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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시대 누구를 섬길 것인가?
섬김의 시대 누구를 섬길 것인가?
  • 남해안신문
  • 승인 2008.05.0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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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박효준<여수경실련 사무국장>
미국산소고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녹아내리는 국민들의 심정처럼 방방곡곡에서 촛불들이 타들어가고 성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미국에겐 마치 조공 바치듯 검역주권을 내어주고서도 국민들에겐 ‘안 사먹으면 될 일’ 이라는 정부의 섬김의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미국이었던 모양이다. 이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선 ‘어륀지’를 ‘오렌지’로 잘못 발음하는 무지한 우리 국민들의 식습관도 모조리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자녀의 건강을 걱정하고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정치선동 운운하며 과학적 근거 없이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핀잔 놓는 사람들에게 국민들은 절대로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국민들을 위해 그 생각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국민들은 실용의 기치아래 매우 양심적인 상인들과 매우 솔직한 미국 축산업자들만이 살고 있기를 희망하며 불안한 저녁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한반도 대운하부터 교육자율화, 미국산소고기 등등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들 속에서 국민들의 자리는 어디였을까?

많은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알량한 과학적 근거와 연구결과라는 잘 포장된 ‘합리’라는 무기아래 국민들은 그저 말없이 순응하기만을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즐겨 쓰는 ‘과학적 근거’ 라는 무기도 결국엔 다른 반대가설로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드러나지 않은 진실의 편린’일 뿐인데도 우리는 그 근거 코 꿰어 섬김의 대상이 아닌 통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몰려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그동안 우리국민들은 신민이 아닌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고 그 결과 형식적 민주주의든 위로부터의 민주주의든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조금씩 찾아왔다. 결국 국민을 지배할 수 있는 보장된 권력은 사라졌다.

하지만 보장된 권력을 대신한 선출된 권력은 왕권과 신권의 권위를 버리는 대신 실용과 합리의 권위를 무기로 새로운 지배를 원하는 것 같다.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보다는 소수가 정한 목표와 그를 위한 과학을 무기로 언제든 국민들에게 순응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섬김이 아닌 지배라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진정한 섬김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국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은 알아야 한다. 감추고 속이는 것 보다는 그편이 훨씬 섬김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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