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음악의 거성 루이 암스트롱
재즈 음악의 거성 루이 암스트롱
  • 남해안신문 기자
  • 승인 2010.07.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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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만의 재즈가 있는 풍경(2)

재즈의 요람인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가수 로 알고 있는 루이 암스트롱은 노래도 잘 하지만 트럼펫 연주자로서도 최고의 호평을 받았으며 클래식 음악과 가장 구별이 되는 재즈의 특징인 즉흥연주(독주)의 중요성을 확립하였다.

또한 노래를 하다가 악보를 떨어뜨려 가사가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사를 즉흥적으로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스캣(재즈에서 가사 대신 “다다디다, 두비두밥” 등 아무 뜻도 없는 소리로 노래하는 창법으로 보컬리스트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듯이 노래 부르는 것)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루이 암스트롱이 음악을 시작했던 특이한 배경은 축제 때 거리에서 허공을 향해 총을 쐈다는 이유로 소년원에 가게 되었고, 소년원에서 코넷(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긴 금관악기로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을 연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밴드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밴드의 리더를 맡게 되었으며, 출소 한 후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훌륭한 트럼펫 연주는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충분 하였고, 탁월한 스윙 감각과 놀라운 테크닉, 무대에서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유머, 다른 연주자와 비교 할 수 없는 개성 있는 존재감, 광대 같은 이미지와 재미있는 만담, 허스키 하면서도 매혹적인 보컬 음색으로 루이 암스트롱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재즈 연주자가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게 된다.

인종 차별이 심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흑인을 위해 앞장서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투쟁했던 그의 성공과 막강한 영향력은 흑인 들 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는 세계 순회 공연을 하며 “미국의 친선 대사”로 활동할 만큼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루이 암스트롱은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였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재즈 음악을 대중들이 공감하고 함께 호흡하며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재즈가 음악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장르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재즈를 너무 진지하게만 생각하지 말아라 결국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음악 아니냐” 라고 이야기 할 만큼 대중의 반응과 호응을 중요시 했던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적인 생각은 오늘날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큰 귀감이 될 만 하다.

흔히 재즈 연주를 들을 때 일반인이 듣기에 너무 어렵고 연주자 자신들의 기쁨과 쾌감을 위해 하는 음악처럼 느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재즈 연주를 감상하는 대중들의 느낌은 중요하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이라 할 지라도 그 음악을 감상하는 분들의 생각도 고려 되어야 한다.

필자는 재즈만 고집하는 것도 싫고, 클래식만 좋아하는 것도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음악의 장르는 평등하고, 동일 선상에 놓여 있다.

재즈도 좋고, 클래식도 좋고, 팝송 이나 가요, 국악, 민요, 연주곡, 뉴에이지, 힙합, 댄스곡 등 어떤 장르도 대중의 정서를 반영 하고, 들으면서 즐겁고 흥겹고 감동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최고의 음악인 것 같다.

1971년 루이 암스트롱이 사망 했을 때 미국 언론은 “문화의 한 시대가 끝났다” 고 표현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 했을 정도로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 문화를 주도 하고, 선도 하는 역할을 하였다.

재즈의 산 역사 이자 증인 이었던 재즈계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유쾌한 에너지가 생긴다.

▲ 재즈 음악의 거성으로 불리는 루이암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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