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힘으로 살다①
제 힘으로 살다①
  • 남해안신문 기자
  • 승인 2009.12.0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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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 비전여수 인재육성 대표
이순신장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 이순신리더십 지상강좌(4)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다. 54년 동안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 역사상 가장 크고 거룩한 영웅의 자취를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가 충무공의 사상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순신장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자고 외친다. 그렇다면 장군으로 하여금, 장군 되게 한 가장 근본적이요 기초적인 정신은 무엇이었던가?

제 힘으로 사는 정신이다. 그것이 바로 흔히 일컫는 자립정신이요 자주정신이다. 제 스스로 제 힘으로 사는 것이다. 남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남을 기대지 않는 것이다.

충무공은 그 일생을 통하여, 이 정신을 최고도로 발휘한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공의 출세가 얼마나 더디었는지 모른다.

과거에 오른 것도 32세로써 보통의 경우보다 무척 늦게 되었다. 그렇게 급제를 하고도 북쪽 변방으로 나가, 권관이니 만호니 하는 대단찮은 자리로만 돌아다니다가, 정읍 현감이라는 손바닥만 한 고을살이를 얻은 것도 45세 때의 일이요, 전라좌수사가 된 것은 47세 때의 일이다.

실로 15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유성룡이 그의 징비록에 “조정에서는 공을 밀어주고 당겨주는 이가 없어, 급제한지 10여년이 지나도록 출세하지 못했다.”고 했다.

장군은 자기의 발전을 위해서 권세가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같은 기회가 왔어도 그것을 물리쳤다.

율곡과 충무공은 같은 덕수 이씨다. 충무공이 아저씨 항렬이요, 율곡은 조카뻘이 된다. 율곡은 일찍부터 출세해서 대신의 자리에 까지 간 사람이요, 충무공은 미관말직에서 허덕이는 사람이었다.

율곡이 충무공을 만나보자고 청했다. 그것도 유성룡을 통해서였고, 또 유성룡도 서로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충무공은 그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율곡과 내가 같은 성바지라, 서로 만나는 것도 좋겠지마는, 그가 벼슬을 주는 대신의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만나보지 않겠다.”

율곡과 유성룡은 그의 인격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가의 힘을 빌어 벼슬길에 나왔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기의 서녀로써 공의 소실을 삼겠다고 했을 때,“내가 벼슬길에 처음 나온 자로서, 권세 있는 집안에 발을 붙일 수는 없다.”하고 거절하였고 또 유전이란 재상이 공의 화살통을 청했을 때도, “그 따위 화살통 하나 쯤 드리기는 쉬우나, 그 때문에 이름을 더럽힐 수가 없소.” 하고 거절하였다.

장군은 이같이 남의 힘에 의존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 본 일이 없었다. 그것처럼 자기를 모독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제힘이란 무엇이고, 그 힘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제힘이란 실력을 이름이다. 참된 힘이다. 거짓 힘은 실력이 아니다. 남의 힘은 거짓 힘이다. 그러면, 그 실력, 그 참된 제 힘을 어떻게 하면 갖출 수 있는 것인가.

충무공은 과연 자기의 실력을 어디서 가지고 왔던 것인가. 자기 스스로 만들고, 자기 스스로 훈련을 거듭하여, 모으고 쌓은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훈련에 의한 축적이었다. 그 힘 가지고 일생을 살았고, 그 힘 가지고 왜적에게 항쟁했으며, 그 힘 가지고 민족과 역사를 구원해 낸 것이다.

* 이 원고는 이은상지음, ‘성웅이순신’ 에서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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