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잃은 세태
웃음을 잃은 세태
  • 남해안신문
  • 승인 2009.02.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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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고한석<논설위원>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차안에서, 공원에서, 음식점에서 사람들의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얼굴은 경색되고 어깨는 움츠러들고 걸음걸이는 쇠잔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TV와 신문들이 연일 쏟아내는 헤드라인뉴스는 온통 꽁꽁 얼어붙고 있는 암울한 경기(景氣) 현상들뿐이다.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생산과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그래서 곳곳에서 감원선풍이 잇따라 발생하고 그로인해 더욱더 경기가 침체되는 악순환 그 불황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웃음을 잃은 사람들은 웬만한 일엔 시큰둥하기 일쑤라서 정치권이 온갖 불황타개책을 내놓아도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 공염불처럼 들리고 심지어 흉악범죄가 발생해도 특별히 놀라는 기색이 없는 냉소풍조마저 생겨나는 것 같다.

한마디로 감격과 감동 그리고 비탄마저 사라진 세상이다.
팍팍한 삶에 길들여진 민초들이야 통쾌하게 웃어본 적이 없고 열락(悅樂)의 기쁨을 만끽한 적도 없지만 생업을 위해 전력투구하던 자영업을 접고, 견디고 견디다 못해 급기야 존귀한 목숨마저 버리는 가슴 아픈 사건들이 자주 생겨나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행동은 자제해야한다. 자제가 안 된 사람은 옆에서 막아주어야 한다. 그게 가족의 힘이고 이웃의 힘일 것이다.

풍진 세상을 등지고 산 속으로 도 닦으러 온 제자의 공부하는 태도가 속세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하자 그 스승이 크게 꾸짖었다.

“여울에 거슬러 오르는 고달픈 물고기, 갈대에 깃든 새, 참죽나무에 매인 여윈 말, 말뚝을 지키는 눈먼 당나귀 같아서야 어느 세월에 무엇을 깨닫겠는가!?”

스승이 지적하는 예시가 퍽이나 이채롭다. 어쩌면 힘겹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적나라한 모양새를 그대로 빗대어 하는 말처럼 가슴 아프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속세에선 산을 동경하고 산에 와선 속세를 잊지 못하는 마음의 병 먼저 고치고 공부하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사물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바꿔서 생각해보자.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가까이 다가 가보면 남모르는 숱한 고뇌와 불만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나약해진 사람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휴화산 같은 잠재능력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 쉬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가까운 것은 버리거나 하찮게 여기고 멀리 있는 것만을 동경하고 얻으려는 이른바 사근취원(捨近取遠)의 자세. 바로 거기서부터 불행이 잉태되고 있음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웃음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 그러나 결코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그 숭고한 힘은 바로 가족들로부터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얻어진다는 사실에 눈을 돌릴 때다. 정부와 지자체가 그 토대를 구축하는데 진력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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