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무너지면 내 밥상은 온전할까?"
"농촌이 무너지면 내 밥상은 온전할까?"
  • 남해안신문
  • 승인 2007.03.2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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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강상헌 <논설위원, 생명시대신문 발행인>
오래된 스크랩북을 뒤지다 다음 기사를 곰곰 들여다봤습니다.
나도 몰래 한숨이 나왔습니다.

16년 전 어느 날 신문에 실린 글이지요.
당시 동아일보 생활경제부 기자로 일하던 필자가 그 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당시에는 우루과이라운드(UR)라는 현안(懸案)이 있었습니다.
지금 FTA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팔아 쌀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답니다.
거리로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선 농민들의 절절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기미 또한 그다지 강렬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아이, 그들의 후손까지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는 ‘철학’이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일 터입니다.
눈앞의 임기응변(臨機應變)만으로 ‘지혜로운 해결책’을 얻기는 무리라는 생각이지요.

새해를 맞으며 응원해 주시는 여러 친구들에게 이런 무거운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차차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시 이 기사를 쓰던 느낌을 떠올려봅니다.

기자로서 더 노력했더라면 하는 자괴(自愧)의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후 우리나라를 덮친 IMF 사태 등이 필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혼돈에 빠뜨렸다는 변명도 떠올립니다.

당시와 오늘의 상황을 생각하며 함께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우리 농업과 농촌은 오늘도 쇠약(衰弱)해지고 있습니다.

<기자의 눈> 우리 농촌이 무너지면… 강상헌 생활경제부 기자

“외국산 수입식품이 값이 싸고 조리도 편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이를 사먹어도 되는 건가요?”(YMCA 김성수 간사)

“우리 농촌과 농업이 황폐화하고 결국 수입식품이 우리 식탁에 범람하는 상황이 되어도 우리 소비자는 손해 볼 일이 없을까요?”(소비자시민모임 강광파 이사)

지난 16, 17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여성개발원 국제회의실에서는 10개 민간소비자단체 대표들과 소비자운동가 등 40여 명이 모여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의 소비자보호운동의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 모임에서는 미국 정부의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압력과 우리 국민의 과소비추방 시민운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집중 성토된 가운데 ‘우리 농촌이 무너지면 소비자인들 무사할까?’하는 문제제기가 튀어나와 관심을 끌었다.

이 같은 문제제기는 지금까지의 소비자운동이 단순한 소비자보호 차원에 머물렀다는 자성(自省)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참석자들은 우리 농업이 몰락하면 우리의 식탁은 물론 국민보건까지 외국농산물에 예속(隸屬)될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지금은 국내산보다 싸다고 하지만, 시장 예속의 정도가 심화되면 외국 곡물 메이저들의 농간에 따라 엄청나게 비싼 농산물을 사먹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심각한 예상을 끌어냈다.

이는 식량안보차원에서도 중대한 문제로서 최근의 페르시아 만(灣) 사태에 따른 이라크의 사정이 단적인 예로 지적됐다.

그러나 어디 그뿐이겠는가. 안정된 주거(住居) 공간 즉 정주생활권(定住生活圈)으로서의 농촌이 무너지면 도시환경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집단이농에 따른 주택 교통 교육 상하수도 범죄 등의 도시문제가 결국 모든 도시소비자들의 공동부담으로 되돌아오지 않겠는가?

이 같은 인식은 지금까지 소비자보호를 위해(물가 안정을 위해) 추곡수매가의 과도한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와 주장을 펴온 소비자보호단체연합회가 진중하게 진로(進路)를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한 참석자는 “정부주도의 ‘국산품애용운동’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소비자운동은 이제 재고(再考)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로(進路) 수정’의 출발점이라 할 대목일 터이다.

그는 “농민과 소비자를 대립시켜 농정실패의 책임을 호도(糊塗)해온 경제정책 입안자들의 기만적인 술책에 더 이상 놀아날 수 없다”면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며 우리의 이웃인 농민들의 비명을 외면하고는 소비자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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