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인데요, 자리 좀 바꾸면 안 될까요?"
"일행인데요, 자리 좀 바꾸면 안 될까요?"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03.04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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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실 장모님 칠순잔치 ② - 기차 여행
 
▲ 장모님 칠순 덕분으로 오랫만에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선 곧은 직선보다 부드러운 곡선이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 임현철
 

“애들아, 일어나. 기차 타야지”
“으~응. 아빠, 지금 몇 시예요?”
“일곱 시 반. 서둘러야 돼.”

아이들 눈을 비비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따르~릉, 아내와 처제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아내가 혹여 신랑 마음 변할까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간 기차표를 주머니에 넣고 여수의 여천역으로 향합니다. 도착을 재촉하는 전화가 울립니다.

개찰구를 빠져 나가니 동서 가족이 보입니다. 우여곡절(?) 끝이라 기분이 상쾌합니다. 기차가 4분 연착됨을 알리는 방송이 퍼집니다. 그제서야 봄바람 기운이 느껴집니다. 장흥에서 전날 합류한 작은 처남과 함께 기차에 오릅니다. 한복 가방을 짐칸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는데 아들 태빈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넵니다.

“아빠도 가요?”
“그~럼, 가지. 왜?”
“아빠, 섬에 간다 그랬잖아요?”
“섬은 다음에 가려고. 아빠 가지 말까?”
“아니에요, 아니. 좋아서 그래요.”

녀석 싱글벙글입니다. 무궁화호인 줄 알았는데 비싼 새마을 기차표를 구했다고 궁시렁대던 살림꾼 처제, 아이들과 기차 타면 다른 사람 눈치 보이는데 뒷자리라 좋다며 불만을 거둬들입니다.

대학 때 참 기차 많이 탔는데. 그러고 보니 기차 탄 지 오륙 년은 된 것 같습니다. 서울역에서 여수까지 장장 여섯 시간이 걸렸는데도 길다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한창 때여서 견딜만한 체력이 있기도 했겠지만 고향 가는 설레임과 친구 만나는 즐거움 때문에 가뿐히 버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입석으로 꽉찬 사람도,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과자나 오징어를 파는 아저씨도 아닌 바로 바다 내음입니다. 잠에 빠져 있다가도 비릿한 소금기의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질거리면 자연스레 눈이 떠졌습니다.

아직 종착역 여수까진 한 시간 여가 남았는데도 어떻게 비릿한 바다 냄새를 맡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입니다. 고향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합니다. 이게 고향에 대한 정취겠지요. 아이들도 ‘고향의 맛’을 알 때가 있겠지요.

 
▲ 오징어 파는 아저씨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 임현철
 

“기차 여행, 어때?”
“정말 좋아요.”
“현서, 기차 처음 타?”
“처음 아니에요. 타 봐써요? Y(여수YMCA 아기스포츠단)에서 기차여행 두 번 해 써요? 대~저언(대전) 고모~ 집 갈 때도 타 봐 써요?”
“그랬구나.”

처제가 싸온 김밥을 먹습니다. 사람이 많아지기 전에 후다닥 해치워야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캔맥주가 덤으로 공급됩니다. 장시간 버티려면 먹고 잠을 청하는 게 상책(?) 중의 상책이니까. 녀석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움직입니다. 힘들고 즐거운 기차여행 전조입니다.

기차가 순천에 이르자 늦게 표를 예매해 따로 떨어진 자리를 차지한 작은 처남 좌석을 두고 흥정(?)에 들어갑니다. 마침 젊은 남자입니다. 그 친구 생김새로 보아하니 쉽게 양해를 구할 것 같습니다.

“일행인데요, 자리 좀 바꾸면 안 될까요?”
“예? 아~ 예~. 그러죠.”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가시죠?”
“용산까지요”
“우리는 영등포까진데, 표까지 바꿔야겠네요?”
“예? 예~.”

젊은 친구, 얼떨결에 표까지 바꿔 처남 좌석으로 갑니다. 동서는 생각해보니 용산에서 개찰할 때 영등포 표를 주면 추가 요금 물겠다고 다시 가서 표를 바꿔옵니다. 헷갈렸다나요. 젊은 친구도 표를 바꾸면서 이상하다 그랬다는 말을 전합니다. 어쨌든 이게 기차의 맛이겠지요.

사람들이 계속 오르고 덩달아 아이들의 시끄러움도 더해 갑니다. 여섯 살부터 열 살 까지 네 아이들에게 주의를 시키지만 쉬이 말이 통하질 않습니다. 주위 눈살이 따갑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편히 가겠다고 새마을호를 탔는데 말입니다. 단호한 질책(?)이 내려지니 조금 조용합니다.

 
▲ 기차에서 신이 나 앉을 줄 모르는 현서와 유빈
ⓒ 임현철
 

 
▲ 정우는 창에 기대 차창 밖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 임현철
 

유빈이가 현사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정우는 창에 기대 차창 밖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어, 왜 안 보여?”
“여기는 터널이야. 그래서 어두운 거야. 터널은 산 중간에 구멍을 뚫어 길을 만든 거야. 옛날에는 산을 깎아 길을 냈는데, 요즘은 자연훼손을 막으려고 산을 깎지 않고 이리 구멍을 뚫는단다.”

졸다 자다를 반복해도 아직 두어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과거 지루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차간에서 화투 돌리던 기억이 납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시간만 나면 화투를 돌린다던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 기차에선 그런 풍경이 없어 다행입니다. 참, 해도 멀긴 너무 멉니다.

부산과 목포는 KTX가 뚫려 시간단축으로 관광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못한 여수, 혹은 남쪽은 어떻게 시간을 줄일까, 시간과의 전쟁(?) 중에 있습니다. 수도권과의 거리 단축에 살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간 단축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그들도 서울로 이동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지역은 울상으로 중앙 정부에 예산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 지역에 살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막을 수 없을 거라 판단됩니다.

남쪽 지방정부의 요구를 반영하듯 중앙정부도 여수ㆍ순천 등에 KTX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이것도 2012여수엑스포 때문에 서두른 것입니다. 이것도 언제 실행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종착지인 여수는 공항이 있어 다행입니다. 서민들이 얼마나 이용하겠습니까, 마는.

수원역에 다다르자 차창으로 복잡함이 얽힙니다. 덕지덕지 붙은 집과 빌딩. 얽히고설킨 간판.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그들의 급한 걸음새. 우리나라 인구의 1/3이 모였다는 수도권, ‘과연 수도권’임을 확인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생기가 있어야 하는데 생기보다 삶의 처절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섬에서 사람을 만나면 생기가 도는데 같은 사람들에게서 처절함을 떠올리다니. 이상야릇합니다.

드디어 다섯 시간만에 영등포에 도착합니다. 인천행 전철을 타고 부천으로 이동합니다. 왜 이리 답답할까, 답답증이 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살아야 살맛이 난다는데 이리 시루같이 모여 살면 그 맛이 날까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른 일탈로 전원생활을 꿈꾸는가 봅니다.

 
▲ 예전에는 없던 TV 영상까지 갖춰진 새마을호 내부입니다. 여수는 부산, 목포권과는 달리 KTX가 없어 수도권과 시간을 줄이기 위한 '시간과의 전쟁' 중에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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