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2008년, 억울한 여수사람들
억울한 2008년, 억울한 여수사람들
  • 남해안신문
  • 승인 2008.12.2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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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상훈<논설위원, 여수YMCA 사무총장>
송구영신!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는 때이다.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맞아야할까.

지난해 유독 답답하고 분통터지는 일이 많아 저무는 해에 실어 다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광우병쇠고기수입으로 상징되는 헛발질 정책, 그 이후에는 서민들 엉덩이만을 골라 걷어차는 정확한 발질 정책들로 1년 내내 뒤숭숭했다. 세계박람회에 대한 10년 꿈이 하루아침에 거품으로 변하지 않나싶을 정도로 불안감을 안겨준 것도 그들 정부다. 이런 불안감에 떠는 민심을 달래고 해소해줘야 할 지역 지도층의 안일하거나 헛된 모습들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살면서 힘들고 외로운 일도 많지만 억울함만큼 견디기 힘든 일은 없다. 엊그제 늦은 퇴근을 하니 아들 녀석이 억울하다는 듯이 울고 있다. 제 엄마의 꾸지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다가 머리 식힐 겸 잠깐 켠 게임이 문제였다. 제 딴에는 공부가 능률이 안 오를 때 잠깐의 게임은 기분전환과 함께 새로운 집중력을 준다는 것인데, 엄마가 곧이듣지 않고 나무라기만 한다는 것이다. 일견 공감이 되어 아들 편을 드니 아내가 곧바로 반발한다. 핑계라는 것이다. 외려 이해심 없는 못된 엄마를 만든다고 더 억울해한다.

집권 1년을 넘긴 정부도 억울해할지 모른다. 박람회 기본계획을 내놓았다가 졸속이라고 호된 비판을 받은 조직위원회도 억울하다는 말을 한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만 벌인다는 힐난을 받곤 하는 여수시의 억울하다는 호소도 공사석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억울한 호소를 들으면 힘없이 답답증에 걸린 국민들, 시민들은 더 억울한 심정에 말을 잊게 된다.

공부를 좀 더 잘해보려다가, 자식 잘 가르쳐보려다가 눈물바람 콧물바람으로 서로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자의 관계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국민이, 시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공권력 동원해 밀어붙여놓고, 국민이, 시민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정책은 막대한 공권력을 가지고도 하지 않으면서 몰라준다고 억울해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은 난감함을 넘어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적어도 앞으로 4년간, 아니 그 후로도 적지 않은 동안 여수지역의 가장 큰 현안은 세계박람회이다. 그런 박람회이기에 혼신을 다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개최지로서, 그 지역민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여수는 요즘 떼만 쓰는 못된 녀석이 되어 지청구를 듣고 있다. 욕심덩어리, 소지역주의, 발목잡기가 그 죄목이다. 얼마나 퍼뜨렸는지 가까운 순천이나 광양 사람들마저도 여수사람들 욕심 많다고 쑥덕거린다는 소리가 들린다. 일부 얌전한 여수사람들은 그예 욕심 그만 부리자며 자숙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여수박람회는 지역 숙원사업이나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인류문명의 방향과 철학을 예시하고 구현하는 정신올림픽, 가치월드컵이다. 그러므로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세계를 다 뒤져서라도, 지역의 고기잡이 어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재원이 부족하면 다른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세계가 감동하는 현대문명의 이정표가 될 박람회가 될 것이며, 그래야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며, 그 가치의 배분은 대한민국 전체에 나눠질 것이다. 이런 주장을 소지역주의로 몰아붙이는 조직위는 자신의 무능을 지역에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여기에 소신 없이 자숙을 논하는 여수사람은 얌전한 것이 아니라 패배주의나 중앙종속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여수사람으로 살면서 그래저래 답답하고 억울한 2008년을 보냈다. 새해에는 신명이 나는 박람회 굿 한판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박람회 조직위도 얼쑤~ 여수시도 얼쑤~ 여수시민들도, 호남사람들도, 멀리 강원도 사람들도 훠이훠이 휘감아 도는 신명나는 한판 굿에 시름도 억울함도 날려 보내고, 시원한 바다를 온 가슴에 품어보는 꿈이라도 꿔봤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조직위, 여수시 모두 이런저런 핑계대기에 급급하지 말고 제대로 된 박람회 만들기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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