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재능을 지켜보는 게 최선?
자식의 재능을 지켜보는 게 최선?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8.06.14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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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화상 19] 행복
“장담 못할 세 가지는 자식 키우는 부모, 배(船) 사업가, 소(牛) 키우는 농장주다. 왜냐하면 자식은 어찌 될지 몰라 말 못하고, 배 사업가는 파도에 언제 뒤집어 질지, 어디로 떠밀려 갈 줄 모른다. 농장주는 풀어놓은 소가 언제 뉘 집 작물을 먹어 치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양기원 씨의 말입니다. 배와 소에 대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에 대한 소회는 대체로 공감하고 끄덕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자식에 대해 장담하면 뒤에 후회가 따른다.”며 “자식 자랑을 삼가라!”고 충고하기도 하대요. 근데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는 특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또 그 특별함을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학업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세상이다 보니 ‘내 아이 어디 갔네’하고 자랑할 수 있다면 오죽이야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자식들이 다 공부 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러다 기대치가 낮아지고 “이놈은 이것 잘하고, 저놈은 저것 잘해야 사회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는 체념 아닌 체념으로 위안 삼기도 합니다.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자식은 재능을 지켜보는 게 최선?

주변에 ‘정우’라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있습니다. 이 녀석은 세 살부터 숫자와 영어를 가지고 놀더군요. 주위 사람들의 자동차 번호, 전화번호, 아파트 호수, 생일까지 줄줄 외웠지요. 그리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숫자 문제 내줘요.”하고 귀찮게 하던 아이였죠.

이를 보고 ‘학문을 하기 위해 타고난 아이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타고 난 아이가 아닌 이상 노력이 필요한 데 그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쉽지 않더군요. 자라는 아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타고난 아이더라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 정우네 가족.

저도 지금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장점이 있을까? 어떤 재능이 있을까? 이럴 땐 이곳에, 저럴 땐 저곳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출중한 재능을 꼽기가 쉽지 않더군요. 좀 더 지켜보자는 쪽입니다. 그러다 세월이 훌쩍 지나갈 수도 있겠죠.

간혹 부모들의 이런 때늦은 후회, 아쉬운 넋두리를 듣곤 합니다.

“너무 바빠, 자신만 알다보니 세월이 가버렸다. 다시 자식 키우면 잘 키우겠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삶의 이치를 알다 보니 깨닫지 못한 것을 보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론 이게 세상이지 싶기도 합니다. 다시 자식을 키운다면 또 다르겠지요. 그러나 세월은, 세상은,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 마음먹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언젠가 책을 통해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결혼해서 살기 위해 마음먹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이 말 속에는 구구절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스며 있다는 걸 알 것입니다. “키울 때 정 많이 주고 많이 사랑할 걸….”하는 때늦은 후회가 스며 있다는 것도 눈치 챘을 것입니다. 딸 키우면서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지켜만 봤는데 어느 새 자라 시집을 간다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결혼한 딸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또 말없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야겠지요. ‘저것이 잘 살까?’, 혹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말입니다. 때늦은 후회 전에 아이에게 다정스레 먼저 다가서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기 좋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기 나름”이란 광고 카피가 있었겠습니까? 행복은 완전함에서보다 뭔가 부족한 것에서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 무슨 생각할까요? 아버지들의 고민은 비슷비슷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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