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매화 한 가지 꺾어 보냅니다.”
“백 매화 한 가지 꺾어 보냅니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09.01.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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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고한석 <논설위원>
“기축년 새 날, 백 매화 한 가지 꺾어 보냅니다. 가막만 갯가에 사는 아무개가.”

2009년 1월 1일 필자는 이 같은 메시지를 한통 받았다. 간결한 글이지만 많은 여운을 풍기는 뜻이 함축돼 있어 그 의미를 되새겨보다가 문득 조선조 유명 가객 안민영의 영매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연약하고 엉성한 가지기에 어찌 꽃을 피울까 하고 믿지 아니했더니 / 눈 올 때 피겠다던 약속을 능히 지켜 두세 송이가 피었구나 / 촛불 잡고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윽한 향기가 일어나누나.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설중매의 고고한 자태는 예로부터 고난과 고통을 감내하지만 인고의 아픔 뒤 꼭 결실을 맺고야마는 기백(氣魄)을 상징한다.

지난해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혹독하고 매서운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따로 없다. 하루아침에 성실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날아가고 흑자도산이란 말이 생겨나는가 하면 꽁꽁 얼어붙은 경기침체로 폐업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매일매일 TV뉴스의 헤드라인은 각국의 주식시장동향소식이 차지한지 오래고 우리나라도 그 여파로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그런 까닭으로 한국 성인 절반이 2009년에 가장 걱정스런 키워드로 '경제위기'를 꼽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고답적인 어떤 큰 스님은 이 같은 사태를 두고 “탐욕을 경고하는 것이자 분에 넘치는 '풍요의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뜻을 전한다.”며 “잘못 길든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을 일대 전환해 인간의 품위와 도리를 지키고 사람답게 살라는 뜻이다.”라고 경책한다. 탐진치(貪瞋癡)를 삼독(三毒)으로 삼는 스님다운 말씀이다.

그러나 수도자처럼 독야청청(獨也靑靑) 살 수 없는 인간의 욕구는 웬만해서는 자족하지 못한다. 무사안일에 빠진 사람들에게 보다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위해 정신교육용교재로 곧잘 인용되는 매슬로우(Maslow)의 욕구단계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즉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고통으로부터 안전을 원하는 욕구가 생겨나고, 안전이 보장되면 사회적 소속감을 갖고 싶은 욕구가 따르며,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면 자긍심이란 강한 의욕이 표출되고 궁극에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갖는다는 게 그것이다.

그 욕구의 단계도 단계지만 기준과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인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 끊임없는 갈등구조에서 하필이면 나쁜 쪽에서의 결과물이 우리 앞에 닥쳐온 것이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할 어려움에 처한 현실에서 무기력에 빠져 사물을 냉소하거나 절망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때 일수록 오히려 강하고 당당한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당한 자신감으로 산다는 것은 타인 앞에 나의 양심을 드러내 보이는 행위이기에. 그것은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을 안다는 다른 표현일 수 있으며 이는 곧 시비와 곡직을 분별하는 눈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당당한 자신감으로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사물에 끌려 다닐 수 없음을 결심하는 순간 여태까지의 굴종을 거부하고 꿋꿋이 쳐드는 항거의 자세이다. 그러기에 당당한 자신감으로 산다는 것은 불의와 부정과 교만과 싸우고 그에 축적된 힘으로 고난마저 떨쳐버리고 일어설 수 있는 자양분으로 작용하는 독립된 인격자의 행보일 것이다.

외롭고 힘에 겹지만 그처럼 의롭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머지않아 다가올 환한 웃음을 위해 ‘백 매화 한 가지 꺾어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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