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윤리
경제윤리
  • 이무성
  • 승인 2008.10.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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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의 거꾸로 보는 열린경제-59-

학문으로서 '경제윤리'가 최근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탐욕의 학문으로서 성격이 강한 경제에 무슨 윤리가 필요하냐면서 이를 애써 무시하기도 하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서 개인의 사적인 이익추구가 결국은 사회전체의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영국의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의 표현이 현대 사회에서 많이 강조 되어진다. 경제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아담 스미스의 이 말은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경제에 대한 윤리와 함께 중요하게 기술되었다. 그는 인간의 선한 의지와 경제와의 관계를 강조하였고 여러차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였다.

그러나 시장주의의 무오류성을 맹신하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아예 이에 대한 배경 등을  생략하고 일부 표현만 인용하여 이기적인 인간의 모형만을 유독 강조한다. 이들은 경제학이 마치 강자의 일방적인 이익만을 옹호하는 학문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경제학도 다른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인간 관계로서 사회를 그 분석의 대상으로 한다. 단지 그 직접적인 대상이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물질 관계에 집중될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사회에서는 정도로서 바른 양심을 지니고 장사나 사업을 하여서는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여 왔다. 그러나 신뢰로서 신용 등이 갖는 올바른 의미를 되새겨 보면 윤리경영을 포함하여 경제윤리가 결코 구호로서 선언적인 뜻만이 아님을 일상에서 많이 경험을 할 수 있다. 

세계적 부호인 빌 게이츠는 자신의 창의적인 노력에 의하여 벌어들인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자선사업을 위하여 재단에 전입하였다. 그 자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 소외계층 등 경제적인 약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쏟고 있다. 국내에서도 '바른 경제인 모임' 등 주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탈세하지 않고 정당한 세금납부하기, 공무원에게 뇌물 안주기 등 비정상적인 거래 철폐운동과 경제적인 약자와 공존하기 등 오랜 기간동안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사업가들 대다수가 탈세 등 비도덕적인 상행위 등이 일상화하는 한국의 관행에서 정당한 상도를 확립코자 노력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비현실적인 외침이 현실의 세계에서 희망의 움을 키워나가고 있는 셈이다. 

조선말 거상 임상옥은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 人中直似衡)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재산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의 마음은 바르기가 저울과 비슷하다는 의미를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여 이를 널리 알리었다. 이미 한국에도 예전부터 '경제윤리'의 기본 개념이 존재는 하였지만 합리성을 살려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남용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하여 기업윤리나 윤리경영이라는 단어들이 생소하게 들릴 뿐이었다. 

한 사회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한 잣대로서는 기업가들이 그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얼마나 존경을 받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에 대한 평가로서 결국은 경제윤리와 연결된다. 부자들이 존경받는 사회, 이는 경제윤리의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사회일 때 가능하다. 돈 등 물질이 가치로서 절대시 되는 사회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그간 관심권 밖의 주제로서 '경제윤리'가 학문으로서 뿐만 아니라 생활의 중심으로 다가옴은 사회의 건전성에도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신뢰로서 상식이 통하는 한국사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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