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가장 못하는 나라, 그러나...
영어를 가장 못하는 나라, 그러나...
  • 오문수 시민기자
  • 승인 2008.02.15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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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일본여행기 7] 예측 가능한 사회 일본
▲ 교토 은각사 가는 길 옆 산책로 - 만개한 벚꽃이 떨어져 깨끗한 수로에 둥둥 떠내려갈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서로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

'가깝고도 먼 나라'. '가해자 일본, 피해자 한국'

한-일 관계를 논할 때 이 말만큼 많이 들어본 말이 있을까? 우리는 항상 피해를 당하는 쪽이었고 그러한 연유로 양국이 운동 경기를 하면 피 튀기는 경기를 벌이고, 지는 쪽은 국민들의 자존심 싸움에 감독들의 운명이 성치 않았다.

하지만 숙명적인 관계지만 역사는 계속되고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상호 직간접인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아픈 과거의 기억 때문에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만 본다면 양국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한-일은 상호 이해를 통해 공존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견원지간이던 프랑스와 독일도 화해를 하고 국경을 개방하며 상호 인적 물적 교류를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더 큰 범주를 보자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싸움에 골몰하던 양진영이 화해와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 일본경제신문(1월 28일자 석간)으로 오사카지방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 중 한국인이 1위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1월 28일자 일본경제신문 보도를 보면 긴키 지역(오사카, 나라, 고베, 교토)을 찾은 외국인 중 1위도 한국인이다.

귀국 날짜를 하루 남기고 가능하면 교토를 걸어 다니면서 자세히 보고 싶어 다른 때보다 일찍 숙소인 오사카 히라노를 나섰다. JR환상선을 타고 오사카역에서 교토행 전철 티켓을 산 후 플랫폼에서 역무원에게 영어로 교토행 열차를 확인한 후 열차를 탔다.

오사카 전철은 색깔별로 신쾌속(우리의 특급열차에 해당)과 보통을 구분하고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첫날 전철을 타고 목적지인 가미역을 내리려는데 지나쳐 버렸다. 저녁 퇴근 시간의 혼잡한 전철 속에서 한 사람의 얘기 소리도 들리지도 않으며 조용히 책을 보거나 졸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말을 걸기가 곤란했다.

▲ 전철 안내 간판 - 차종과 시간, 목적지, 색깔이 나와 있다
남들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일본인

30분쯤 가다 한 아주머니한테 “왜 가미역에 서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자세히 설명해 주며 다음 역에서 내려 다시 보통 열차를 갈아타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내가 탄 열차는 우리나라 새마을호 같은 특급열차였는데 몰랐던 것이다.

되돌아오며 열차 승무원에게 사실을 얘기했더니 자세히 알려주고 가미역 도착 직전에 다섯칸 정도를 돌아와 나에게 다음역이라고 알려줬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친절히 안내해주는 승무원들이 있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로만 물었으니 외국인인 줄 알고 그랬겠지만 처음으로 일본 열차를 이용한 나로서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 내 장갑과 우산을 찾아준 마이바르역 분실물센터의 시바다양
그 후론 꼭 확인하고 타는 습관을 들여 그날도 교토행 열차를 확인한 후 자리에 앉는데 마침 백인과 동석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한 그는 미국인인 패트릭(Prtrick)이다. “한국에서 왔고 영어교사”라고 소개하자 반갑다며 자기는 서울학원에서 1년간 한국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오사카 소재 대학에서 비즈니스 영어를 3년 동안 가르치고 있단다. “일본은 대단한 나라이며 편안하다”고 말했다. 직업의식이 발동한 나는 잘됐다 싶었다.

“한국인과 일본인 중 누가 더 영어를 잘해요?”
“한국인이 훨씬 잘해요.”
“그 이유는 뭘까요?”
“일본인들은 실수를 두려워해요.”
“한국 학생들도 중학교 1학년 때는 발표를 잘하고 영어 점수가 높다가도 3학년쯤 되면 아주 잘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발표를 잘 안 하는데요.”
“아니요, 한국학생들보다 일본학생들이 훨씬 더 부끄러워해요.”


▲ 지하도의 모습 - 중앙은 철제 난간이 쳐진 자전거와 휠체어 전용로, 양옆은 계단으로 되어 시민들이 불편없이 통행하도록 배려했다
정확한 진단이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내 나이 또래의 빨간 잠바를 입은 사람은 전철에서 본 적이 없다. 나이든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을 보면 훨씬 다양한 색깔의 옷들을 입고 다닌다. 그들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타인의 진정한 자유를 존중한다.

24년간이나 미국에서 살았고 인권을 연구하는 아시아 태평양 인권 정보센터 소장인 오사무 시라시씨와 얘기하면서 그 얘기를 꺼냈다. 부인의 말인즉, “옷을 입는데 남들과 다른 옷을 입어 튀어 보이면 곤란하니 검정이나 곤색 양복을 입으라고 권한다”고 했다. 집단을 벗어나면 그들은 따돌리는 ‘이지메’를 시키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본의 문화는 자신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회다. 2차 대전시 사이판에서 옥쇄를 선택한 수많은 일본인들은 전쟁에 졌다는 책임의식과 나만 살아 돌아갔을 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며 자살을 선택했다. 살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불명예인가?

물론 부끄러움을 아는 문화라서 예의나 질서를 잘 지키는 선진국이지만 속마음까지 진정 남을 위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본인의 정신구조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에 본심을 의미하는 ‘혼네’와 사회 규범에 따라가는 ‘다테마에’가 있지 않는가?

▲ 전철역 여성대기선 - 계단에서 가장 가까이, 그리고 비스듬히 그려져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장갑 찾아 역 사이를 왔다 갔다...

패트릭은 중간에서 내려 자신의 목적지로 가고 바깥경치를 바라보는 데 어제 봤던 경치가 아니라 눈 쌓인 시골 농촌 전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걸려 승무원에게 “교토를 가려고 차를 탔는데 이상하다”고 말했다.

“잘못 탔다. 여기는 교토에서 한참 떨어진 히코네다. 얼른 내려 반대쪽 열차를 갈아타고 교토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마침 반대쪽에 차가 들어와 교차를 하고 있는 순간이라 뛰어내려 반대쪽으로 가는데 선로에 비가 내린다. 아차! 내 우산과 장갑.

하는 수 없어 역 사무실에 가 사정을 얘기하고 장갑과 우산을 찾게 해달라고 말하는데 영어는 영 불통이다. 계획된 일정이라 그냥 가면 되겠지만 비는 오고 겨울이라 손이 시리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아내가 사준 따뜻한 장갑을 잃어버리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 쾌속 열차의 출입구쪽 의자 - 한가한 시간에만 재떨이처럼 생긴 부분을 잡아 당겨 보조의자로 사용한다
그렇잖아도 일본의 시골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에라! 이참에 일본을 한번 보자는 생각에 아시아 태평양 인권정보 센터 연구원인 재일교포 박군애씨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통역을 부탁했더니, 역무원은 얼른 열차 승무원에게 무선으로 연락을 취해 다음 역인 마이바르역에서 찾으라는 얘기다.

다음 기차를 타고 마이바르역에 가서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고 분실물 센터에 가니 없다. 여기서도 박씨의 통역을 통해 알아낸 바는 장갑과 우산이 히코네로 되돌아갔단다. 다시 되돌아간 히코네역 사무원은 두 손 모아 “죄송하다”를 연발하며 전화를 하더니 “이번에는 확실히 마이바르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두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며 드디어 찾았다. 물론 포기하고 교토로 갈 수 있지만 이미 시간은 많이 흘러갔다. 저녁에 오사카역 분실물센터에 가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친절과 성의에 탄복했다.

▲ 밤 12시가 다된 시각. 2차선인 도로에는 행인이나 차가 하나도 없지만 어김없이 신호등을 지킨다
시민을 최대한 배려하는 사회

박군애씨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가는 동안 봤던 지하도에서 그들이 노약자나 시민을 얼마나 배려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자전거를 끌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해 가운데를 완만한 반원 형태로 전용도로를 만들어 놓고, 옆으로는 계단을 이용해 보통사람들이 통행하도록 했다. 물론 계단을 이용하기 곤란한 노인들도 자전거 통행자가 없을 때 종종걸음으로 가운데 자전거 도로를 이용한다.

사진을 보면 전철을 이용하는 여성 승객들이 비스듬히 줄쳐진 선을 따라 서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계단을 내려와 차를 타려는데 줄이 가로막고 있다면 밀치거나 불편해질 수 있다. 다른 선은 열차와 직각으로 돼 있고 여성 대기선은 비스듬히 계단과 가장 가까이 배치됐다. 사람들이 내릴 때는 양옆으로 비켜서준다.

전철 출입구와 맞닿아 있는 좌석의 뒤편에는 보조 좌석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러시아워에는 보조좌석이 내려지지 않고 한가한 시간에만 내려 사용할 수 있다. 혼잡한 시간에는 사람들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 전철역 인근 자전거 보관소
나는 배낭과 일반 여행으로 40여 국가를 여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유럽이라도 늦은 밤에 혼자서 밤거리를 나가지는 못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밤 12시가 돼서도 불안함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여행을 하면서 일본 사람만큼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영어만 잘하면 선진국인가? 물건을 잘 만들고 인간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내면화하여 남으로부터 신뢰 받을 수 있는 국가라야 선진국이다.

내가 머물렀던 오사카 히라노 지역은 오사카 시내지만 상가가 거의 없는 조용한 거주 지역이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로에 나갈 때마다 2차선인 도로에 지나다니는 행인이나 차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교차로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면 어김없이 신호를 지키는 것을 보고 부끄러웠다.

또한 수많은 자전거가 보관된 전철역 자전거 보관소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거동도 불편한 노인들이 아침 일찍 길가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광경도 아름다웠다.

▲ 교토 은각사 가는 길목의 어느 가정 집 대문앞 화분
다음 사진은 교토 은각사 입구 올라가는 길에 있는 개인집 대문이다. 물론 관광지라서 의도적으로 꽃 장식을 하도록 권장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담하고 예쁜 꽃 화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에 대해 다시 생각케 했다.

일본에 오기 전에는 성이 문란하고 개방됐다고 들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스킨쉽하는 모습을 못 봤다. 50번 이상 지하철이나 전철을 이용했지만 큰 소리로 떠들며 전화하는 꼴불견 청년을 딱 한번 봤다. 승객들은 어이없어하며 한심하다는 표정들이었다.

물론 열흘이라는 한계가 있어 정확하게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숨어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리나라에 대해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천재지변을 제외하고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는 사회가 일본 사회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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