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勝者)와 패자(敗者)
승자(勝者)와 패자(敗者)
  • 남해안신문
  • 승인 2008.08.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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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고한석<논설위원>
올해 8월 지구촌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는 지난 8일 개막한 베이징 올림픽의 달아오른 열기가 오는 24일 폐막을 앞두고 갖가지 진기록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매일 매일 감동과 탄식의 눈물로 얼룩져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 참석한 경기장 관중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 세계인들이 일손을 잠시 거두고 TV앞에 모여 앉아 자국선수들의 경기장면을 시청하며 혹은 열광하고 혹은 탄식하며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만은 일상의 시름을 잊어버린 채 몰두한다. “짜릿한 승부의 세계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스포츠를 통한 상호이해의 증진과 우호의 정신으로 젊은이들을 교육하여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올림픽 당초목적은 이제 진부하게만 여겨진다. <올림픽경기대회는 개인 간의 경기이며 국가 간의 경기가 아니다.>는 조항은 낡아빠져 차라리 무색하다.

그리하여 ‘One World One Dream’(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베이징올림픽 슬로건도 그냥 구호일 뿐이라는 느낌이다. 오직 이기는 것이야말로 최상이라는 상업적 흐름이 대세다. 세계에서 모여든 각국의 종목 일인자들이 각축을 벌이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금(金)은(銀)동(銅)만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패자(敗者)다.

각종경기종목에서 얻은 메달의 색깔과 수는 단순히 스포츠 강국여부를 가늠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고 나아가 그 나라의 국력까지 재어보는 자료로도 쓰인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스포츠는 유능한 선수들에게 얼마나 많은 투자와 공을 들였는지가 선수 본인의 자질과 함께 향후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한편에서는 승리만을 쟁취키 위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예컨대 도핑이라든가 심판매수 같은 저열한 행위마저 동원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승자는 위대하다. 그들이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남보다 더 뛰고 땀 흘리며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승자에게 환호하고 주위가족들을 우러르며 독특한 사례를 발굴해 전설로 만든다.

그들은 그런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허지만 승자는 소수다. 그들 뒤안길에는 대다수의 패자들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기록경기에서는 글자그대로 간발(間髮)의 차이 때문에. 이는 비단 스포츠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전반에 걸쳐 승자보다는 패자가 더 많다.
독일 언론인 출신 작가 볼프 슈나이더는 ‘지구는 좌절의 별이다. 불운이 겹치고, 운명에 할퀴고, 로또복권은 번번이 비켜가고, 이 사람에 속고, 저 사람에 넘어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라며 자못 경탄조로 말한다.

그는 특히 현대로 접어들어 모든 사람들이 돈과 권력 명예 명성 메달을 향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체제로 바뀌었고 그로인해 다수가 낙오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름다운 패자들이 없는 세상은 끔찍하고 또 그렇지 않기에 세상은 살아 갈만하다고 강조한다.

아름답지 못한 패자들도 있다. 그들은 승자에 비해 기회균등을 받지 못했다거나 상대 승자는 비정하며 야비하다고 거침없이 토로하는 것을 우리는 마주친다. 설사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해도 좀 비겁해 보인다. 자신들의 실패원인을 자신보다 남들에게서 찾으려는 자세가 억지 변명처럼 들려 석연치 못하다.

문제는 승자라고 해서 거만하고 도도한 것도 볼썽이 사납지만 패자라 해서 고개 떨군 채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두고 승자니 패자니 남들이 평가하는 것은 자유지만 정작 진정한 본인의 삶의 평가는 생을 마감할 때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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