽑아서 하동 장까지 걸어가 내다 팔았당께. 얼마나 힘들던가” 삼정마을로 시집온 윤샌 댁 이정순(78) 할머니가 배를 타고 갈대밭으로 건너가 갈대꽃을 뽑았던 시절을 들려준다. 삼정마을에서 갈대꽃 빗자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

갈대꽃 뽑는 일도 힘들고 하동 장까지 팔러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아 하동에서 만드는 갈대꽃 빗자루를 우리도 한번 만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이제는 칠순을 넘긴 박용규 할아버지가 한가닥 한가닥 풀어보고 완성한 것이 광양 갈대꽃 빗자루의 시초다. 손 맵시가 좋았던 박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빗자루 모양을 내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하동 못지않은 갈대꽃 빗자루를 만들게 되었다.

   
삼정마을 이정순 할머니

 


고된 작업끝에 완성된 작품

빗자루의 제작과정은 시간이 많이 들고 복잡하지만 장비는 단순하다. 그만큼 손을 이용한 작업이 많다. 조리개와 실과 끈을 잘라주고 꿰매는 가위, 바늘, 망치와 자루 마감을 하기 위한 낫 등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고작이다.

삼정마을 갈대꽃은 7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지며, 갈대 빗자루는 7월 백중을 전후해 피기 시작한 ‘오사리’라 불리는 부드럽고 찰진 갈대꽃을 뽑아 정성껏 말려 부들과 함께 엮어 만든다.
그늘에 말린 뒤 납작한 칼을 이용, 줄기에 묻은 이물질과 꽃가루 등을 긁어내 햇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준비된 재료는 분무기로 약간의 물을 뿌려 촉촉하게 만든 뒤 한 가닥 한 가닥 모아 일렬로 정렬한다.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만큼의 묶음에 수숫대를 함께 넣어 실과 나일론 끈으로 동여 묶음을 만든다.
비의 크기에 따라 수십 개의 묶음을 하나의 큰 묶음으로 만든 뒤 수수자루를 한 곳으로 모아 비틀어 모양을 완성한 후 자루 중간 중간을 색색의 실과 나일론 끈으로 묶어 견고함과 장식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묶음이 끝난 비의 자루 끝을 낫을 이용해 일렬로 잘라주면 한 자루의 빗자루가 탄생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으로 갈대꽃 빗자루는 하루에 겨우 한사람이 한개 정도 만들 수 있었고, 자루에 갖가지 매듭을 넣는 꽃비는 3일이나 걸려 80년대 가격으로 3-4만원대의 고가였다.

   
마루에 걸린 갈대꽃 빗자루

집집마다 있었던 최고의 선물
갈대꽃 빗자루는 쓸리기도 잘 쓸려 다른 빗자루는 '저리 가라'였다고 한다. ‘나일론’ 빗자루가 나오기 전에는 최고의 빗자루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박용규(71) 할아버지는 “마루에 빗자루하고 쓰레받이가 집집마다 똑같이 걸려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사선물, 명절 선물로 최고였다는 갈대꽃 빗자루는 인기가 많을 때에는 주문량을 못 따라 갈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인기가 있던 갈대꽃에도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빗자루를 한번 사가면 족히 3년은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정순 할머니는 “너무 튼튼하게 만든께 만날 쓰고 해도 3년을 새것처럼 쓴다”며 은근히 빗자루 자랑을 보탰다.

이제 삼정마을에서 갈대꽃 빗자루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정순 할머니와 박용규 할아버지 두 명뿐이다.
하지만 이정순 할머니는 78살로 건강이 좋지 않고, 박용규 할아버지는 빗자루 제작과 거리가 먼 비닐하우스를 하고 있다.
누가 배우려고 하지도 않아 사실상 명맥이 끊긴 셈이다.
박용규 할아버지는 한때 박용기 장도 장인, 김기 궁시 장인과 함께 다수의 민예품 경진대회 등에 참가해 상을 받고 광양군 대표 특산품으로 군 홍보책자에도 소개됐던 갈대꽃 빗자루 장인이었다.
박 할아버지는 박용기ㆍ김기 장인이 현재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식을 들을 때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한때 자신도 광양을 대표하는 장인으로 활약했었는데 이제는 누구하나 알아주지 못한 채 쓸쓸히 갈대꽃 빗자루 만들기는 퇴색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 할아버지는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84년 제10회 광양군민의 날 작가초대전 도록과 85년 광양군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두 자료에는 박 할아버지의 갈대꽃 빗자루가 장도, 궁시와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수많은 상장 중 유일하게 남은 상장

세월속에 사라지는 갈대꽃 빗자루
취재결과 광양시에서도 갈대꽃 빗자루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어서 박 할아버지의 어깨는 더욱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갈대꽃 빗자루를 기억하고 찾는 이가 가끔 있지만 손을 땐지 오래라는 박 할아버지는“내가 죽으면 우리 동네에서 갈대꽃으로 빗자루 만들었다는 걸알까?”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광양 삼정마을의 ‘갈대꽃 빗자루’를 아쉬워했다.    <광양뉴스 제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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