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과 30년의 차이
3개월과 30년의 차이
  • 남해안신문
  • 승인 2008.10.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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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한창진 (논설위원, 전남시민연대공동대표)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욕심 많은 주인이 머슴에게 품삯으로 주는 새경이 아까워 어린 딸이 크면 결혼시켜준다고 말한다. 딸이 커 가는 데도 결혼을 시켜주지 않자 밀린 새경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딱 잡아뗀다는 줄거리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여수엑스포 기본계획 마스터플랜 뚜껑을 열어본 여수시민은 꼭 이 머슴과 같은 심정이다. 지난 1999년 세계박람회 유치 도시로 결정된 이후 유치가 되면 중복 투자가 되기 때문에 각종 시설 공사는 중단되었다.

마치 ‘얼음 땡 놀이’의 얼음인 상태, 성장이 멈춘 채로 10년을 기다려 왔다. 요술 방망이가 될 줄 알고 기침조차 내지 못하고 숨죽이면서 기다렸지만, 막상 마스터플랜 보는 순간, 그림은 화려한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면 크게 내세울 것이 없어 실망스럽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1993년 대전엑스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전엑스포에 1,400만명이 다녀갔는데 여수는 800만명으로 예상 관람객을 정할 때부터 뭔가 석연치 않았다. 박람회 관람객 대부분이 내국인이므로 지리적 한계 때문에 생기는 교통 문제, 인근 지역 인구 분포, 문명의 발달 등을 감안하면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여 줄만한 마땅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889년 파리박람회 때 만들었던 에펠탑은 지금도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 그런 정도는 아니어도 대전엑스포에는 한빛탑과 자기부상열차가 있었지만 랜드마크 따지지 않아도 딱 꼬집어서 내세울 게 없다.

박람회 운영과 사후 문제는 사라고사, 하노버까지 갈 필요가 없다. 대전에서 배우면 된다.
부지도 전시장 501,600㎡(152천평), 장외 399.300㎡(121천평)으로 여수보다 넓지만 무엇보다도 엑스포행사장과 도시 내외 부 간을 연결하는 도로 관련 투자가 많았다. 총 8개 사업에 25.43km, 1,200억원 투자를 하였으며, 그 중 둔산과 유성을 잇는 한밭대로 같은 간선대로 신설은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였다. 이번 마스터플랜에는 시내 교통망을 개선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엑스포 사후 관리는 어떤가? 대전엑스포는 과학공원을 만들었지만 정부가 운영비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매년 적자 누적으로 결국 15년 만에 청산 명령을 받았다. 처음부터 전시물의 시한성과 지속적인 개체에 드는 비용 충당의 어려움 때문에 예상된 결과였다.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인구 150만 명인 대전도 15년을 못 넘긴 것이다. 그런데 마스터플랜 사후 활용 계획에는 어떻게 적자를 내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투자 비용과 관련이 된다. 대전엑스포 정부 투자가 1조 2,927억원임에 비추어 물가 상승률 약50%를 단순 적용해도 2조원이 넘어야 한다. 유치를 한 1989년 대전시 예산은 1,70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2조원이 넘었다. 엄청난 재정 규모 확대를 생각하면 여수엑스포 총사업비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마스터플랜의 재정 운용 방향에서 민간 투자를 적극 유치하여 재정 투자 소요를 최소화 하겠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민간 투자 유치가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결국 정부 투자비를 축소하여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마스터플랜을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총 사업비는 축소한 것에 비해 70년이 넘은 국제 무역항인 여수항을 폐지하고, 그 기능을 광양항으로 이전한 다음, 1년에 기껏 몇 번 밖에 정박하지 못하는 크루즈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적할 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3개월 행사를 성공시키려는 사람과 30년 이상 여수를 성공시키려는 시민과의 박람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사건건 문제 제기를 하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긴다.

어렵게 시민이 주도하여 유치에 성공한 여수엑스포가 지경학적으로 불리함을 내세워, 사후 활용과 도시 재생을 중시하고, 개최 도시 마케팅에 중점을 둔다는 1990년 이후 현대 박람회 의의를 소홀히 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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